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발걸음 - 동심, 순수함
여덟 번째 발걸음 - 동심, 순수함
  • 이우찬
  • 승인 2017.03.07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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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5km : 길에서 배워가는 인생<8>

트레킹 중 이우찬씨가 심심풀이로 땅에 그린 그림

 여행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챙겨야 하는게 있다면 아마 동심, 순수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온몸으로 탐험하고 느끼며 가슴속에 간직하려면. 새로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느끼려면. 스펀지처럼 모조리 흡수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우와 이렇게 멋진 경치는 처음이야, 너무나도 아름다워, 마치 동화 속 주인공의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장면이야.”, “하늘 좀 봐! 구름 생김새가 마치 양털을 흩뿌려 놓은 것처럼 예쁘지 않아?”

4,000km가 넘는 긴 길을 걷다 보니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친구들을 접하게 되는데요. 처음에는 외국 친구들의 이같이 내뱉는 말들이 불편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의 표현 모두 하나같이 지나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말 그대로 죄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내 눈에는 그냥 구름은 구름 같고, 발 앞에 놓인 경치는 알록달록한 색을 빼면 우리가 보던 것들과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이는데 도대체 뭐가 예쁘고 환상적이고 멋지다는 걸까?’

저 역시도 처음에는 낯선 곳에서 생경한 경험을 하다 보니 호기심 가득하고 마냥 신기했습니다. 먹고 걷고 자는 행위 자체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달랐기 때문이죠. 그러나 점차 길이 눈에 익다 보니 초심자의 순수함은 변해갔습니다. 여유가 주는 달콤함도 잃어갔습니다. 끝없이 걷고 걷는 하루. 며칠을 내리 씻지 못하고 찝찝한 상태로 잠을 청하기 일쑤였고, 무게에 짓눌려 무릎에 불쾌한 통증으로 걸음을 내딛곤 했습니다. 매일같이 퉁퉁 부은 발을 주무르는 나날 속에서 이러한 익숙함은 무료함을 만들었고 무료함엔 지루함이 더해졌습니다. 이토록 말라버린 마음가짐으로 길을 대하다 보니 담고 있던 순수함이 흩어져만 갔습니다. 제가 가졌던 마음은 마치 잠깐 머물다가는 바람처럼 짧은 호기심에 불과했던 것이죠. 당연하게도 끝없이 멋진 경치들은 제 눈에 밟힐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 멋있네. 오늘 산을 여러 개 넘어야 하니까 딴생각 그만하고 계속 걸어가야지.’ 어찌 됐든지 간에,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단 생각으로 당장에 할 일은 오직 걷는 일뿐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다 보면 그 길 끝에 서 있는 제 자신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죠.

조심성이라고 하기엔 과할 정도로 낯선 사람이 건네는 맥주 한잔의 기분 좋은 제안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사소한 것들에 여러 생각을 덧붙여 잘못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면서 괜한 근심 걱정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동심, 순수함을 잃어갔습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 제 마음은 주변과 점점 단절되어 갔습니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도 얼마나 마음을 열어 보이느냐에 따라 교감할 수 있는 정도는 달라지는 것처럼 자연도 그러하고 세상도 그러한가 봅니다.

종종 여행지에서 불평만을 늘어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하지 않나요? 분명 머릿속으로는 ‘어렵게 시간 내어서 왔는데 짜증 그만 내고 즐겨야지…’라며 세차게 도리질하면서도 반대로 행동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 참으로 실망하게 됩니다. 저는 이런 상황에 빠질 때마다 온 세상에 호기심을 품고 이곳저곳 정신없이 누비고 궁금해하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며 조용히 양말을 걸던. 눈이 쌓인 집 앞 놀이터에 첫 번째로 발자국을 남기던. 좋아하는 사탕 하나에 울음을 뚝 그치던. 장난감 꽃도 향기가 있다며 코를 킁킁거리던. 좋은 것을 좋은 그대로 싫은 것을 싫은 그대로. 말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를 만나고자 노력하는 연습을 해봅니다.

“우리의 동심, 순수함은 어떤 모양이었나요? 그럼 지금은 어떤가요?” 한 번쯤 자신에게 물어봐도 좋을 법한 질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를 포함한 모든 분이 자신이 잃어버렸던 그것을 되새김질할 수 있는 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화는 어린왕자에서 나오는 짧은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마무리 짓겠습니다.

“아저씨의 별 사람들은 한 정원에서 장미 5,000송이나 가꾸지만 진정으로 원하는 걸 찾지 못해요.”, “한 송이의 꽃이나 물 한 모금에서도 찾아낼 수 있는데...” - 어린왕자 中-

우리 모두는 알죠. 순수함만이 순수함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 글·사진 = 행동하는 청년 이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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