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제자들, 소중한 별로 따뜻하게 품어내자
우리 제자들, 소중한 별로 따뜻하게 품어내자
  • 임희종
  • 승인 2017.03.23 16: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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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신학기가 되면 선생님도 학생도 기대 반 염려가 반이다. 우리 반 학생들은 어떤 아이들일까? 우리 선생님은 누구실까? 그러나 더 두렵고 떨리는 일은 선생님은 학생을, 학생은 선생님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랜덤으로 담임선생님도 만나고 수업을 듣게 되는 학과담당선생님을 만난다는 것이다. 모두가 신선한 충격으로 서로를 만나게 된다.

우리 학교는 선생님들의 이름 불러주기, 학생 자존감 세워주기 등은 물론 학생들은 교문을 들어오자마자 스마트폰 오프라인을 자율로 지키며, 스마트폰에서 해방되어 친구들끼리 우정을 쌓고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손에 책을’ 캠페인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신입생들도 입학식에서 선후배 상견례를 한 후 오리엔테이션장에서 2박3일 동안 반 친구들을 만나고 담임선생님의 충분한 설명을 들은 후 일과를 시작해서 그런지 혼란은 그리 많지 않은 분위기다. 얼굴이 밝고 인사도 잘하며 벌써 고등학교 학생의 면모가 엿보인다. 아마 전주지역 만세운동을 일으켰던 전주 3·13만세운동 재현행사를 참여한 것이 한 몫 한듯하다.

3·1만세운동을 하려면 태극기를 들고나가야 하는데 시기적으로 오해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 선생님들도 학생들도 많은 고민을 이야기했다. 우리나라의 상징인 태극기를 박사모 부대들이 자기들의 목적에 이용하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우리가 순수한 마음으로 과거 3·13전주만세운동을 재현한다고 하여도 극우세력들이 태극기 든 우리의 모습을 촬영하여 탄핵당한 전 대통령의 반대집회쯤으로 보일 수 있다는 의견도 신중히 검토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우려를 무릅쓰고라도 대승적 견지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선조들의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 오직 조국 사랑과 민족애만 바라보자고 결정하였다. 우리 학교와 기전여고 대표 학생회장의 기미독립선언문 낭독과 만세삼창 등의 의식을 하고 서원로를 따라 풍남문까지 ‘대한독립만세’를 연호하며 당당하게 행진을 하였다. 학생들의 얼굴에도 기백과 의지가 서려 있다. 당시의 젊은 학생들도 그러했으리라. 일제의 만행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얼마나 가슴 두근거리고 두려웠겠는가?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목청껏 대한독립만세를 외쳐도 누가 감히 우리를 방해할 수 있단 말인가?

풍남문에 설치된 무대에서 태권도 시범, 독도는 우리땅 플레시몹, 당시 3·13만세운동 재현극 등을 보면서 우리 학생들은 눈을 부릅뜨기도 하고 힘찬 박수를 보내기도 하면서 우리 민족의 역사에 스며들어가는 모습이었다. 만세운동을 벌이다 잡힌 학생들이 고문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는 울분에 떨고, 만세운동을 벌이던 학생들과 시민들에 일본 경찰이 밀리는 모습을 보면서는 힘찬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행사가 모두 끝나고 선생님들은 반 학생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무대에 오른 친구들을 칭찬하고 등을 쳐주는 학생들을 보면서, “그래, 우리 늘 이렇게 살자.”하는 마음이었다. 모든 행사가 끝난 후 우리는 또 다짐을 하였다. 그래도 우리는 행복하다. 우리를 따르는 학생이 있고, 광복된 조국에서 이런 행사를 맘껏 펼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냐고. 그러면서 우리 학생들을 더 사랑하고 잘 가르쳐야겠다는 다짐의 시간이기도 하였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자신을 이기고 온전히 제자 사랑을 실천한 장영희 교수의 말씀이 떠오른다.

어차피 선생은 참 겁나는 직업이다. 내가 어떤 식으로든 남의 삶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 더 겁나는 건, 아무리 공교육이 무너지고 선생의 지위가 땅에 떨어졌다 해도 아직은 어리고 순수한 우리 학생들이 집 외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은 학교이고, ‘선생’(먼저 태어난 사람들)에게 마음을 의지하고 답을 구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다. 학생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저 선생이 날 정말 소중한 ‘별’로 따뜻하게 가슴에 품는지, 아니면 그저 사무적인 지식 전달만으로 선생의 책임을 다한다고 생각하는지.

임희종 전주신흥고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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