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발걸음 - 당연함의 재발견
일곱 번째 발걸음 - 당연함의 재발견
  • 이우찬
  • 승인 2017.02.28 15: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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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5km : 길에서 배워가는 인생<7>

행동하는 청년 이우찬, 길거리 취식 모습

 당연함의 재발견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그리 소중했음을 그리 따뜻했음을
그리 고마웠음을 그리 행복했음을

한 발짝 물러나서야 보이는 것들

“우찬아, 방에서 그만 뒹굴고 나와서 아침 먹어라.”, “엄마 제발 좀 깨우지 마! 안 먹는다고 귀찮아죽겠네.” 늦잠을 자던 저를 깨우는 당신의 목소리와 옥신각신 다툼을 벌이던 그 날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매일 매일 이토록 지지고 볶아가며 투정부리면서 서로 감정에 생채기를 남기다가도 이내 상대방이 이 세상 단 하나뿐인 존재라는 것을 재발견한 순간에는 깊은 소중함에 미안함과 머쓱함 그리고 감사함을 느끼곤 합니다.

어제의 하루가 오늘의 하루와 별반 다르지 않아 점점 지루하다는 감정이 스며들어 무뎌지고 무감각해지는 과정. 그때 당시 일상이라는 것은 그랬었습니다. 제때 밥을 챙겨 먹는 일처럼 너무나도 당연한 바로 그것...

대자연 속 160일간의 장거리 도보 여행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더는 그렇지 않게끔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길러주었습니다. 그 배경을 잠깐 이야기해볼까요? 그곳을 걷던 어떤 날에는 물이 동나 갈증을 해소하지 못해 쩍쩍 달라붙는 입 안에 고통을 머금고 그냥 계속 앞으로 걸어가야 했습니다. 또 다른 날에는 높은 고도 탓에 낮과 밤의 기온차가 커 물을 팔팔 끓여 수통에 담아 침낭 안에 집어넣고 추위를 버틴 날도 있었습니다. 울퉁불퉁한 땅바닥에 텐트를 쳐 새벽 내내 불편한 자세로 잠을 설치고 피곤한 몸으로 하이킹을 시작한 날도 있었고요. 실수로 한 숟가락 밥을 흙바닥에 흘렸을 때 잽싸게 주워 입으로 다시 가져가 넣었던 날, 뜨거운 태양이 머리 위로 강렬하게 내리쬐니 어지럼증을 호소하고 휘청거리다 넘어졌던 날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수없이 고통스럽고 어려운 상황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이런 고행 길을 겪다 보니 지나간 시절이 좋았다는 말처럼 편하고 당연했던 그 순간들을 다른 마음가짐으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고민하거나 겪지 않아도 될 정도로 당연했던 것들입니다. 누가 한국의 평범한 일상에서 당장 먹을 물이 모자라 고민할 것이며, 끼니를 제대로 때우지 못해 길을 걷다 주저앉을까요? 밖에서 자는 게 아니고서야 추위를 이기며 잠을 청해야 할 일이 있을까요? 흙이 잔뜩 묻은 음식을 아까워서 주워 먹지는 않을 것입니다. 길 위에서 지난날 한국에서의 기억을 더듬어보니 제게 허락된 것들이 참 많았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작거나 사소하다는 이유로 감사히 여기는 마음이 부족했고 세세히 들여다보려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아침으로 팔팔 끓인 된장찌개와 밥 한 숟갈 뜨길 바랐던 엄마의 구수한 사랑, 허심탄회한 대화를 안주로 삼아 소주 한 잔 꺾으며 지친 일상을 위로해주던 친구 녀석의 진득한 우정, 따뜻한 이불 밑에서 느낄 수 있었던 달콤한 온기, 절로 웃음 짓게 만드는 연인의 사랑 등 이렇게 당연하게 다가왔던 일상을 재발견. 세상에는 우리가 감사해야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셀 수 없다는 사실을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너무나도 당연해서 소중하다고 못 느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소중한 것을 소중하다고 여길 수 있는, 어쩌면 사소하지만 어쩌면 진정 큰 마음이 필요합니다.

어제와 비슷한 오늘을 보내고 나면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당연함은 그곳이 어디든지. 그들이 누구든지. 마치 산소처럼.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코 비슷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일상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밟힌 탓에 심술이 난 마음이 당연함을 감사함이 아닌 지루함으로 받아드리게 만들었겠지요. 하지만 언젠가는 늘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상도 그 대상마저도 영영 곁에 없는 부재의 순간이 오게 될 것입니다. 이 가운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은 당연하지 않게 되는 그 순간을 가슴으로 기억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와 동시에 주어진 것들에 더욱 더 감사하며, 서로를 더욱 더 아껴주고 사랑하는 일이 아닐까요?

소소해도 당연해도 정말 고마운 일상, 당연함의 재발견은 가장 손쉬운 행복의 시작입니다.

/ 글·사진 = 행동하는 청년 이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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