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정책도 의료현장에 무리가 없어야
좋은 정책도 의료현장에 무리가 없어야
  • 최두영
  • 승인 2017.02.12 15: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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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를 선진국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을까? 짧은 시간동안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사회, 경제, 정치 등 많은 부분에서 숨가쁜 발전을 이룩해 왔다. 1996년 12월 OECD 가입을 하고 2015년 기준 1인당 국민총생산 2만7천 달러 정도의 소득이 되었으니 선진국의 범주에 포함되기에는 부족하지만 선진국 언저리에는 이르렀다는 것이 전반적인 의견일 것이다.

이렇듯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친 눈부신 발전과 삶의 풍요로움, 다양성에 힘입어 각종 주요 정책들과 법령들도 탈바꿈을 계속하고 있다. 더불어 생활수준 향상에 따른 건강에 대한 수준 높은 의식 변화들은 의료계에도 변혁의 소용돌이를 가져 온 것이 필연적일 것이다.

하나 아무리 필연적이라 할지라도 근래 몇 해 사이 의료계를 강타한 각종 의료법 개정들과 시행이 예고되는 의료 정책들은 의료계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힘들다는 평가를 넘어 의료계의 존립을 위협할만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물론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분야이니만치 더욱 선진적이고 안전한 법령 제정과 의료정책들이 시행된다고 해서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러나 의료계의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획일적으로 시행되다 보면 부작용은 물론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의료기관들이 많다는 점이다.

당장 눈앞에 닥친 몇 개의 사안만을 살펴보아도 오는 5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정신건강복지법, 내과의 수련기간 단축으로 적어도 4-5년내 자리 잡아야 할 호스피탈리스(입원전담전문의) 제도 시행, 정부의 감염관리 강화 일환으로 상급종합병원은 물론 300병상 이상 의료기관들도 2018년 12월까지 의무적으로 갖추어야 할 음압격리병실 설치 의무화, 완료될 때까지 시행 해 나갈 간호·간병서비스 등 몇 가지만 놓고 보더라도 숨 돌릴 틈이 없다.

물론 필자 역시 국민을 위한 각종 의료법 개정과 의료 정책 시행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국민 건강을 위해서는 의료계 역시 발전적인 변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의료 환경이 그리 녹록지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우선 의료계에서 꾸준히 제기해 왔던 낮은 의료수가의 문제다. 개정 또는 시행되는 법령들과 의료정책들은 많은데 반드시 필요한 예산들이 정부 지원은 없이 민간 의료기관들이 책임져야 할 몫이 된 것이다. 의료수가가 낮다 보니 병·의원을 포함한 모든 의료기관들이 많은 환자들을 진료해 수익을 남기고 운영을 해야 하는 구조 즉, 기업으로 말하면 박리다매 구조가 돼 버린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일례로 음압격리병실 설치 공사비 경우 2억원에서 3억원, 최소한 이동형 음압기 구입비용은 500만원에서 4천만원에 달한다. 설치 후에도 문제가 발생한다. 사용할 환자가 없을 경우 그대로 유지만 해야 한다. 시설 투자 후 수익을 올리지 못하면 그 손실들은 그대로 쌓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는 5월 시행을 앞둔 정신건강복지법이나 간호?간병서비스의 경우에도 늘어나는 업무량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도 수익의 50% 가깝게 넘나드는 의료계의 인건비 실정들을 감안해 볼 때 인력 보강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 4일 대한내과학회, 대한외과학회가 주최한 호스피탈리스트(입원전담전문의 제도) 시범사업 설명회에서 아산병원, 삼성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소위 빅5 병원이라는 대형병원들조차 임상교수 채용, 교수실 제공, 임상 교수 동급 수준 급여 제공 등을 담은 채용 정보 안내를 했다. 특히 내과의 경우 수련과정이 축소되어 4-5년 내 호스피탈리스트와 같은 전문의를 반드시 채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수도권의 내로라하는 대형병원들조차 인력 확보가 쉽지 않으니 지방 의료기관들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몇 개의 의료법령이나 의료정책들은 시행되어야 할 좋은 제도들이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은 없고 낮은 의료수가, 힘든 인력 충원, 높은 인건비 등에 허덕이는 의료계로서는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메이요 병원처럼 치료받은 환자들의 자발적인 연간 기부금만 3천억원에 달할 정도로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자리 잡힌 사회는 아니지 않은가?

좋은 정책들이 꽃을 피우고 의료계가 안정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묘수가 필요할 때이다.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도 중요하지만, 상황에 맞는 공적 지원과, 추진 기간의 유연성, 유형에 따른 제도의 합리적 적용 등을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정부 관련 기관 및 지자체들까지 중지들을 모으면 의료계 실정에 맞으면서도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고 희망을 되찾는 상생의 법령과 의료정책들이 의료 현장에서 자랄 것으로 본다.

최두영<원광대학교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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