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세계
다시 만난 세계
  • 나영주
  • 승인 2017.02.08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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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지만, 눈앞에 선 우리의 거친 길은 /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바꾸지 않아 포기할 수 없어…(중략)…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 언제까지라도 함께하는 거야 다시 만난 나의 세계.”

아이돌 걸 그룹 ‘소녀시대’의 2007년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의 일부 가사다. 이제 막 세상이란 껍질을 깨고 나온 발랄한 소녀들이 부를만한 노래다. ‘다시 만난 세계’가 등장한 곳은 화려한 조명 아래 무대도, 대학가 축제 현장도 아닌 엄중한 시위 현장이었다. 2016년 7월 이화여대가 평생교육 단과대학인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을 강행하자 스무살 남짓한 이화여대생들은 대학 본관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는 과정에서 ‘다만세’를 불렀다. 시위 현장에서 흔히 불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과 같은 민중가요가 아닌 걸그룹의 노래였다는 점에서 굉장히 이채로운 풍경이었다.

이화여대생들의 점거 농성은 10월까지 계속되었고 그 와중에 최순실과 정유라 모녀의 이화여대 부정입학과 학점 비리 사실이 밝혀지면서 결국 사태는 총장 사퇴로 귀결되었다. 이화여대생들의 승리였다. 과격한 투쟁을 통해 이뤄낸 결실이 아니라 걸그룹의 노래를 부르면서 누구라도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활발한 난상토론을 이어간 끝에 쟁취한, 성스러운 대학내에 경찰 1,600명의 공권력 투입을 요청한 대학의 압력에 굴하지 않은 ‘소녀’들의 승리였다.

이화여대 학생들은 서로를 ‘벗’이라고 부르며 온라인 커뮤니티 ‘이화이언’을 통해 세를 규합하고 대학의 부당한 처사에 아름답게 저항했다. 언론에 따르면 이화여대생들은 본관을 점거하면서 시험공부까지 했다고 한다. 선배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언론계나 법조계에 속해 있는 졸업생들은 법적 조치나 언론 대응에 대해 조언을 해 주었다고 한다. 이화여대 사태는 종전 학내시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양상이었다.

여성성의 발현이 이끌어낸 근사한 승리라고 평가한다면 여성성을 한정적으로 해석하거나 기존 가부장제도하에서 만들어진 통념에 근거하여 평가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겠다. 어쨌든 어른들이 만든 구태의 세상에 신선한 저항을 한 점은 평가 받을 만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 이후 박 대통령 개인의 여성성에 근거하여 여성 전체를 싸잡아 비판하는 세태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후보시절 캐치프레이즈는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었다. 그녀가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이었다는 점은 명백하다. 다만 기존 대통령들 모두가 남성이었고, 남성이 가지지 못한 부드러움과 여성 특유의 섬세한 커뮤니케이션을 기대한 일부 국민들은 ‘여성’ 대통령에 대한 실망으로 여성 정치인 일반, 나아가 여성의 공적 책임에 대해 폄하를 하기도 한다. 최근 표창원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 1층 로비에 열린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한 박대통령의 나체 작품을 주최하여 더불어민주당내의 징계를 받았다. 공적인 자리에 있는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박 대통령이 여성이기에 여성에 대한 공격으로 비추어질 소지가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이 박근혜로 대표되지 않듯이, 대한민국 여성은 박근혜로 대표되어지지 않는다.

올해는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있다. 이 세상 반복되는 슬픔 속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희미한 빛을 향해 걸어도 이화여대생과 같은 빛나는 젊음이 있다면 새로운 세계는 우리 앞에 펼쳐져 있을 것이다.

나영주<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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