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 어려운 그 맛
말하기 어려운 그 맛
  • 최정호
  • 승인 2017.02.05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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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설 연휴를 외국에서 보냈다. 새해 세배와 제사에 정성을 다하는 문화환경에서 자란 나는 명절 연휴 때 이렇게 가는 여행에 죄책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와 아이들의 즐거움도 고려해야 한다. 이 땅에 살아가는 장삼이사들의 이런저런 고뇌는 다르면서 또한 비슷할 것이다. 우리는 ‘도덕의 계기판’을 조정하여 ‘비극’을 견디며 산다. 지구온난화 때문인지 겨울 같지 않은 따뜻한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 시기라 일단 방콕에 도착하니 따뜻해서 반바지에 샌들을 신고 여름을 즐기는 호사를 누렸다. 낯선 곳에서의 경험은 현대인들이 흔하게 빠져보고 싶은 안전한 일탈이다. 누구에게든지 일상은 버겁고 지루한 측면이 있고, 시간과 비용이 허락하는 한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짜고 비릿한 타이 특유의 감칠맛이 느껴지는 음식도 먹고, 태국마사지도 받았다. 그런데 태국음식 맛을 표현할 적당한 단어를 찾을 수 없다. 내 어휘력 부족 탓일까? 구린 것도 아니고, 신맛도 아니고,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맛이니 표현할 수가 없을까? 그러나 며칠을 먹어보니 그 맛에 내 입과 코가 적응되기도 한다. 경험되어지는 대상은 현전하는데 그것을 서술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말이 없다면 나는 그 대상을 서술할 수가 없다. 언어 없이 내가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아마도 태국말에는 그 음식의 맛을 표현할 단어가 넘칠 것이다. 생각해 보니 사람들이 “말할 수 없다. 뭐라 표현할 길이 없다.”고 할때 그들의 비논증적 표현태도를 불성실하다고 의심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은 예민하고 정확한 언어생활의 반증이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침묵하라고 한 어떤 철학자도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말할 수 없음을 깨달았을까? 표현하기 어려운 태국음식의 향과 맛이 언어와 대상, 주관과 객관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나는 그 많은 길가의 비위생적인 시설의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도 배탈이 나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어느 곳이든 틈만 있으면 천막과 탁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음식을 만들어 팔고, 사먹는다. 방콕의 거리는 내게 극심한 대조로 다가온다. 부자와 빈자, 오래된 집과 현대적 건축물, 전통적 삶의 방식과 최신전자제품, 이 모든 것들이 처음에는 부조화로 구분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익숙해진다. 그곳에서는 그곳만의 유연한 방식이 작동되고 있었다. 그 많은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비좁고 위험하게 엉켜도 화내는 운전자도, 클랙슨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나 공동체를 만들어가면서 그들만의 지혜를, 그들만의 미덕을 터득한다. 또한 그들만의 어리석음과 악덕을 버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들러붙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동전의 양면을 동시에 볼 수 없는 존재이다. 냄새가 진동하고 쓰레기가 여기저기 쌓여 있는 곳에서 해맑은 웃음을 머금고 즐거운 식사를 함께하는 저 사람들이 행복해 보인다. 행복은 자유로부터 나온다. 권력과 금력은 억압과 빈곤으로부터의 자유를 제공하지만, 반란과 박탈의 두려움을 끌어들인다. 타인에게 해를 주지 않을 만큼만의 자유가 나의 지속적 인‘행복’을 위협하지 않는다. 나는 갑자기 그들이 부러워졌다. 가난해도 불행해 하지 않고, 가까이 다가오는 타인의 입 냄새를 삶의 전제조건으로 수용하는 너그러움은 그들의 삶이 처한 환경에 적응결과 일 것이다.

나는 생각만큼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나 자신의 주인도 아니다. 나는 내가 처한 삶의 조건에서 벗어난 존재가 아니다. 내가 나를 선택한 것도 아니다. 내가 방콕에서 태어났다면 나는 저기 저 많은 그들처럼 일상을 보내고, 다른 욕망을 가질 것이다. ‘생각’한다는 것이 존재의 근거라고 하지만 나는 생각과 상관없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 내가 대상을 구성한다는 칸트의 주체선언은 기분을 고양하기는 순기능이 있지만 거대한 구조 안에서 강요된 자발성을 ‘자유’로 착각시키는 삶의 ‘마취제’가 아닐까? 나는 나와 내가 속한 사회가 스스로 짜놓은 의미의 그물망에 들러붙어 살아가는 거미와 같은 존재가 아니겠는가?

최정호<최정호 성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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