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한 알과 문화예술의 전북 몫 찾기
대추 한 알과 문화예술의 전북 몫 찾기
  • 김인태
  • 승인 2017.02.09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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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저 혼자서 둥글어 질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 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최근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장석주 시인의 시 ‘대추 한 알’이다. 대추를 통해 세상 이치를 재치 있고 엄중하게 표현한 시인의 의도는 무엇일까?

우리 선조들은 여러 과일 중에서도 대추를 가장 중요하게 여겨 제사상 맨 왼쪽에 올려놓곤 했다.

조선시대 좌의정이 우의정 보다 높은 자리였듯이 동양권에서는 예전부터 왼쪽을 오른쪽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다.

사마천의「사기」에도 대추는 신선이 먹는 과일로 등장한다.

현대는 기술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술의 시대는 근대 서구의 형이상학과 그것을 통해 확립된 인식이 세계적으로 보편화되는 과정 속에 있고 동양사회도 이러한 흐름에 합류하게 되었고 기술의 시대가 극단으로 치닫게 되면서 기술이 오히려 인간을 위협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현실이다.

기술 시대의 위험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선 자연자원의 무분별한 약탈과 굴착, 환경오염으로 인한 삶의 터전 상실, 인공지능에 의한 일자리 위협 등을 기술 시대의 위험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생존과 안전에 대한 위험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위협이 더 근본적인 위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생물학이나 자연학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자기 고유성과 독자성을 갖지 못하고 거대한 기술체계 속에서 한낱 기능인으로 외부의 환경에 반응하면서 생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가장 두려운 현실이다.

오늘날 테크네적 사유와 포이에시스적 존재양식을 통한 사유의 창조적 원형은 유일하게‘예술’속에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예술 자체도 주문 생산방식으로 위기를 맞고 있지만 작품의 창작과정과 작품을 통해 진리를 체험하는 과정 속에 분명 인간의 창조적 사유 원형이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현대 기술의 위험 극복을 위한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대추 한 알이 붉게 익기까지는 그 안에 태풍, 벼락, 번개, 땡볕이 깃들어야 한다.

전라북도 문화예술 정체성 또한 그 안에 전라도 천년의 역사와 호남평야의 쌀 문명 그리고 조선왕조 발상지이자 후백제 왕도로서의 뿌리에서 찾을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 웅치와 이치 전투를 통해 호남과 국운을 지켜낸 찬란한 역사가 바로 전북의 자부심이다.

그러나 전라북도는 그동안 정치적 역학관계로 인해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인재등용과 재원 불균형 등의 불이익을 고스란히 감내해 올 수 밖에 없었다. 전북도가 올해 도정의 화두를‘전북 몫 찾기’로 정하고 핵심사업 발굴과 전략적 추진을 위한 노력을 다하겠다고 선포한 배경이다.

전북의 정체성 찾기와 위상 회복을 골자로 문화예술 분야의‘전북 몫 찾기’또한‘한국 속의 한국’이라는 거대 담론 속에서 반드시 성취되어야 할 분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문화예술의‘전북 몫 찾기’는 지역예술인들이 기능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 지역 예술가라는 한계를 스스로 극복하려는 적극적인 의지와 실천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전북도는 변방이라는 이유만으로 중앙 진출이 어려운 예술인들에게 교두보를 마련해 주고, 진정한 문화 민주주의 실천을 위한 소통과 거버넌스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또한 왜 전북이 예향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을‘전북 몫 찾기’과정에서 확보해 나가려 한다.

‘전북 몫 찾기’는 무엇보다 냉철한 철학적 사고와 치밀한 전략 그리고 단합된 의지가 필요하다.

전북 문화예술 분야의‘전북 몫 찾기’는 문화예술계뿐만 아니라 전 도민이 똘똘 뭉쳐 힘을 합쳐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찬란했던 전라북도 문화예술의 위상 회복과 진정한 독립을 위해 험난한 여정이지만 새로운 길을 뚜벅 뚜벅 걸어보자.

김인태 / 전라북도 문화체육관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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