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깜냥에 맞는 자리
제 깜냥에 맞는 자리
  • 순창=우기홍 기자
  • 승인 2017.02.02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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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 행보를 이어가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한-일 간 합의를 환영한다는 전력을 문제 삼는 기자들을 두고 “나쁜 놈들”이란 막말을 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정치권과 언론 등에서는 반 전 총장의 ‘그릇 크기’논란이 일었다. 그는 지난 1일 “제가 주도해 정치교체를 이루고 국가통합을 이루려 했던 순수한 뜻을 접겠다”라며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조국 교수는 지난 2014년 특정 일간지에 ‘박근혜 대통령, 메멘토 모리’란 제목의 칼럼을 썼다. 조 교수는 이 칼럼에서 “연이은 ‘인사참사’로 새누리당에 대한 불리한 여건이 조성되었음에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이겼다”라며 “잘못은 여당이 해도 심판은 계속 야당이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권위주의 독재체제를 버텨내고 마침내 무너뜨린 ‘능동적 시민’은 항상 새로 태어나고 성장한다”라고 예측하고 있다. 특히 조 교수는 “로마 시대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성대한 개선행진을 할 때 바로 뒤에 노예 한 명을 세워놓았다“라며 노예는 장군에게 계속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고 전했다. “당신도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Memento mori)”. 그러면서 조 교수는 대통령과 그를 보좌하는 비서실장 등에게 이 말을 보낸다는 의견으로 칼럼을 마무리했다.

조 교수의 이 칼럼이 나온 후 2년여가 지난 현재 국내 상황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서는 이른바 ‘벚꽃 대선’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아직은 법률적인 최종 판단이 나오지 않은 상태지만 국정 책임자를 ‘자리에 맞지 않는’사람으로 뽑았지 않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유권자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반면교사’라는 여론도 설득력 있게 들린다. 조 교수가 지적한 당시 비서실장도 현재 구속된 상태다.

지역마다 이런저런 분야의 선거에 출마하려는 인물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순창도 예외는 아니다. 사람이 모이는 장소마다 출마 예정자들이 표심을 공략하는 중이다. 하지만, 출마 예정자와 인사를 나눈 몇몇 주민이 돌아서면서 흘리는 혼잣말 가운데는 ‘깜냥’이란 말이 자주 등장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깜냥은 ‘스스로 일을 헤아림, 또는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깜냥을 지난해 1월 자택에서 지병으로 타계한 성공회대학교 신영복 석좌교수가 설명하는 ‘자리론’으로 인용해 본다. 신 교수는 자기보다 조금 모자라는 자리, ‘70%의 자리’를 권했다. 능력이 100이라면 70 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 “30 정도의 여유, 30 정도의 여백이 창조의 공간이 된다”라며 “70 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100의 능력을 요구받는 자리에 가면 부족한 30을 함량 미달의 불량품으로 채우거나 권위로 채우거나 거짓으로 채울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또 신 교수는 “자신의 자리가 아닌 곳에 처하는 경우 십중팔구 불행하게 된다”라고 전제한 후 “제 한 몸만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불행에 빠트리고 일을 그르친다”고도 했다.

선출직 자리를 차지하려면 대부분 선거를 치러야 한다. 정치권에서 선거는 ‘마약’이라고 칭한다. 끊을 것 같지만 쉽지가 않다는 뜻이다. 선거 병(病)에 걸리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정확하고 현실적인 자료도 없이“나오면 꼭 된다”라는 주변의 부추김이다. 자신에게 우호적인 세력만 보인다는 점도 또 따른 원인이라고 정치권은 꼽는다.

특히 자질과 미래에 대한 비전도 부족하면서 단지 자리에 대한 욕심 탓에 출마를 강행하면 여럿이 불행할 수 있다. 혹여 각종 선거에 출마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인사들은 스스로 ‘깜냥’이 되는지 자신에게 다시 한 번 물어본 후 결정했으면 한다.

순창=우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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