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한 주지(主知)의 형이상학적 서정 미학
모던한 주지(主知)의 형이상학적 서정 미학
  • 김동수
  • 승인 2017.03.02 15: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동수의 금요 전북문단 / 29. 최만산(崔萬山:1944-)

 전북 김제 출생. 공주사범대학과 숭실대 대학원을 졸업(문학박사)하고 군산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인문대학장과 대학원장을 거쳐 정년을 마침. 1997년 월간 <시문학>지에 <감>외 4편으로 등단. 이후 2002년 시집 <<허구의 숲>>, <<나의 작은 잎새들>> 등이 있다. 그의 시는 절제된 언어로 본질에 접근, 이를 보다 간결하게 절제된 주지적 서정으로 육화한 이미지즘 시의 한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

한가히 서성이는 뜰안에
담홍색 감이 익어 간다
가슴의 융기를 드러내고
훈장처럼 흔들며

서둘지 아니하고
애타지 아니하고
무한히 절제하는 나의 비

네 평정의 행로에서
나도/ 붉게 익어가고 싶다.

-<감> 전문, 1997

등단작 “<감>은 과일의 성숙을 통해서 여인의 유방과 훈장이 어울린 생동적 이미지이지만, ‘서둘지도’, ‘애타지도 아니하는’ ‘무한 절제의 빛’을 보는 지성의 시선이 매우 인상적”이라는 심사평(문덕수, 최원규)처럼, 그의 시는 퍽 주지적인 면모가 있다.

지금/ 앙칼진 새벽이/ 진격해 온다/[...]/ 눈을 부릅드고/ 천지가 서둘러/ 옷을 갈아입는다/ 우리는 그의 지배에 익숙하다/ 삐리리 삐리리/ 풀피리를 불면서/ 어느새 나는/ 그의 권력에 아첨하고 있다

-<무한의 빛> 일부

실은 <무한의 빛>으로서의 ‘日出’이나 ‘여명의 빛’이라 해도 좋으리라. 동이 터올 무렵 어둠을 벗고 드러나는 천지의 형상을 ‘진격’,‘옷을 갈아 입고’, ‘굴복(아첨)’ 등 객관 이미지로 묘사하여, 마치 박남수의 시 <아침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주지적 서정의 이미지즘이라 하겠다.

한웅큼 양지쪽에
늙은 겨울이 조을고 있다.
노오란 빗살을 이고
어느새 봄은
발을 동동치며 돌아온다
치체된 육신이
굶주린 욕망처럼 느시시 깬다
바람은 골목마다 할퀴고 지나
새벽 기침을 ?으며
오지의 들녘을 갈고 있다.

-<早春> 전문

시가 역시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대상을 꼼꼼하게 관찰하여 그 내면적 속성 혹은 본질을 형이상학적 인식으로 포착, 이를 감각적 이미지로 환치해 놓는 시적 변용의 솜씨가 남다르다. ‘한웅큼 양지쪽에/ 늙은 겨울이 조을고 있다.’고 그것이고, 이른 봄 조춘이 ‘노오란 빗살을 이고 /-/ 발을 동동치며 돌아온다’도 그것이다. 이러한 시적 기교와 무드는 그의 또 다른 시 ‘아침이 살며시/ 어둠의 옷을 벗는다’(<아침>)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추상적 관념을 물리적 이미지로 생동감 있게 형상화 하고 있다.

줄을 당긴다.
높고 기다랗게 달아 맨 줄
나는 그 위에 올라 춤을 춘다
이것이 나의 생활이다
나의 군형은 우매하다
춤을 추면서
나는 속속들이
무지한 나의 생활을
폭로하고 있다

-<나의 생활> 전문, 1997

절대적 삶을 추구하는 수행자의 자세로 ‘우매’ 하고 ‘무지’한 민낯의 삶이 아니라 균형 잡힌 중도의 삶을 추구하는 모습이다. 그는 관습화된 일상을 성찰하는 한 삶의 단면을 ‘밧줄타기’라는 메타포로 간결?극명하게 묘사해 주면서 그의 지향이 인간의 삶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의 시적 인식을 명징스럽게 보여준다. 아마도 자신을 증명하는 방편으로서 시를 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김동수: 시인, 백제예술대 명예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