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정신보건법 유감
개정 정신보건법 유감
  • 김형준
  • 승인 2017.03.07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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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제입원’이라는 민감한 문제로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정신보건법이 전부 개정을 통해 올해 5월 30일부터 전면 시행될 예정이다.

‘강제입원’을 인정한 현행 정신보건법의 제24조 ‘보호자의무자에 의한 동의입원’이 그동안 자의적 적용의 여지가 많아 인권 침해적 요소가 있다는 문제제기가 있었고 일부에서 그로인한 피해가 발생했다는 주장 등으로 갈등이 있었다. 이에 따라 헌법재판소에서는 이 법조항이 위헌적 요소가 있다는 취지의 헌법불일치 판결을 작년에 이미 내놓은 상태에서 정신보건법의 개정은 사실상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러나 작년 19대 국회가 종료되는 마지막 날 개정 정신보건법은 제대로 된 논의 한번 없이 보건복지부와 국회가 일방통행으로 처리하면서 새로운 논쟁을 불러오고 있다.

이제 전면 실시를 불과 두 달 앞둔 지금까지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뿐만 아니라 각 분야 당사자들이 실행 불가능한 졸속 개정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심지어는 지난 2월 16일 실시도 안 된 법을 재개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공청회가 국회에서 열리기도 하였다.

우선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일부 정신질환은 환자 스스로 병식이 없어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이 경우 환자 자신과 타인의 안전을 위해 치료를 불가피하게 일정 부분 강제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의학적 판단이 자기결정권이라는 환자의 인권과 충돌하게 되고 어떤 절차와 기준을 통해 이를 집행할 것인지를 법으로 정하는 것이 정신보건법의 주요 내용이었다.

현행 정신보건법은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는 전문의의 의학적 판단과 보호의무자(직계가족, 혹은 생계를 같이하는 친인척) 2인의 동의가 있으면 비자의적 입원이 가능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헌재는 이러한 입원을 허용한 조항이 지나치게 폭넓게 적용될 가능성이 있어 위헌적 요소가 있다며 법 개정을 할 것을 결정했다.

그 결과 개정 정신보건법은 보호의무자의 조건을 좀 더 엄격히 하고 정신과 의사의 진단 과정도 복잡하게 하여 입원 15일 안에 국·공립병원을 포함한 서로 다른 기관 소속 전문인 2인의 추가 진단을 받게 하고 국립 정신병원에 설치된 위원회에서 30일 안에 다시 입원적정성 평가를 받게 하는 등 입원 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내용으로 개정되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보호의무자의 요건과 여러 단계로 전문의의 의학적 진단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된 것이다.

그러나 얼핏 보면 타당한 듯한 이번 개정 법안의 문제는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절차라는 점이다. 우선 보호의무자의 요건을 보면 직계가족이거나 생계(혹은 주거)를 같이 하는 친인척 등으로 정해져 있는 데 사실상 다른 어느 나라보다 보호의무자의 조건이 매우 엄격하다.

핵가족을 넘어 1인 가구, 2인 가구가 대세인 현대사회에서 생계를 같이하는(생활비를 공유하는) 형제, 자매가 과연 얼마나 될 것이며 직계가족이라도 이미 가족 공동체의 의미가 없어진 경우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특히 만성 정신장애인은 경제적 빈곤층(실제 생활보호 대상자가 60%이상)과 장애인이 다수를 이루고 있고 많은 정신장애인의 가족들은 보호의무자라는 법적 용어로 책임을 지우기에는 불가능한 경제적, 정신적 부담을 떠안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현행 정신보건법에서도 입원 시 필요한 2인의 보호의무자라는 조건(형제만으로도 보호자가 안 되고 생계를 공유해야만 한다니!)을 충족하기도 어렵고 사실 퇴원 시에도 퇴원 후 감당할 경제적, 정신적, 주거적 부담 때문에 퇴원을 극도로 꺼리고 있어 환자들이 오고 갈 곳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다음으로 정신과 전문의의 여러 단계에 걸친 진단 과정도 문제인데 한마디로 이 많은 진단을 하러 이 병원, 저 병원 출장을 다닐 국공립병원의 정신과 전문의가 없고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다보니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잘 아는 복지부는 시행령, 시행규칙 같은 세부 법안에서 민간병원 전문의 쌍방 간 진단을 서로 할 수 있게 하는 등 법 취지를 전면 부정하고 모 법과 하위법이 충돌하는 코미디 같은 방안을 이미 입법 예고를 하고 강행을 예고하고 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실제 까다로워진 입원 절차로 많은 환자들이 지역사회로 돌아올 때 이 환자들의 치료를 지속시키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개방적으로 수용하려는 방안이 전혀 만들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자칫 지난해 여성혐오 살인으로 알려진 강남역 조현병 환자의 경우 같은 사건이 발생하여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위한 법이 오히려 그들을 사회적으로 터부시하는 결과를 가져올 우려가 기우만은 아닐 것이다.

결론적으로 개정 정신보건법은 입원 절차만 까다롭게 하여 보호의무자의 부양 의무와 병원 측 행정 부담만을 가중시키고 본질적인 부분은 교묘히 비켜간 꼼수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핵심은 정신과 의사의 역할을 의학적 판단에 국한하고, 보호의무자 요건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대신 비자의 입원에 대한 판단은 사법서비스(법원)의 판단을 극대화하는 것이 입법취지에 맞는 올바른 방향이라고 본다.

또한 수용위주의 치료 체계를 개방적이고 선진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말도 안 되는 낮은 수가로 고통받는 치료현장과 보호자 부담에 의존한 관리체계를 개선하고 지역 사회가 그들을 수용할 수 있는 물적, 인적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한 정부의 과감한 재정적 투자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김형준<신세계효병원 진료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부안군 정신건강증진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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