22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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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영주
  • 승인 2017.04.06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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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방영된 TV 인기프로그램인 <무한도전> 국민의원 특집편이 화제다. 하루 22시간 일했다는 20대 여자 패널 때문이다. 이 여성분은 IT업계 종사자였다는데 새벽 4시에 퇴근해 급하게 택시를 타고 집에 가서 옷만 갈아입고 다시 오전 6시에 출근하는 생활을 1년간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받은 돈이 2달간 7만 원. 비상식적인 근무시간과 급여에도 불구하고 젊은 청년이 1년이나 직장에 다닌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는 다른 사람보다 3배 더 일하니까 3배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단순한 믿음에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열정 페이’의 대가는 가혹했다. 미래는 없었고 남은 건 배신감뿐이었다. 결국, 그녀가 일을 그만두게 된 계기는 박봉과 가혹한 근무조건도 아닌, ‘내가 결혼할 수 있을까. 결혼해도 아이는 낳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 때문이었다.

일 년전 EBS에서 방영된 <공부의 배신>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살인적인 입시지옥을 뚫고 나름 ‘명문대’에 들어간 청년들의 방황기다. 다섯 손가락에 꼽힌다는 명문대학교에 다니면서 고시원 쪽방에서 등록금을 벌기 위해 끼니는 편의점에서 때우고 하루하루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그린 위 다큐멘터리는 20·30대 청년들의 우울한 자화상을 그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더 이상 노력만으로 꿈을 이룰 수 없는 세상이다. 아니, 꿈을 꾸기도 벅차다. 현재의 고통을 감내하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 집과 정당한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일자리가 없는 현실에서 청년들의 고난은 계속된다. 유력 대선후보들은 저마다 청년실업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공공부문의 일자리를 늘리거나,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삶의 질을 확보하고, 공정한 임금을 확보하기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 그것이다. 하지만, 역대 정부도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한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실현가능성이 문제다.

전라북도에 낙향한 지 4년째다. 서울에서 십몇 년을 살다가 내려온 고향에서 필자를 반겨주는 중·고등학교 친구들은 거의 없다. 힘겹게 공무원 시험을 통과한 극소수의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저마다 일자리를 찾으러 타지로 떠났다. 2017년 3월 31일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보면 전북의 인구는 186만 485명으로 정체상태다. 주요 도시라고 할 수 있는 전주시가 소폭 상승했으나, 도내 다른 도시로부터 유입된 인구로 유의미한 증가라고 볼 수 없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조사에 따르면 인구소멸 우려 80개 시·군에 김제시, 부안군, 정읍시, 임실군, 순창군, 고창군, 진안군, 장수군, 남원시 등 대부분의 도내 시·군이 포함됐다. 문제는 미래다. 청년들이 고향을 등지는 현 세태에서 전라북도의 미래도 없는 것이다.

청년 실업과 인구수 감소는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다. 전라북도의 문제는 한층 더 복잡하다. 수도권 집중현상에 정치·경제적으로 소외받는 지역에 거주하는 전라북도 청년들이 느끼는 체감은 더욱 크다. 시인 기형도는 그의 시 <조치원>에서 80년대 젊은이들의 초상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플랫폼 쪽으로 걸어가던 사내가/마주 걸어오던 몇몇 청년들과 부딪친다/어떤 결의를 애써 감출 때 그렇듯이/청년들은 톱밥같이 쓸쓸해 보인다.’ 80년대 젊은이들이 꿈꾸던 세상은 정의로운 세상이었다. 2017년 젊은이들의 꿈은 거대담론도, 이념도 아닌 요샛말로 ‘먹고살기즘’이다. 하루 24시간 가운데 22시간을 고된 노동으로 보낸 젊은이들은 물에 젖은 톱밥처럼 쓸쓸해 보인다.

나영주<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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