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자율학습
강제 자율학습
  • 나영주
  • 승인 2017.03.08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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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를 걷다가 이상한(?) 현수막을 봤다. ‘강제 자율학습으로 100% 성적 향상’ 대입 재수학원의 광고다. 입시를 준비하면서 느슨해질 수 있는 공부습관을 학원이 ‘강제적인 자율학습’을 통해 다 잡아 주겠다는 의미다. 원래 자율학습은 말 그대로 자율적이어야 한다지만, 재수를 하면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에 광고 문구로 쓴 것 같다. 그래서일까. 얼핏 보면 ‘강제’와 ‘자율’이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형용모순처럼 설득력 있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들도 ‘강제 자율학습’ 중이다. 과목은? 법학이다. 최순실·박근혜의 국정농단 사태로 빚어진 각종 법적 쟁점들에 대하여 아침 신문을 통해 예습하고 저녁 TV 뉴스를 보면서 복습한다. 주권자 노릇을 안 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어렵다는 법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변호사인 필자가 보기에도 법은 어렵다. 요즘 말로 ‘문과 끝판왕’이다. 문과의 다른 학문들 입장에서 억울할 수도 있지만 보통 사람들은 법학이 제일 어렵다고 생각한다. 사법시험 시절 수만의 지원자들 가운데 극소수가 합격했고, 로스쿨 시대도 마찬가지로 정규 교육과정을 마치고 학부에서 공부 좀 한다는 사람들이 모여 치열하게 공부한다. 법학은 일단 양이 많다. 육법전서는 두껍다. 민법 하나만 보더라도 조그만 글씨로 빽빽이 쓰여진 페이지가 수천이다. 우스갯소리로 법학도들에게 법서는 호신용이라는 말까지 있다.

우리 국민이 어떤 법 공부를 했는지 과목별로 살펴보자. 우선 형법과 형사소송법이다. 검찰과 특검의 수사 결과 최순실, 이재용, 김기춘, 조윤선, 정호성, 안종범, 김기춘, 문형표, 김경숙, 박채윤 등 관련자들이 구속됐다. 그들의 죄명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강요, 뇌물공여, 뇌물수수, 업무방해, 전기통신사업법위반, 위증, 횡령 등 웬만한 형법서의 죄명이다. 국민들은 이러한 피의사실이 형법상 구성요건에 해당하는지, 나아가 특검이 확보한 증거를 통하여 충분히 입증이 될 것인지 공부했다. 특검의 브리핑을 보면서 검사가 되었다가, 피의자들의 항변을 보며 변호사의 역할을 했다가, 이젠 판사의 입장에서 이들의 죄를 판단해야 한다.

최순실·박근혜 사태의 결정적인 증거인 ‘태블릿 PC’는 어떤가. 최순실 측 변호사가 증거능력을 문제 삼자 형사소송법 증거편을 공부해야 했다. 최신수사 기법인 디지털 포렌식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결정적으로 국민들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발부 과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이라는 절차와 구속영장 발부요건에 대해 심사숙고하고 나름 법원이 영장을 발부할 것인지에 대해 지인들과 토론하며 ‘스터디’를 했다.

청와대가 특검의 압수수색 집행을 불허하자 특검은 압수수색 불승인 집행정지를 신청하였고 서울행정법원은 각하했다. 그 과정에서 국민은 행정법상 집행정지의 요건에 대해 공부해야 했다. 특검수사가 종료되고 이젠 헌법을 공부할 차례다. 탄핵 요건 해당성은 물론이고 재판관의 정족수, 나아가 결정 이전에 박 대통령이 하야할 경우 각하 결정을 할 것인지 쟁점이 수두룩하다. 광우병과 메르스 사태 당시엔 수의학과 감염학을, 북핵과 사드배치 사태에는 국제정치학과 군사학을 ‘강제 자율학습’했는데 말이다. 이 정도 공부량이면 국민 모두가 변호사 시험을 봐도 될 정도다. 박근혜씨가 ‘강제한 자율학습’은 효과가 좋다.

나영주<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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