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전 박한영 스님
석전 박한영 스님
  • 조배숙
  • 승인 2017.02.19 15: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북은 ‘예향’의 고장이다. 다방면에서 수많은 예술인들을 배출한 저력이야말로 예향 전북의 긍지이자 큰 자산이다. 특히, 한국 근현대문학계에서 전북출신들의 발자취는 도드라진다.  익산 출신의 시조 시인 가람 이병기, 고창 출신의 시인 미당 서정주, 부안 출신의 시인 신석정 등 우리나라 문학사에서 내로라하는 저명한 작가들 중 전북출신들이 눈에 띠게 많은 연유가 있을 터라 궁금했다.

한국 근현대문학의 산파역

우연한 기회에 백제예술대학 김동수 명예교수님으로부터 전해들은 석전 박한영 스님의 이야기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연이어 군산 동국사 주지 종걸 스님께서 지난 해 석전 스님의 일대기를 책으로 펴내 그의 행적을 오롯이 살펴볼 수 있는 행운까지 더했다.

석전 박한영 스님은 1870년 전북 완주군 출생으로 1948년 내장사에서 법랍 60세, 세수 79세로 입적했다. 스님은 조계종 초대 교정을 지냈으며 3?1운동 당시 민족대표로 합류하지는 못했으나 3?1운동 이후 한성임시정부의 국내 특파원과 전북 대표를 맡기도 했다. 조선민족대동단에 합류해 항일운동에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가로서 행적뿐 아니라 한용운 스님 등과 함께 일제에 항거하며 불교유신을 역설했다.

독립운동가와 불교지도자로서 스님의 행적 말고 눈에 띄는 것은 교육가이자 문학가로서의 선구적 역할이다.

석전 스님이 길러낸 문학가의 면면은 실로 눈부시기까지 하다. 만해 한용운, 육당 최남선, 위당 정인보, 조지훈, 김달진을 비롯해 전북출신의 이병기, 서정주, 신석정 등이 그의 문하에서 배출됐다. 한마디로 한국 근현대문학의 산파 역할을 했던 것이다.

석전 스님에 대해 당대를 대표했던 문학가들의 평을 엿보면 스님의 인품과 학식 그리고 그가 이들에게 끼친 영향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당대 대표적 문인들의 평

육당 최남선은 석전 스님이 유일하게 남긴 시집인 「석전시초」를 발간했다. 그는 「석전시초」 서문에 “석전사를 만나매 내전이고 외전이고 도대체 모르는 게 없을 만큼 박식했다. 나는 누구에게도 물어볼 것이 없는데 석전 선생에게는 물어볼 것이 있다”고 기술했다.

또 위당 정인보도 「석전시초」에 실린 ‘석전상인소전’에서 “대관절 박한영과 함께 길을 갈라치면 한국 땅 어디에 가나 그는 모르는 게 없다. 산에 가면 산 이야기, 물에 가면 물 이야기...이른바 사농공상 무엇에 관한 문제를 꺼내든 간에 그의 화제는 고갈될 줄을 모른다”고 스님을 평했다.

석정 신석정은 “스님의 형형한 원광의 한 자락에 의지하여 스님의 언행을 좌표로 삼고저 할 뿐 스님의 끼치신 불법이 겁을 이어 길이 빛날 것을 믿고 서에 갈음하는 바입니다”고 적고 있다.

미당 서정주는 “내 나이 이십 전후의 몇 해 동안 나를 누구보다도 더 큰 자비로 이끌어 주신 은사 스님으로서, 내 마음 속에서도 내 육신의 친부모 곁에는 이 분이 늘 자리하고 계신다”고 스님을 기렸다.

석전 스님은 우리나라 근현대문학의 지평을 여는데 큰 기여를 했던 인물로 평가된다.

스님의 발자취를 재조명하고 그 분의 업적을 기리어 우리 문학계에 이정표를 세우는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전북의 문학계와 뜻있는 전북 인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해봤으면 싶다.

우리 문학계의 이정표로

얼마 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군산 출신의 고은 시인이 로마재단에서 수여하는 국제시인상을 수상한 바 있다. 지난해에는 소설가 한강이 노벨문학상,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사상 첫 아시아 수상자다.

박근혜 정부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두 작가의 이름도 포함시켰다.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은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이 축전을 거부했다고 특검 수사에서 밝혀졌다. 참담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파문은 국격을 추락시켰지만 한국문학의 저력은 세계를 감동시켰다.

야만의 정부가 저지른 불순한 의도를 문학은 감동으로 세계 속에서 희망의 빛을 밝혔다.

석전 박한영 스님은 그의 한시 <불국사에서> 참혹한 세상 속에서도 절개와 기상을 잃지 않는 미래의 희망에 대해 이렇게 노래했다.

‘서리 내린 뒤뜰에 핀 국화꽃이/홀로 말세의 풍속을 이기고 서있네.’

/국회의원 조배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