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고 있는 겨울강의 노래
봄을 기다리고 있는 겨울강의 노래
  • 김동수
  • 승인 2017.03.30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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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의 금요 전북문단 / 33. 김대곤(金大坤:1953-)

전북 남원 출생. 1979년 전북의대와 동대학원에서 의학박사 학위 취득. 1986년부터 동대학 소화기 내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1989년 미국 MIT 부속 Whitehead 연구소에서 2년간 Postdoc과 1992년 오스트리아 과학아카데미 방문 교수, 1994년 <청년의사>와 1995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1994년 시집 『기다리는 사람에게』 외 6권의 시집을 발간하였다.

사진에도 관심을 갖고 2권의 사진집을 발간하였으니 최근에는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전북대 의학전문대학원장을 역임하고 2011년 EBS 한국의 명의로 소개되면서 의사로서의 명성뿐만 아니라 시인과 화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보이며 고단하고 적막한 그러면서도 소외되고 밀려난 도심의 이면들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늦은 밤의 포장마차, 무덤처럼 웅크린 공장, 인적이 뜸해진 톨게이트와 눈 내린 주차장, 심야에 가로수 그림자 속으로 귀가하는 화자의 모습 등이 그것이다.

먼 산 뒤척이는 깊고 푸른 하늘/ ∽ /산바람 눈밭을 쓸며 /덫과 함정 피해 /목숨 모질게 살아온 /헤진 발톱 /인광 같은 눈빛만으로 / 어둠 속에서 울 수 있으리라

- 「겨울 늑대」에서, 2001

제 2시집 ‘도심 밤안개 속의 지친 짐승’ 이라는 서정적 자아가 제 3시집 「겨울 늑대」에 와서는 ‘산바람 눈바람을 쓸며/ 덫과 함정 피해/ 목숨 모질게 살아 온/ 헤진 발톱’ ‘겨울 늑대’의 모습으로, 그 비극적 상황이 보다 심화되어 있다.

심야 고속버스/ 어둠의 통로를 따라 달린다/ ∽ / 산그늘의 불빛들/ 들녘도 어둠의 통로를 따라 달린다./ 깊은 밤이 끌고 가는 정적 // 소설(小雪)이 가까운 / 청명한 밤하늘 / 집 없는 별빛이 몇 개/ 촛불처럼 흔들렸다. - 「도심 별빛」에서, 2007

고단한 심야 도심의 야경과 그 속에 웅크려 도사리고 있는 존재의 불안이 여전하다. 깊은 밤 ‘집 없는 별빛이 몇 개/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는’ 도심의 적막한 풍경, 이러한 존재의 불안과 고독한 공간 속에서 그의 시는 내밀한 율조를 띄고 있다.

그의 고향은 지리산의 울창한 숲과 섬진강 상류인 주천면(남원) 강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에는 자연과의 교감과 친화의 순수가 짙게 드러나 있다. 하늘이 깊게 가라앉아 있는 동네 큰 샘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리던 기억, ‘바지를 걷어 올리고/ 뜰망 들고 개천으로 내달리던 / 초여름’(「소낙비」에서) 등, 그의 몸에서는 아직도 어린 날 고향 들녘에 두고 온 독새풀과 뒷동산의 송진 냄새 같은 식물성이 그대로 배어 있다.

은빛 대야 가득한 맑은 물 /투명한 /아침 햇살 /서늘한 차가움에 /고사리 손 담그면 / 하늘도 /구름도 /나뭇잎들도 /꼬리치며 달아났지 - 「세수」에서, 2001

‘채송화 핀 마당가/ 은빛 대야’에 맑은 물이 가득한 아침, 그 맑고 차가운 세수 대야 물속에 ‘푸른 하늘/ 구름/ 나뭇잎’ 들이 흔들리고 있는 자연 공간은 분명 그가 아직도 그리고 있는 수채화처럼 산뜻하고 풍요로웠던 시인의 유년 공간이다.

희고 깨끗한 달빛 젖어 / 눈감아 강물은 얼고 있으리라/ 깊고 푸른 일렁임 껴안고/ 산그늘마저도 굳어가는 겨울 밤/ 멀리 어른거리는 불빛들의 / 묵음이 된 생각/ 그대 강 속에 가두고/ 봄이 오기를 거부하는 이 계절의 과오. -<겨울 산골>에서, 2016

그의 시에는 겨울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춥고’, ‘차고’, ‘흰’ 겨울 산골의 강물, 그 적막의 공간 속에서 아직도 ‘오지 않는 봄’을 ‘눈 감아’ 소리 없이 기다리고 있다.

(김동수: 시인.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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