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85km : 길에서 배워가는 인생’ 첫 번째 발걸음 - 낯설게 하기
‘4,285km : 길에서 배워가는 인생’ 첫 번째 발걸음 - 낯설게 하기
  • 김미진 기자
  • 승인 2017.01.17 16: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동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청년들에게 ‘시작’이라는 단어는 참 어색하기만 합니다. 무한 경쟁의 레이스에서 낙오자가 될 것만 같은 두려움, 경쟁과 도태라는 표현이 만연되어 있는 사회. 그러나 시작은 그 의미 자체만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래서 미약한 실력이지만,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미국 서부 산맥을 잇는 세계 3대 장거리 트레일,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종주를 하며 느꼈던 소소한 감정과 값진 생각 경험들을 꺼내보려 합니다. 진정 발가벗은 자신을 마주하기 위해 떠난 여행, 지금부터 들려드릴게요. 

2016년 5월 2일, 사진작가 동생 황재홍과 미국 샌디에이고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작년 미대륙 자전거 횡단에 이어 다시 한번 미국땅을 밟는구나.’ 실감이 나기 시작했어요. 주변에서 영어가 들려오고 익숙지 않은 간판들이 즐비한 걸 본 순간 초조함과 긴장감이 더해졌습니다.

샌디에이고의 첫인상은 낯섦이었습니다. 저에게도 여러분께도 처음이라는 단어는 낯설고 새로움을 던져줍니다. 이번 세계 3대 극한 장거리 트레일 위에 올라 대자연 속에서 가방 하나 들쳐메고 5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생활하며 산길을 거닐던 일은 제 인생 최초 경험이었습니다. 왜 이런 긴 길을 택했을까요?

사실, 저는 불편함을 가져다주는 낯선 환경을 좋아하질 않고, 익숙함에 잘 젖어 사는 편입니다. 그 익숙함은 달콤하게도 편안함과 안정감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틀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용감한 마음의 소유자 역시 아닙니다. 하지만 마음이 세차게 헝클어진 날이 있었습니다. 바로 모험가 이동진 형님의 강연을 들었던 날입니다. ‘지금 내게 허락된 일상은 너무나도 익숙해져서 특별하게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게 너무 많아, 오히려 지루하기만 하고 뭔가를 해나가는 또래들과 비교만 하게 되고...’ 익숙함을 벗어나 보고 싶었고, 뜨거워져 보고 싶었습니다. 결국, 나를 낯선 곳에 내던져보자는 큰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으로 향했습니다.

뉴욕에서 LA까지 미대륙 자전거 횡단 여행과 또 한 번의 낯섦을 만나기 위해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이어진 4,285km의 장거리 트레일,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종주를 떠난 것입니다. 산길을 걷다 보니 정말 많고 많은 오르막을 만났습니다. ‘앞으로도 이같이 무자비한 오르막들이 계속될 텐데...’ 걸으며 흘릴 땀과 아파올 종아리 근육을 생각하니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일주일 넘게 땀을 흘리고 못 씻을 적엔 난생처음으로 ‘사람 몸에서 이런 냄새가 날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신발 안에서 터진 물집의 고통에 절뚝거리기도 했고, 야생동물 우는 소리와 세찬 바람 소리로 선잠을 자던 일이 빈번했습니다. 모든 것들이 달랐고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낯섦이 저를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했죠. 사회에 정해진 틀 안에서 살아가며 오직 익숙함만을 추구하던 제가 무려 4,285km의 장거리 트레일 종주라는 큰 모험을 감행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조금은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 계기는 바로 낯설게 해보자는 작은 용기를 품었던 그 순간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때론 기존에 살아가던 방식과는 다르게 낯선 삶을 살아본다면 지금까지 보던 그리고 알던 것과는 또 다른 것을 바라볼 수 있고, 사고의 폭이 넓어지며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는 힘이 길러진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번쯤 너무나 익숙함과만 친하게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지금 낯섦과 익숙함의 접점에서 사랑에 빠져있습니다.

/ 글 = 이우찬

전주 영생고를 졸업하고 현재 전북대 휴학 중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해남 땅끝마을에서 서울 잠실공원까지 국토대장정 완주를 시작으로, 두 다리와 자전거로 미국 대륙 1만여km를 휘젓고 다닌 모험심 강한 청년이다. 현재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강연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청춘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건네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