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이 다를 뿐이다
결이 다를 뿐이다
  • 이문수
  • 승인 2017.03.13 1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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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3월 10일 11시 21분, 이정미 헌법재판관은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선고했다.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이 선언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를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한국사회는 지난해 가을부터 ‘촛불’을 든 민심이 광장을 떠나지 않았고, 국민이 진짜 이 나라의 주인임을 확인함과 동시에 1970년대부터 이어 온 ‘낡은 대한민국’과 결별했다. 봄의 밝은 기운이 대지를 깨우고, 낡고 병든 가지를 쳐내면서 새로운 싹을 틔운 봄날이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하고 일상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2017년 3월 12일 19시 16분, 대통령직을 잃은 자연인이 아무런 견해를 밝히지 않고 침묵(불복시위)하다가 청와대에서 사저로 향한 시각이다. 지금은 냉랭해졌지만, 4년 전에 사저는 인근 주민들이 ‘좋은 기운을 건네받겠다’며 벽돌을 쓰다듬기도 했던 곳이다. 박 전 대통령은 사저로 들어가기에 앞서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습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습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탄핵승복’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이 같은 불복 의사는 다가올 검찰 수사와 법정 투쟁을 앞둔 불안감을 반영한 것 같다. 소통하지 못하고, 반성할 줄 모르는 지도자의 뒷맛은 여전히 씁쓸하다.

소통과 반성은 지도자뿐만 아니라 미술인에게서도 필요한 덕목이다. 필자는 미술학을 전공한 전문가로서 미술을 통해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의 지점과 의미를 공유하기 위해 일한다. 전시 기획자로서 합당한 문제를 제시하기 위해서 자료를 수집하고, 탐방하고, 그 문제에 상응하는 미술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미술가를 섭외하면서 느꼈던 것을 얘기해 보겠다.

미술가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표현하는 창조자(Demiourgos)다. 맘대로 상상하고 원하는 대로 표현할 권리를 가진 행복한 존재. 현대사회는 사회를 주도하는 지도원리가 불확실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혼란스러운 시대이기에 아무 곳이나 향하면 될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자신이 가고 있는 길만이 ‘최고’라고 우긴다. 자신을 지지하는 소수 지인과 얘기하면서 자위하고, 정말 그렇게 확신하기도 한다. 물론 개인의 진실이지만, 사회적인 맥락 속에서 소통하지 못하고 통찰력을 갖지 못하면 아집만 강해진다. 이런 과정에서 헛갈린 해석으로 마치 ‘현대미술의 특권’인 양 어설프게 포장하면 고통을 겪을 수도 있다.

현대미술은 이미 수많은 스타일의 작품이 존재한다. 수직적인 거대담론을 넘어선 현대미술은 창작하는 이유가 다양하고, 전달하는 방식에서도 여러 가지 개념들이 뒤섞여 있다. 어느 한 방향이나 경향을 견지하는 동향을 예측하기 어렵다. 미술가 개인이 단위가 되어 갖가지 이론과 형식을 창의적으로 선택하고 조합해서 제시하고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독창성’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미술가라면 누구나 독창성을 갖고 싶지만 손쉽게 내어 주지 않는 신기루이기도 하다. 미술에 있어서 틀린 것은 없다. 결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이 ‘다름’이 중요하고 동력이다. 매일매일 생각하고 반성하면서 그것을 미술로 표현하는 삶의 방식을 갖추어야 가능할 것이다.

요즘 한국사회에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태극기와 성조기(성조기를 드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를 든 사람이 많다. 나와 다른 삶의 규칙을 가진 존재가 타자라고 했던가. 타자는 대화가 꼭 필요한 존재다. 이질적인 것들이 서로 충돌하는 삶의 공간, 이것을 필자는 ‘해방공간’이라 명명한다. ‘장미 대선’ 정국이 왔다. 더러는 불편하겠지만 많은 타자와 해방공간에서 만날 것을 기대한다.

그 누가 우리의 존엄성과 자유를 꺾을 수 있겠는가.

이문수<전북도립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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