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과 무위의 적정(寂靜)에 들다
무심과 무위의 적정(寂靜)에 들다
  • 김동수
  • 승인 2017.03.16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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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의 금요 전북문단 / 31. 안평옥(安平玉:1943-)

 전북 김제 출생. 전북도청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정년퇴직함. 1993년 <<문학세계>에시 <민들레의 연가>외 4편과 1998년 <<불교신문>> 신춘문예에 시 <산중의 아침>이 연이어 당선되었다. 시집으로 1996년 <<흔들리는 밤>>외 3권과 역사에도 관심이 많아 장편 서사시 <<화냥년>>과 <<제국의 최후>>가 있다.

그의 시는 일상의 삶 속에서 가치롭고 정의로운 내면세계를 들추어 이를 여과, 삶의 새로운 진경을 열어가는 선비적 기질의 전통 서정의 세계라 하겠다.

밤새 어둠을 밀어낸

냇물 속의 산

산천어가 한 입에 넣었다가

뱉어내고 또 삼키면

함박나무 산딸나무 때죽나무

하얀 웃음이 아침을 연다

간밤에 쏟아 부은 소쩍새

피울음의 애절한 마디마디 돋아난

잎새의 푸르름이 정갈한 아침

바람이 이슬을 털면

풀잎이 늦잠에서 놀라 깨어나고

산짐승은 아침을 내달린다

/∽/

수탉의 긴 울음이

아랫마을 순이네 된장 익는 냄새를

산 가득히 풀어놓아

허기진 나무들이 우우 소리 지른다

-<산중의 아침> 일부

맑고 싱그러운 산중 아침의 풍경을 물활론적 사유의 거시적 관점에서 묘사한 이미지즘 기법의 시다. 냇물의 산천어(山川魚)가 산과 들을 온통 입 안에 머금고 있다가 뱉어내면 산과 들이 얼굴을 내밀어 ‘하얀 웃음의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고 한다. 이어 ‘수탉의 긴 울음’이 ‘아랫마을 순이네 된장 익는 냄새를/ 산 가득히 풀어놓아/ 허기진 나무들이 우우 소리 지른다’는 시적 발상- 불교적 상상력과 불이관(不二觀)-도 참신할 뿐만 아니라, 구수하고 소박한 한국적 서정의 향토미가 개성적이면서도 친근하게 다가온다.

어이하여 너는 홀로

이른 봄 찬바람에 마주서서

무심을 피웠느뇨

세상에 버려져

빈손으로 오고 감을 깨우친

네 모습이

方舟로 높이 떠서 흔들리누나

두견이 피멍울진 울음 따라

되돌아 누울 자리 돌아보는

목련 한 송이

무심으로 지고 있구나

-<無心> 전문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로 지고 있는 ‘목련 한 송이’의 모습, 그것은 탐욕과 집착에서 벗어나 무심으로 비워가고 있는 서정적 자아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이후 이러한 무아(無我)관은 그의 다른 시 ‘빈 곳에 걸림이 없는’ ‘<바람>’이 되거나, ‘둥근 것은 둥근 대로/ 모나면 모난 대로 비추고 보여주는/ 거울(<거울에 관하여>)이 되는가 하면, ’적멸이 숲 속 푸르름에 안긴‘ ’<無爲>‘의 공간에 안겨 그것들과 하나가 되는 무위적정의 세계가 되기도 한다.

봉우리 있네

오름과 내림이 있네

부드러운 곡선 이어져 내리는

둔덕과 둔덕 사이 계곡이 있고

숲이 있고

물이 흐르고

물 아래 새 생명을 키우는

어머니

산은 어머니라네

-<산> 전문

산을 좋아하는 산의 시인. 지자요수(知者樂水)요,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더니 그는 분명 재기발랄한 知者보다는, 보다 항구적이고 변함이 없는 산처럼 나지막하게 ‘물 아래 새 생명을 키우는/ 어머니’처럼 산이 좋아 산을 닮아가는 고요한 덕성의 시인이다. (김동수: 시인,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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