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잠’이 불편하지 않았다
‘더러운 잠’이 불편하지 않았다
  • 이문수
  • 승인 2017.01.30 16:02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개월 전부터 TV를 보는 시간이 늘었다. 국정농단 최순실 게이트 이후, 어림잡아 하루에 2~3시간 시청한다. 신문도 어느 때보다 꼼꼼하게 탐독한다. 설 명절 연휴에도 깨알같이 뉴스를 챙겨보고 있다. 허탈한 자괴감과 무력감이 온몸을 감싸는 서글픔에 애꿎은 담배 연기만 허공에 날렸다.

연일 너무나 많은 의혹과 황망한 진실들이 종합선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때라 불감증이 생길 정도다. 지난 24일, 미술판에서 밥 먹고 살고 있는 필자를 화들짝 놀라게 했다. 뉴스 끝에 거칠게 항의하면서 그림을 떼어내 바닥에 내팽개치는 장면. 아뿔싸 어찌 저런 일이, 반달리즘?

반달리즘(Vandalism)은 문화적·예술적인 것을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것을 말한다. 게르만족의 일족인 반달족의 약탈과 파괴행위에서 비롯한 개념이다. 미술에 가해지는 반달리즘은 이념이나 권력욕에 의해 국가가 벌이는 문화탄압, 정신이상이나 울분 내지는 뒤틀린 신념으로 개인이 미술품에 위해를 가하는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특검 수사와 언론 보도를 통해 정황과 윤곽이 드러나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대한 시국비판 풍자 전시회인 <곧, BYE! 展>에 출품한 이구영 미술가의 ‘더러운 잠’이다.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와 마네의 ‘올랭피아’를 합성해서 패러디한 작품. 우르비노의 비너스는 고개 숙인 박근혜 대통령으로, 꽃을 든 흑인 하녀는 검정 선글라스를 머리에 얹고 주사기 꽃을 안고 있는 최순실로, 벽에는 침몰하고 있는 세월호 그림이 걸려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초상과 ‘사드(THAAD)’라고 적힌 미사일도 보인다.

그날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자유민주주의수호시민연대’ 출범식에 참석한 보수단체 회원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그림을 떼서 바닥에 내팽개쳤고, 이후 주변에 있던 20여 명이 몰려들어 그림을 던지고 밟았으며, 결국 작품은 파손됐다.

<곧, BYE! 展>은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서 20일부터 오는 31일까지 전시할 예정이었으나, 논란의 중심에 선 이구영 미술가와 기획자는 “이 전시의 본질은 표현의 자유와 풍자다……. 진실을 왜곡하지 말고 예술가들의 작품을 존중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고 자진 철수했다.

미술사를 돌아보면, 탁월한 미술가는 수구적인 시대정신에 불복종하면서 그 저항정신을 발칙한 도발과 상상력으로 표현해 왔다. 1863년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를 세상에 선보인 당시에 ‘불손하고 끔찍한 그림이다.’는 평을 들었다. 그림은 별로 아름답지 못한 여인이 서슴없이 온몸을 드러낸 채 비스듬히 누워 있고, 발밑에는 검은 고양이가 눈을 번쩍이고 있다. 그리고 흑인 하녀가 손님이 보낸 꽃다발을 들고 있다. 루이 오브리는 ‘올랭피아’만큼 사람들의 비웃음과 야유를 산 작품은 없었다고 말한다. 마네는 사회현실을 고발하는 매우 혁신적인 화가여서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고 그가 내놓는 작품마다 비판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올랭피아’는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그러나 ‘우르비노의 비너스’와는 달리 마네의 작품은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다. 두 작품 모두 누드화인데 말이다. 왜 그랬을까?, 그때 작품 속 나체여성은 신격화된 모습으로 그려졌는데, 마네의 그림 속 주인공은 창녀를 모델로 동시대의 인간상을 담고자 했던 것. 그것은 무엇보다도 모델의 나체를 이상화하지 않았으며, 신화나 우의(寓意)의 베일을 씌우지 않고 초상처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네는 그림을 통해서 부도덕하고 저급한 파리 밤의 불편한 민낯을 들추었다.

필자는 ‘더러운 잠’을 보면서 불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앞에서 울분을 참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나와 다른 삶의 규칙을 가진 존재가 타자라고 했던가. 타자는 대화가 꼭 필요한 존재라고도 할 수 있다. 이질적인 것들이 서로 충돌하는 삶의 공간, 이것을 필자는 ‘해방공간’이라 명명한다. 벚꽃 대선 정국이 온다면 많은 타자와 해방공간에서 만날 것을 기대한다.

<곧, BYE! 展>을 통해서 촉발된 정쟁 속에서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는 지혜를 얻자.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문수<전북도립미술관 학예실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박정우 2017-01-30 23:00:28
50세, 두 아이 엄마입니다. '더러운 잠'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여자들이 누드상태를 부끄러워해야만 하나요? 그러나 저는 일부 걸그룹의 선정적인 율동,복장이 불편합니다. 인터넷 검색시 일방적으로 튀어나오는 선정적 광고에 화가 납니다. 이런 것들은 성을 상품화하기 때문에 불편합니다.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안 볼수 있는 권리는 존중돼야 합니다. 또한 보고싶은 사람은 볼수 있어야 합니다. 표현의 자유 마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