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기적
몽골의 기적
  • 김종일
  • 승인 2017.03.02 10: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달 급한 용무로 부리나케 동토의 나라 몽골에 잠시 다녀왔다. 거의 2년여만의 방문이었다. 3박4일이라는 짧은 출장이었고 일정도 빡빡해서 넓고 깊게 살펴보기에는 분명히 부족했지만, 불과 2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에 경악에 가까운 충격을 받기에 충분할 만큼 몽골은 매우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쉬운 예를 들어보면, 20여 년에 걸쳐 조성된 전주 신시가지 규모의 도시 시설물 두세 배 정도가 지난 2년 사이에 건설되었다고 보면 얼추 맞을 것 같다. 울란바토르의 칭기즈칸 공항을 나서서 바로 시내에 있는 몽골 정부청사로 향하는 차 안에서 불현듯 필자의 머리에 ‘한강의 기적’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능히 ‘몽골의 기적’이라 부를 만한 이런 엄청난 발전을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어떻게 이루어낼 수 있었는가를 알아내야 하는 숙제가 생겼다.

일단 많은 도로들이 새로 건설되고 넓어졌으며 대부분 포장이 되어 있다. 덕분에 흙먼지와 매연으로 시커멓던 공기가 제법 맑아져 예전보다 숨쉬기가 한층 수월했다. 하지만 해 떨어질 무렵부터 지피기 시작하는 석탄 난로 때문에 코끝을 찌르는 퀴퀴한 가스 냄새로 창문을 열지 못하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우후죽순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곳곳에 고층 건물 건설 붐이 한창이다. 새로 지은 쇼핑몰과 아파트들이 즐비하다. 거리에 차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2년 전만 해도 도심을 빠져나가면 차 한 대 만나기 어려웠는데, 이젠 꼬리에 꼬리를 문 차량 행렬이 끝없이 이어진다. 대체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을까?

몽골의 정치와 경제를 짧게 돌아보자. 불과 3백만의 인구가 우리나라의 15배에 달하는 국토에 사는 몽골은 이원집정부제 국가이다.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대통령이 있고, 국정의 운영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총리가 담당한다. 재작년 6월 총선에서 정권교체가 있었다. 과반을 차지하고 있던 민주당이 참패하고 의석의 90%를 인민당(공산당)이 석권했다고 한다. 나라는 크지만 광업과 농업이 대략 국내총생산의 90%를 차지하고 있으며, 제조업은 거의 전무해서 생필품 등은 말 그대로 100% 수입한다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현지에 머무는 동안 몽골인들에게서 들은 얘기를 종합해 보면, 몽골의 급속한 변화의 원인을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하나는 정부의 청렴도가 과거보다 개선되어 예산집행의 효율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우스갯소리일지도 모르지만 민주당 집권때 예산의 90%를 착복했는데, 지금 인민당은 절반만 빼돌리니 정부 사업 규모가 5배 정도 늘었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적극적인 외국인 집적투자 유치라고 한다. 풍부한 지하자원을 바탕으로 상당한 외화를 유치해서 사회 인프라 확충에 노력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주요 수출품인 구리와 석탄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의 하락으로 단기적인 외화 부족 사태를 불러와 얼마 전 IMF의 구조자금 지원을 받기에 이르렀다. 원자재 가격이 상승세로 돌아서고 있고 몽골인들의 적극적이며 미래지향적인 변화로 미루어보면, 현재의 위기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번 몽골 방문은 필자에게 여러 가지를 새로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 그간 여러 개발도상국들을 돌아다니면서 각 나라들이 지닌 문제점들을 살펴보고 적절한 해결 방안을 찾아 나름 많은 고민을 하곤 했는데, 드디어 하나의 모범답안을 찾은 느낌이다. 첫째, 개발도상국에는 무엇보다도 강력한 지도력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몽골의 경우 인민당이 총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하면서 매우 강력한 통치 집단이 형성되었다. 경제력이 떨어지는 나라일수록 중구난방으로 쏟아져 나오는 사회적 욕구를 모두 수용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따라서 국가적 차원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려면 강력한 통치체계가 필수적이다. 몽골을 보면서 개발도상국은 그것이 공산정부든 독재정부든 강력한 통치력의 존재 여부가 발전의 출발이라는 필자의 평소 지론의 정당성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일정 부분의 희생이 없이는 가뜩이나 부족한 국가적 역량을 한 곳으로 모으기 어렵기 때문이다. 네팔의 경우를 보면 모두가 부러워하는 출중한 관광자원을 가진 나라이지만 아시아에서 가장 못 사는 국가다. 심지어 지표상으로 북한보다도 가난하다. 네팔의 지식인들도 그 원인을 잘 알고 있다. 모두 한 입으로 강력한 지도력의 부재를 꼽는다. 둘째는 부정부패의 해소이다. 일반적으로 개발도상국일수록 부정부패는 뿌리가 깊다. 하지만 부정과 부패는 그 나라의 문화 내지는 풍토와 깊숙이 연관된 것인지라 단시간에 바로잡는 것이 특히 어렵다. 최선의 방법은 국가 운영을 시스템화하는 것이 될 수 있겠다. 국가의 제반 업무를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판단과 결정에 의존하지 않고 제도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강력한 통치력 없이는 이와 같은 제도화도 기대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강력한 지도력이 국가의 운명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몽골에 강력한 정부의 출현으로 시급한 국가적 과제들을 신속하게 수행할 수 있었고, 나아가 신뢰할 만한 정부의 출현으로 외국인 직접투자가 크게 증가한 것이 필자가 목격한 몽골의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올해 6월 대통령 선거가 있다고 한다. 만약 인민당 출신이 당선된다면, 앞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종일<전북대학교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