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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시대’, 이중의 배신
이동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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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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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태어나면서 강력한 자유 의지와 의식을 지니지 못하였다고 한다. 인간의 발전한 의식과 자유 의지는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E.윌슨『인간 존재의 의미』) 이를테면 300만 년 전 선행 인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600cc에 불과했던 뇌 용량이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의 뇌 용량 1400cc로 커지면서, 오늘날과 같은 의식과 자유 의지를 지닌 존재로 진화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진화와 함께 개인 생활의 사회화를 통해 발현되는 ‘창발적(創發的) 현상’에 대한 파악 능력, 의식적 ‘작화(作話-confabulation)‘ 능력으로 인하여 인간은 의식과 자유 의지를 점차 갖추게 되었다고 본다. 그래서 가장 의식적인 활동은 사회적 상호작용의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가장 자유로운 의지는 자기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감[작화]으로써 실현된다.

자기 이야기를 자기가 만들어 가는데 있어서는 필연적으로 과거 일화들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이 기억들은 쾌락(快樂)을 위해서 끌어내거나, 시연(試演)하기 위해서 회상하거나, 기획(企劃)하기 위해서 불러내며, 혹은 이들의 다양한 조합을 통해 현재화한다.

한 시대를 농단한 채 막을 내린 ‘박근혜시대’는 자기의 이야기를 스스로 작화하지 못함으로써, 어쩔 수 없이 막중한 임무를 부여했던 모두를 배신한 채 종언을 고하게 되었다. 그것은 앞에서 언급한 박 전 대통령이 가지고 있었던, 그것으로 인해 대통령까지 되었던, ‘과거의 화려한 기억들’을 제대로 작화하는데 실패한 결과로 보인다.

그러므로 진화된 인격이 갖추어야 할 뚜렷한 의식의 결여, 그리고 어떠한 난관이 있어도 공동체의 선한 의지를 받아들일 만한 자유 의지도 갖추지 못한 채, 사적이고 병적인 퇴폐의 관행만을 되풀이하였다. 이것은 자신에 대한 배신이자, 그녀 과거에 대한 배반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의 흐릿한 의식과 결여된 자유 의지는 시대와 공동체를 역류-역행시킴으로써 이중 삼중 배반의 역사로, 우리 시대를 규정하고야 말았다.

그녀처럼 특별하고 값진 과거의 유산[기억]을 지닌 이는 드물다. 그 특별한 기억을 시대와 공동체를 위해 값지게 활용할 수 있는 자리와 권한이 어떻든 그녀에게 주어졌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화려하고 값진 기억[유산]을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상호작용을 통한 즐거움[쾌락]으로 만드는 대신 자기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소수의 패거리만을 위한 노획물로 전락시켰다. 그 특별한 기억을 새로운 무대에서 펼침[시연]으로써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을 만드는 대신 주어진 권력을 개인적 호사취미로 추락시켰다. 자기만이 소유한 소중한 기억을 불러내어 꾸밈[기획]으로써 과거의 실패를 만회하는 대신 거짓된 술수로 모두를 속이려 했다. 결국은 자기의 이야기를 만드는 ‘작화’에 실패한 것이다. 이는 물론 그녀의 시대 의식과 자유 의지의 결여를 원인으로 꼽지 않을 수 없다.

박 전 대통령이 배신하지 않은 경우도 있긴 있다. 2012년 제18대 대선 당시 외신에서 ‘독재자의 딸’이라고 조롱하는 후보가 당선되면 어쩌나, 하는 나의 염려를 무색게 하고 당선되었다. 그러나 부정선거 시비는 역시 나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기왕 권좌에 앉은 딸이 선정을 베풀어 ‘독재자 아버지’의 이미지를 벗기면 어쩌나, 하는 나의 걱정을 쓸데없게 만들었다. 그녀가 펴는 정책마다 나라를 혼란으로 몰아넣어, 역시 ‘그 아버지에 그 딸’답게 배신하지 않았다. 국회의 탄핵 의결, 헌재의 탄핵 심판이 나기 전에 모든 죄를 뉘우치고 사퇴하면 어쩌나, 하는 나의 우려를 말끔하게 씻어주듯 끝내 자퇴하지 않았다. 가당치도 않은 ‘전직 대통령의 예우’를 스스로 걷어차 버림으로써 이어지는 검찰수사와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었다. 역시 나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이 모두 선명한 의식과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자유 의지를 실현할 수 있는 인간이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제 대통령이라는 공인에서 자연인 신분으로 돌아왔다. 끝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민을 대립시켜서는 안 되겠다. 이럴 때 좋은 시 한 구절은 만 권의 서책과 누천년의 역사에 버금갈 수 있을 것이다. “보상은 바로 제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네 자신이 너의 최고의 심판관이다/ 너는 네 작품에 만족하는가?/ 의욕 넘치는 예술가여!/ 네가 황제다/ 고독하게 살아라.”(푸시킨「너의 자유로운 혼이」에서)

이동희<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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