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현감 이운해의 『부풍향차보』
부안 현감 이운해의 『부풍향차보』
  • 이창숙
  • 승인 2017.03.19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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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2>

『부풍향차보』원문, 각종 다구 그림이 보인다.

 찻잎은 기원전부터 활용되어 사람들이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처음부터 찻잎을 다관(茶罐, 차를 우리는 주전자)에 우려 작은 잔에 따라 마시지는 않았다. 음용방법은 다양하게 변천되었다. 이러한 연구는 주로 중국의 사료(史料)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차문화사에서 몇 개 안되는 차와 관련된 고서(古書)들 중에 전북 고창에서 발견된 『부풍향차보 扶風鄕茶譜』가 있다. 필선(弼善) 이운해(李運海,1710~)가 부안현감(1754~1756)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기록하였다. 실학자 황윤석(黃胤錫,1729~1791)이 자신의 일기(1757년 6월 22일자) 『이재난고』 속에 그 내용을 초록해두어 발견된 것이다. 부풍은 지금의 전북 부안(扶安)의 옛 지명으로, 이운해가 고창 선운사 일대 찻잎을 채취하여 직접 차를 만들어 지명을 부쳐 기술한 책이다. 제조법과 마시는 방법, 차의 명칭과 도구까지 상세히 계량하여 그림과 함께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은 현재 발견된 다서(茶書) 중에 유일하다. 원본은 전하지 않아 아쉬움은 있지만 한국차문화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운해는 2년이라는 짧은 재임기간이지만 다서를 남긴 것으로 보아 부지런하고 따뜻한 한 인물인 듯하다. 본래 차는 매년 이른 봄에 찻잎을 따서 만든다. 잠시 소홀하면 시기를 놓치기가 쉽다. 더욱이 제다(製茶) 방법을 모르면 제대로 만들어 마실 수가 없다. 이러한 형편을 알아차린 듯 각각의 증상에 맞는 약초를 배합하여 7가지 종류의 상차(常茶)를 만든 것 같다. 차(茶)로서 고을 민(民)들의 건강을 챙기려한 이운해의 섬세한 마음이 보인다.

내용을 보면 다본(茶本)에는 찻잎을 채취하는 시기에 따라 차, 가, 설, 명, 천이 있다는 차에 대한 이명(異名)을 적고 있다. 작설(雀舌)차와 맥과(麥顆)차도 등장한다. 이는 찻잎의 형태에 따라서 부쳐진 이름이다. 작설차는 참새의 혀 같고, 맥과차는 보리의 싹과 같다는 의미이다. 만드는 방법은 여린 싹을 따서 찐 후 절구에 넣고 찧어 모양을 만들고 불에 굽는다. 이러한 모양의 차를 주로 떡차라고 한다. 다명(茶名)에는 “풍을 맞았을 때는 감국과 창이자, 추울 때는 계피와 회향, 감기 들었을 때는 향유와 곽향을, 더울 때는 백단향과 오매, 열이 날 때는 황련과 용뇌, 기침할 때 상백피와 귤피, 체했을 때 자단향과 산사육”을 마시는 것이 알맞다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향약재(香藥材)와 차(茶)를 혼합하여 만든 칠향차(七香茶)에 대해 각각의 증상에 맞게 마실 수 있도록 설명한 부분이다. 제조법(製法)으로는 “6냥(1냥:37.5g)의 작설차에 향약재 각각1돈(3.75g)과 물2잔을 넣고 반쯤 되도록 달인다. 차와 약재가 잘 섞이도록 혼합하여 포대에 넣어 건조한 곳에 보관한다. 차를 마실 때는 먼저 깨끗한 물 두 종지를 다관에서 끓인다. 물이 끓어오르면 작설차1전(錢, 3.75g)을 넣는다. 뚜껑을 덮어두었다가 깊게 우러나면 뜨거울 때 마셔야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구(茶具)는 “화로에 다관을 앉히고 다관은 2부들이 크기이다. 부는 2종지들이, 종지는 2잔들이, 잔은 1홉들이 이다. 다반(茶盤)은 찻주발, 찻종지, 찻잔을 놓을 수 있는 크기이어야 한다”고 그림과 함께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차를 만들고 우릴 때 어려움이 없도록 다구의 크기와 모양, 단위까지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부풍향차보』가 발견되어 그간 많은 관심 속에서 문화상품이 개발되었지만, 최근 추진 중인 정부의 차 산업과 문화 정책에 맞춰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좀 더 다양한 문화상품으로 개발하면 좋을 듯하다. 또한 고창 선운산 도솔계곡 일원은 경관이 수려하고 불교유적이 분포되어있어 이미 명승 제54호(2009년 9월 18일자)로 지정되었다. 이에 발맞춰 이 일대 차밭조성에도 많은 관심을 갖는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글=이창숙 문화살림연구원 원장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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