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그믐의 풍속
섣달그믐의 풍속
  • 고재흠
  • 승인 2017.01.24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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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그믐은 음력 12월의 마지막 날로서 음력 12월의 명절이다. 대회일(大晦日)이라고도 한다. 섣달그믐날의 밤은 제야(除夜), 제석(除夕), 제일(除日), 세제(歲除), 세진(歲盡)으로도 부른다. 이 날을 제석(除夕)이라고 하는 것은 제(除)가 구력(舊曆)을 혁제(革除)한다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이 날에는 한 해가 무사하게 지났음을 기념하고, 새해가 시작되는 것을 알리기 위한 여러 가지 풍습이 전해진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의식으로 집안청소를 청결히 하고, 저녁때에는 사당에 모셔진 조상들께 인사를 드렸으며, 어른들에게도 절을 했다. 이것을 ‘묵은세배’라고 하는데, 가까운 사이에서만 할 수 있었다. 한 해를 무사히 잘 보냈음을 아뢰는 의미에서 하는 행례였다. 그믐날 여자들은 여러 가지 음식을 장만하여 제를 올렸다. 이를 세찬(歲饌)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섣달그믐에 재앙을 쫓기 위한 연종제(年終祭)로 나라의식을 펼쳤는데, 민간에서는 연종포(年終砲)를 터트렸다. 또한 대포와 불화살인 화전(火箭)을 쏘고 징과 북을 치고 나발을 불면서 나희를 행했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집안에 숨어 있던 잡귀들이 깜짝 놀라서 도망가고 모두 무사태평하다고 믿었다.

함경도와 평안도에서는 ‘벽오단’이라는 향을 만드는데, 이것은 염병을 물리치는데 유용하다 하여 임금은 섣달그믐 아침에 재상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민가에서는 연중에 있었던 채권ㆍ채무 거래가 종결을 맺는 날이라 하여, 빚이 있는 사람은 해를 넘기지 않고 이날에 청산을 하였다. 남으로부터 받은 빚이 있거나 외상이 있는 사람은 이날까지 정산을 하여야 한다. 만약 자정이 넘도록 받지 못하였을 때에는 정월 보름날까지는 빚 독촉을 안 하는 것이 상례(常禮)다. 이는 요즘 사회풍조에 비해 미덕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사찰에서는 백팔번뇌(百八煩惱)를 없앤다는 뜻으로 제야의 종을 108번 치는데, 일본에서도 종을 108번 울린다. 오늘날에는 양력 12월 31일 자정에 서울 보신각과 지방에서도 제야의 종을 33번 울리는데 이것은 불교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 종소리를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이는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희망으로 맞이하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의 해갈이 통과의식이다.

108이란 숫자가 그러하듯이 33숫자도 불교에 뿌리를 둔 숫자다. 이 세상에는 자비스러운 33관음보살이 있는데, 천상천하 지상지하 모든 사람으로 응화 화신을 한다. 33은 그 모든 사람을 뜻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전통은 비단 불교뿐만 아니다. 성균관 서생들이 대궐 앞에 가 상소할 때도 33명을 뽑아 보냄으로써 전체 의사임을 표방하였다. 육조(六曹)거리에서 지방수령들의 송덕 시위를 할 때도 33명을 뽑아 올렸으며, 혹정에 저항하여 민란을 일으킬 때도 33명의 이름을 적어 통문으로 올렸다. 오늘날 단체나 회사를 발기할 때도 그 발기 인 수를 33인으로 하는 것도 관례가 돼 있다. 3ㆍ1운동 때 민족대표를 굳이 33명을 한 것도 바로 독립의지가 전 국민의 의지임을 표방하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33번의 종을 치는 것은 섣달그믐날 온 사방 만백성의 시름과 번뇌를 씻고 새로운 한 해를 축원하는 의미이다.

민가에서는 이 날 밤, 잠을 자지 않았다. 방, 부엌, 창고, 변소 등 집안 구석구석에 불을 켜놓은 채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만약 그냥 자게 되면 아침에 눈썹이 새하얗게 변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또한 귀신이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묵은해가 가는 것을 지키면 새해에 복을 많이 얻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기도 하다.

수필가/고재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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