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LX통폐합
시인과 LX통폐합
  • 안호영
  • 승인 2017.03.27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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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핵정국과 조기대선 속에서 주마등 같은 시기를 보내며 문뜩 화단을 보니 꽃들이 피어나고 있다. 이즘이면 전북출신으로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거명되는 고은 시인의 시가 생각난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작은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시인의 따뜻한 시선은 지친 삶에 위로와 공감이 된다. 나태주 시인도 ‘풀꽃’에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며 흔하디 흔한 것이야말로 소중한 본질을 품고 있음을 전파했다. 시인들은 거대한 것에 시선을 빼앗겨 작은 것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죽비 같은 존재다.

시인 못지않게 작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전북에 본사를 둔 LX(한국국토정보공사)의 직원들이 아닐까 생각된다. LX의 직원들은 산간벽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국토를 측량하고 개발에 활용하도록 정보를 제공한다. 워낙 외진 곳까지 출장이 잦다보니 LX직원은 작은 지역만의 매력을 잘 안다고 한다. 완주군 비봉면의 한 염소요리전문점도 ‘LX 직원추천 맛집’ 책자가 아니었다면 지역구인데도 놓쳤을 명소였다.

LX는 2013년 전북혁신도시로 본사를 이전한 첫 공기업으로 지역경제기반이 열악한 전북 입장에서는 알토란같은 공기업이다. 지난해에는 지역인재 채용목표제의 선도적 도입, 지역기관과의 협업, 지역민과 상생교류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지역경제 활성화 부문 국토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돌연 LX전북본부를 광주전남지역본부로 통합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전북도가 공개적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이미 호남을 총괄하는 공공기관 15개 가운데 익산국토관리청과 호남농업연구소를 제외한 13개 기관이 광주전남에 있고 LX만 하더라도 임실·순창, 진안·장수 지사의 통폐합이 진행된 상황이기 때문에 격한 반응은 당연했다. 또 LX전북본부 230여 직원과 가족들 역시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신속히 확인한 결과 통폐합에 대한 내용이 확정된 바 없으며 “이사회에도 조직개편안을 상정할 계획이 없다”는 공식답변을 받았다. 더불어 공기관 통폐합은 조만간 탄생할 새 정부의 검토와 원칙이 세워진 뒤 다뤄져야 할 문제임을 강하게 피력하고 일단락됐다.

하지만 기획재정부가 사회적 책임이 큰 공기업까지 경영평가 기준을 내세우고 효율성만을 따져 통폐합을 추진하고 있어 유사한 사태는 또 벌어질 수 있다. LX관계자는 “적자도 아닌데 통폐합에 내몰리는 것은 힘없는 기관이기 때문이라는 자괴감이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공공기관을 무조건 두둔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중앙집권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소위 힘없는 기관에 대해서 협력과 대화보다 탁상공론과 숫자로 목줄을 죄는 형국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기재부가 성과와 효율성이라는 잣대만으로 공기업의 통폐합을 추진하는 것은 헌법에 규정한 국가균형발전의 책무에도 배치된다.

최근 이와 비슷한 논란은 교육부의 농산어촌 소규모학교의 통폐합 정책에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농산어촌 소규모 학교 통폐합 효과분석’에 따르면 2006년부터 5년간 얻은 총 수익은 투입비용의 1.1배에 불과하다. 작은 학교 통폐합은 지역 문화자원과 고유색을 잃게 하고 지역 공동체의 붕괴로 이어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숫자만으로 판단할 문제는 결코 아니다.

시인의 마음으로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정부라면 통폐합이 능사가 아님도 알 것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고 자세히 보아서 사랑스러운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달아 국민과 공감하는 행정을 펼칠 수 있는 대통령을 선택할 수 있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안호영<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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