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의 시선
낯선 이의 시선
  • 장상록
  • 승인 2017.02.26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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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신 보도가 진실의 기준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역설적이지만, 그것은 유언비어를 만들고 동시에 그것을 금기시한 당국이 만든 민중의 앎에 대한 갈망이었다. 투명하지 않고 거짓을 말하는 당사자가 주역이 되는 사회에서 그것은 필연적이다. 그래서 구성원들은 외부의 시선을 궁금해

한다.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고 그래서 객관적일 수 있다는 믿음이 가는 그들이 바라보는 시선.

하지만 낯선 이가 바라 본 내 모습이 언제까지 중심에 있을 수는 없다. 낯선 이의 시선은 우리가

그들에 대해 내리는 평가만큼이나 불완전하고 나아가 왜곡된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요사(遼史)]에 언급 된 귀주대첩(龜州大捷)이 우리의 기억과 같을 수는 없다. 그것은 진실의 문제가 아닌 관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거란인들이 고려 침공 당시 전사한 미망인과 남겨진 가족들을 살피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감회가 인류애적인 그것과 꼭 같을 수 없는 이유다.

여기 오래 전 이 땅에 다녀간 한 낯선 이의 시선이 있다. 1123년 송(宋)의 사신 서긍(徐兢)은

개경에 약 한 달간 머물며 고려의 풍속과 인물을 접한다. 그는 귀국한 후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을 책으로 출판한다. 고려에 다녀온 경과와 견문을 그림과 곁들여 써낸 이 여행 보고서는 아쉽게도 그림은 남아있지 않지만 당시 고려 상황을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사실들이 많다. 예를 들면, 고려인들이 육식을 거의 하지 않아 도살에 매우 서툴렀다는 사실을 코믹하게 묘사한 부분도 그렇고 고려인들의 전반적 생활상이 잘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엔 당시 고려의 명망가들에 대한 평가도 보인다.

당시 그가 만난 고려 최고 실세에 대한 기록이다.

“풍채가 단정하고 거동이 온화하며 어진 이를 좋아하고 선(善)을 즐겁게 여겼다. 국정을 잡고서도 자못 왕씨를 높일 줄 알아서, 고려의 신하 중에서는 왕실을 보호하고 융성하게 하니 현신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참소를 믿고 이득을 즐겼다. 경영하는 농장에는 전답이 이어졌고 저택의 규모는 사치스러웠다. 사방에서 선물하여 썩는 고기가 늘 수만 근이었는데, 다른 것도 모두 이와 같았다. 고려 사람들이 이 때문에 더럽게 여겼으니 애석한 일이다.”

서긍이 얘기하고 있는 인물은 바로 이자겸(李資謙)이다. 그가 만난 후 3년 되던 해 이자겸이 실각하게 되는 것을 보면 서긍의 평가가 비교적 정확했음을 알 수 있다.

여기 또 한 명의 거물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얼굴이 크고 장대한 체구에 얼굴은 검고 눈이 튀어 나왔다. 그런데 두루 통달하고 기억력도 탁월하여 글을 잘 짓고 역사를 잘 알아 학사들에게 신망을 얻는 데에는 그보다 앞선 사람이 없었다.” 여기서 언급 된 이는 김부식(金富軾)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김부식에 대한 서긍의 호감이 대단했다는 것이다. 서긍은 귀국 후 김부식의 초상까지 그려서 소개했고 그에 따라 김부식의 명성은 송나라 전역에 알려지게 된다. 후일 김부식이 송에 사신으로 갔을 때 큰 환영을 받았던 것도 서긍의 영향이 컸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주목할 사실은 서긍이 바라 본 이자겸과 김부식은 그 차이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출발에 있어서만큼은 동일한 대상이었다는 부분이다. 서긍은 고려가 전통적 문벌 사회이며 그 핵심에 이자겸과 김부식 가문이 자리하고 있다 말한다.

서긍이 고려에 대해 기록한 그 모든 것에 대해 우리가 마냥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고려와 거란의 문제를 바라보는 근본적 시각이 [고려사]와 [요사]에 달리 기록될 수밖에 없는 이유와 같다.

이제 우리는 전 시대의 암울한 현실에서 접한 외신과는 다른 관점에서 그것을 평가해야한다.

아사히와 산케이, 인민일보와 환구시보 그리고 CNN과 알 자지라(Aljazeera)까지.

그것이 한국과 직접적 연관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그 모든 낯선 시선에 대해 우리는 좀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결국 우리 모습은 우리가 정의해 나가는 것이다.

서긍이 한국사에 남긴 공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중화주의자이고 그가 바라 본 고려는 꽤 괜찮은 오랑캐일 뿐이다.

장상록<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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