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발걸음 -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늘
여섯 번째 발걸음 -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늘
  • 이우찬
  • 승인 2017.02.21 1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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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5km : 길에서 배워가는 인생’<6>

트레일 복귀를 위해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던 이우찬씨가 지나가는 차량이 없자 도로 위에 잠시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하루, 이틀, 일주일... 나 정말 뭐하는 놈인지 싶다. 변하는 건 하나도 없고 이유 없이 짜증만 나고...”, “그래도 넌 나보다 낫잖아.” 의미 없는 비교와 푸념, 깊어가는 한숨.

온종일 혼자 방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며 우울해 하는 제 모습이 처량해 보였습니다. 의지를 상실한 채 돌파구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던 시기, 그늘진 곳에서 신음하는 그 초라함, 그 비참함에 무너져 가는 제 모습에서는 영영 웃음 짓지 못할 것처럼 희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저에게는 어두운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던 때가 있었습니다. 과연 그늘 없는 사람이 존재할까요? 아무 데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나라, 유토피아처럼 슬픔과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세상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겠지요. 세상과 담을 쌓고 주변 사람들과 거리를 두며 자존감, 열등감이 바닥을 쳤던 한 사내 녀석. 저는 모험을 통해 객관적으로 부족한 저 자신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엔 부족하지 않은 사람, 그늘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죠.

산속에 고독이 낮게 깔리고 사방에 어둠이 땅을 뒤덮으면, 헤드 랜턴을 켜지 않고선 주위를 제대로 분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비슷비슷한 나무와 풀들 사이에 갇혀 종종 길을 잃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와 먹구름이 만들어낸 컴컴한 그늘에 무거운 어깨가 말없이 축 늘어졌고, 끝없이 펼쳐지는 오르막을 눈앞에 두고 걸을 생각에 잔뜩 겁을 먹은 적도 있죠. 길 위에서는 항상 행복하기만, 항상 좋지만은 않더라고요. 고통도 슬픔도 걱정도 있더라고요. 만약 세상이 온통 채도가 높고 따뜻한 색으로만 칠해져 있다면 어떨까요? 밝은 빛만이 존재한다면요? 아마 어두컴컴한 그늘이 없다면 환한 빛의 소중함을 알 길이 없지 않을까요?

누구나 그늘은 가지고 있습니다. 지독하게 가난한 시절을 보내고 있을지도,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았거나 받고 있을지 모릅니다. 또한, 부정적인 인간관계로 신음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하고 싶은 일이 없어서 고민이 들지도, 내적으로 나태함이나 반복적인 일상에서 지루함을 느끼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날, 모든 순간이 기쁘고 행복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좀 더 그늘을 적극적으로 마주해보면 어떨까요?

지난날의 저는 그늘에 대해 ‘왜, 하필 내게 다가오는가?’라는 의문만 던져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충실히 저 자신을 바꾸는 데는 관심이 없고, 그저 행복해 보이는 타인의 인생과 처지, 조건, 상황 등을 비교해가며 불만을 품게 되었습니다. 무언가 탈출구가 필요했습니다. 매일 이렇게 그늘 속에 지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남들처럼 당당함을 잃지 않으며 자신감이 충만한 삶을 살아가길 원했습니다. 그때부터 ‘나를 똑바로 바라보자’라는 생각으로 제 삶을 현실적으로 직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더는 다른 사람들의 인생과 비교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스스로 변화하기 위해 작고 사소한 행동부터 시작했습니다. 방구석에 박혀만 있던 몸을 일으켜 하루 30분이라도 달리기를 해보고 (무대 공포증이 심했었기에)앞에 나갈 기회가 생기면 버벅거리더라도 손부터 들고 나가곤 했습니다.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아주 서서히 천천히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살아가면서 필요한 작은 지혜를 터득하기도 하고 가슴 속에 용기도 자라났습니다. 그러면서 삶에 얽혀 있는 어려움을 하나씩 풀어나가게 되더라고요. 막상 그늘에 빠져 있을 때 생각했던 것만큼 극복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삶에 그늘이 없다면 그건 살아있는 삶이 아닐지 모릅니다. 곱게 익은 열매는 화창한 날만 지내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그늘을 속에서 고통을 인내하고 고난을 극복하며 싹 틔운 삶이 더 값지고 아름답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곤충도 이 혹독한 겨울을 이기고 노래하는 봄날을 맞이하듯이 우리 역시 그늘을 지나 화창한 날을 맞이할 순간을 위해 한 발 더 딛어보면 어떨까요?

첫 번째 그늘을 극복하기란 정말 많이 힘들 거에요. 두 번째에도 많이 힘들 것입니다. 세 번째는 힘들긴 하지만 전보단 견딜 만 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전보다는 쉽게 털어내고 일어서겠지요. 우리는 생각보다 강하니까요.

그늘은 우리가 밝은 빛을 마주하기 바로 마지막 발을 내딛기 직전의 순간이라고 믿습니다.

/ 글·사진 = 행동하는 청년 이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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