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의 하늘과 바람을 지키는 적상산의 시인
무주의 하늘과 바람을 지키는 적상산의 시인
  • 김동수
  • 승인 2017.02.16 14: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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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의 금요 전북문단 / 28.이봉명(李奉明:1956-)

 전북 무주 출생. 1991년 <<시와 의식>>으로 등단. 전북작가회의. 한국장애인문인협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 시집 << 꿀벌에 대한 명상>>외 3권과 산문집 <<겨울 엽서>>등이 있다. 무주작가회의를 창립하여 <<무주문학>>을 지금까지 꾸준하게 발간하고 있으며 눌인문학회 사무국장도 맡고 있다.

여자의/ 가슴에 숨겨진 비수/ 칼끝에서/ 빗살 하나 자지러지는/ 해질 무렵//
온통 하늘에/ 상처를 낸다

-<노을> 전문

낯선 마을에 얹혀 사는 막일꾼은 슬프다 막차가 닿는 깊은 산골 모퉁이, 낮은 추녀에 머리 숙여 든 비스듬히 쓰러져 반듯치 못한 초가집은 슬프다 쫓겨난 도회지 판잣집만한 집이라면 슬프다`

-<그믐달, 1> 일부

이봉명의 시는 ‘가슴에 숨겨진’ 상처와 한(恨)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다. 그것도 남자가 아닌 ‘여자’, 아침이 아닌 ‘해질 무렵’, 초승달이 아닌 ‘그믐달’ 등 ‘낮고’ 어두운 하강 이미지(falling image)에 자신의 심상을 이입시켜 비극적 정조를 심화시켜 가고 있다.

그가 서 있는 시적 공간 또한 ‘빛 없는 그늘’, ‘다들 잊어버리고/ 무겁게 침묵하는 바다’, ‘새벽달처럼 앓는 바다’가 되어 ‘꼬리를 감추고 있는’ 폐쇄와 은둔의 공간으로 드러나 있다.

눈이 내린다

지난날 내가 다리를 절며

걸어온 길목부터

지금, 낯선 마을 입구까지

흰 눈은 옛날의 기억처럼 쌓이고

그 영혼은 울타리를 치며

목이 마른 나는 /∽/

어둠 속에 등불을 켜고/∽/

문득 죽은 자의 그림자를 밟으며

그에게로 가고 싶다

- <눈이 내리면> 일부

여전히 시상이 어둡고 무겁다.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완의 한(恨)이 그의 가슴에 남아 또 다른 열망을 꿈꾸게 한다. ‘눈이 내리면/ 어둠 속에 등불을 켜고’ ‘그에게로 가고 싶다’가 그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은사인 소설가 박범신은 ‘그는 크고도 깊은 사랑의 우물을 지니고 사는 사람이다. 억눌린 자, 가난한 자, 못난 자, 병든 자 등 소외된 사람과 소외된 삶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타협하지 않는 그의 곧은 정신은∽억눌린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억누르는 사회 역사 구조에 대해 안이한 타협을 거부한 사람’이라고 평한 바 있다.

푸른 것들이 꿈틀거릴 때마다

내 몸이 따라 꿈틀거린다

빈 들판 가득 꿈틀거린다

죽은 자도 함께 꿈틀거린다

함부로 깻잎을 딸 수가 없다. 밭길을

빠져 나와 무수한 얼룩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내 마음 속의 얼룩

어머니가 빠져 나가 버리고

집사람이 뒤따라 나간

그 얼룩들 송두리째 꿈틀거린다

- <깻잎을 따며> 일부

깻잎을 따면서 거기에 꿈틀거리고 있는 깨벌레를 보면서 그것들을 어쩌지 못해 그것들과 함께 꿈틀거리고 있는 그의 순박한 생명존중 정신과 외경 그리고 거기에 묻어 있는 ‘얼룩’들을 통해 생의 슬픔을 동시에 읽어낸 시인의 여린 마음, 곧 그의 천심(天心)을 엿보게 한다.

그는 무주에서 태어나 평생을 산골 무주에서 농사를 지으며 오늘도 ‘모두 다 손 털고 떠난/ 고향 들녘에서’(<포내리에서>) ‘꽃과 바람을 사랑한 꿀벌’(<꿀벌과 함께>)이 되어 무주의 하늘과 바람의 시인으로 고향을 지키고 있다.

(김동수: 시인, 백제예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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