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이야기, 술 이야기 고향이야기②
쌀 이야기, 술 이야기 고향이야기②
  • 소성모
  • 승인 2017.03.30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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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우리 고장에는 눈이 많이 내린다. 서해안에 맞닿는 지역은 바다의 영향으로, 지리산과 덕유산이 자리잡은 동쪽은 산의 영향으로 전국 어느 지역보다 눈이 많이 온다. 사실 울릉로를 제외하면 대한민국의 설국(雪國)은 우리고장 인지도 모른다.

‘설국’(雪國, 유키구니)은 일본의 소설가인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노벨문학상 수상작품(1968년)이다. 소설의 첫 문장인 ‘국경의 긴 터널을 지나면 설국이었다’의 대목에서 그 설국이 바로 일본의 니이가타(新湯)현이다. 니이가타는 우리 동포를 북한으로 나르던 북송선 만경봉호의 기착지인 니이가타항이 동해에 접해있는 쌀이 많이 나는 지방이다. 옛 지명은 엣치고(越後)라고 한다. 소설 속의 긴 터널은 군마현과 니이가타현의 경계에 있는 20㎞의 시즈미(志都美) 터널이다. 필자는 92~94년 일본농협중앙회에 파견근무를 한 적이 있어서 쌀 생산과 문화 조사를 위해서 이 지역을 자주 다녔다. 니이가타현은 쌀(고시히카리의 명산지)이 많이 나오고, 눈이 많고 서쪽은 우리 동해에 접하고 동쪽은 2,000m 가까운 산맥에 막혀있는 하천도 동에서 서로 흐르는 우리 전북의 지형과 흡사하다.

‘고시히카리’(越光)는 사실 니이가타현이 아니라 인근 후쿠이(福井)현의 농업시험장에서 1956에 개발된 품종이다. 지역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지만, 니이가타현의 우오누마(魚沼) 지역산이 제일 맛있다고 평가받아 그 지역이 코시히카리의 명산지가 되었다. 옛날 에도막부(1603-1867) 시절에 “엣치고의 쌀은 날아다니는 새도 먹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품질과 맛이 형편없었는데 2차 세계 대전 후 그 지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힘을 모아 주식자급을 위해 쌀의 품종을 개량했던 것이다.

우오누마(魚沼)의 ‘고시히카리’가 맛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역이 분지이며, 겨울에는 2-3m 적설량을 기록하는 눈폭탄 지역(특별폭설지대)에 속하고 주위에 1,000m이상의 산과 우오누마강이 흐르는 전형적인 선상지의 퇴적지역으로 중산간 평야지대이다. 그래서 ‘고시히카리’의 최적지배지가 되었고 이러한 깨끗한 수자원을 근거로 이 지역에는 수십 가지의 日本淸酒(사케) 즉, 지주(地酒)의 특산지가 되었다.

쌀이 맛있고 물이 좋으니 술은 당연히 맛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렇게 맛좋은 쌀도 60년대 과잉생산으로 69년부터 생산조정 정책(反田政策)시행으로 감산에 들어갔다.

일본사람들은 쌀로 만든 청주(淸酒)를 니혼슈(日本酒)라 하며 일본의 술로 생각한다. 그들이 일본주로 부르는 청주는 술의 조제 과정인 탁주→청주→소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중간정도 그룹(12~18°)의 쌀와인이다. 우리가 흔히 일컫는 정종(正宗, 마사무네)은 사실 일제 강점기에 유행했던 청주의 한 상품명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면 한국의 ‘청하’나 ‘수복’과 같은 하나의 브랜드인데 우리는 일본 상품명인 ‘정종’을 청주로 착각하여 부르는 것이다.

유래는 이렇다.

일제 강점근기인 1916년에 세수 확대와 우리 쌀의 대일공출량을 늘리려고 ‘주세령’(酒稅令)을 내려 총독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는 집에서 술을 직접 빚지 못하게 했다. 특히 일본술을 청주라고 하고 우리 고유 청주는 ‘약주’라는 이름으로 대체되었다. 결국 우리의 술 청주 이름을 빼앗기게 된 것이다.

일본은 우리 고유의 가양주(家釀酒) 명맥을 끊고 일본식 청주를 만들기 위해 군산 등 우리나라 곳곳에 술 공장을 세웠다. 여기서 만든 것이 일본 상품 “정종”이다. 당시 ‘정종’과 우리 ‘청주’는 빚는 방식이 달랐다. 우리 청주는 주정을 쓰지 않는 전통 발효방식이고 정종은 주정 섞어 만든 질이 떨어지는 술이었다고 한다. 일본식 사케(酒)의 한 브랜드가 청주의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꼴이다. 다시는 우리 술 청주를 니혼슈(日本酒)나 정종(正宗, 마사무네)으로 부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쌀소비 촉진을 위하여 그 지역, 그 가문의 특색이 있는 지주(地酒)를 개발하여 사라져버린 우리의 가양주 문화를 되살려야 한다.

최근 우리지역에서는 로컬푸드(Local Food) 붐이 조성되고, 비즈니스화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 사실 로컬푸드(Local Food)를 우리말로 하면 신토불이(身土不二)가 정답이다. 신토불이를 일본에서는 지산지소(地産地消)라고 한다. 결국, 지역의 땅과 물, 공기로 만들어진 산물(産物)이 그 지역 사람에게 맞다는 이야기이다.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지주(地酒), 가양주(家釀酒)가 그 지역 사람에게 제일 맛있다는 하늘과 땅의 지혜이다.

우리 고향의 쌀로 빚은 제일 좋은 청주를 마시는 날을 기다리며….

소성모<농협은행 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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