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불집회 단상
맞불집회 단상
  • 심형수
  • 승인 2017.01.19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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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연말 서울 시내에 나갔다가 우연히 맞불집회 현장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촛불집회에 나온 사람들의 의견만이 국민의 뜻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국민들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목적의 집회가 맞불집회이다. 촛불집회의 규모에 비교할 바는 못 되지만 그래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사실 자체가 참으로 경이롭게 느껴졌다. 그들이 들고 있는 구호들을 살펴보니 아마도 특검의 조사 내용이나 언론의 보도 자체가 허구라고 생각하거나 박대통령이 최순실의 꾀임에 넘어간 희생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모여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대부분 행색이 초라하고 나이 먹은 사람들이 많았고 태극기를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젊은 사람들이나 가족단위로 나온 사람들은 찾아보기 어려웠으며 그들이 손에 쥐고 흔들고 있는 태극기도 무료로 나눠주는 곳도 있지만 돈을 주고 사는 모습도 찾아볼 수 있었다. 보도된 바와 같이 정부지원을 받는 기관이나 단체에서 조직적으로 참가자들을 동원한 것도 사실이겠지만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들도 많은 듯 보였다.

현장을 둘러보니 돈이 많거나 사회가 개혁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기득권층 사람들이 맞불집회에 참석할 것이라는 나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알았다. 그래서 생각해 본 것이 미국의 경제학자 베블런(Thorstein Veblen)의 유한계급론이다. 베블런은 돈과 권력을 소유하고 있는 유한계급의 사람들은 현 체제의 지속을 원하기 때문에 보수주의를 선택하는 데 비해 가난한 사람들은 당장 일상과 생존만으로도 너무나도 힘겨운 상태이기 때문에 기존제도나 생활방식의 문제를 파악하고 대안을 제시할만한 여력을 갖지 못하여 보수에 머문다고 하였다. 가격이 오르면 소비가 증가한다는 베블런 효과와 함께 베블런의 명성을 드높혀 준 분석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일반적인 보수와 진보의 구분법에 의거 맞불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보수측에 속한 사람들일 것으로 짐작할 일이 아니다. 보수정당을 표방해온 새누리당에서 뛰쳐나온 사람들이 보수의 가치를 지키겠다며 ‘바른정당’을 만들고 있으며 기존 새누리당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엄청난 변화와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할 정도로 이번 박근혜 게이트는 보수측에서도 잘못된 일이라고 인정하고 있는 상태이다. 대통령, 비선실세, 청와대, 정부 그리고 대기업이 한데 어우러져 뒷거래로 탈세와 범죄를 저지르고 헌법과 법률을 유린한 이번 사태는 분명히 보수층마저도 용납하기 힘든 사태인 것이다.

그래서 공개된 장소에서 잘못된 것을 옹호하면서 자신들이 마치 애국하는 사람들인 것으로 착각하며 태극기를 흔들어 대는 행위는 일종의 병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내린 결론의 정당성을 지키기 위해 설사 정반대의 중요한 증거가 훨씬 더 많다고 해도 이를 무시하거나 간과하며 미리 결정한 내용에 매달리는 인간의 성향, 즉 우리 모두에게 내재해 있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 심화한 상태라 여겨진다. 혹자는 허구를 진실이라 믿고 거짓을 상습적으로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 현상인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이 만연한 사회라는 분석을 하기도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권리를 갖는다. 또한 우리나라의 발전보다는 혼란을 바라는 불만세력도 상당수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맞불집회라는 행위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진보와 보수라 해서 대립할 문제가 아닌 정의와 부정, 진실과 조작, 준법과 비리 등을 구분해 내고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아 우리 사회가 보다 선진화된 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맞불집회와 같이 국력을 소모하는 행위는 소멸하고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온 국민의 뜻이 모여 하루빨리 우리사회가 건전하고 정상화된 사회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심형수<전라북도 서울장학숙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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