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주인
칼의 주인
  • 나영주
  • 승인 2017.01.09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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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개혁이 화두다. 얼마 전 유력 대선후보로 꼽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권력적폐 청산 3대 방안을 냈다. 청와대, 국정원, 검찰의 권력을 국민에 나누어 주겠다는 요지다. 눈에 띄는 부분은 검찰개혁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국민이 절망하는 사실은, 두 사람의 국정농단뿐만 아니라 국정농단에 이른바 국가사정기관이 동원됐다는 것이다. 검찰은 게이트 수사 초기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검찰내 민정수석인 우병우 라인이 회자했다. 촛불이 들불처럼 번진 후에야 수사를 하고 기소를 했다.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국민들은 좌절했다.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여 수사권을 경찰에 넘기고, 검찰은 원칙적으로 기소와 공소유지를 위한 2차적 보충적 수사권만 갖도록 하며,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를 신설하겠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문재인표 권력적폐 청산 방안은 사실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공약사항이기도 하고 그 이전 정부부터 실천하고자 했던 방안들의 반복이다. 문제는 의지다.

박연차 게이트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변호인이었던 문재인 전대표는 회고록에 당시 검사들의 태도에 대하여 큰 모욕감을 느꼈다고 술회했다. 문 전대표는 누구보다 검찰개혁이 절실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검찰개혁이 좌절된 경험을 뼈저리게 느낀 그는 검찰 고위 인사 몇 명만 잘한다고 개혁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 다시 말해 시스템 전체를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음이 분명하다.

흔히 검사(檢事)를 검사(劍士)에 비유하곤 한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칼’에 빗댄다. 검객이 쓰는 칼이나, 검사가 휘두르는 권력이나 효과는 같다. 오히려 후자가 더 영향력이 크다. 법치주의 사회에서 칼을 가지고 다니면서 사람을 위협하면 ‘깡패’이지만, 국민이 위임한 권력으로 사회악을 겨누면 ‘검사’가 된다. 그래서인지 양자는 빛과 어둠의 양극단에 서 있지만 종종 유사하게 비친다. 혹자는 검사동일체 원칙이 조폭의 논리라고 비판한다. 물론 검사동일체 원칙은 검사가 검찰권을 행사할 때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상명하복 관계에서 일체불가분의 유기적 조직체로 활동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검찰사무의 신속성과 통일성 및 공정성을 담보하는 원칙이지만 2003년 12월 검찰청법 개정을 통해 ‘지휘 감독관계’로 변경한 바 있다. 비판을 의식해서다.

정의와 검사는 뗄 수 없는 관계다. 정의로운 검사는 사실상 동어반복이다. 정의가 무엇인지 거창하게 말할 자신은 없지만 적어도 검사에 있어 정의는 악인을 벌주는 일을 넘어서, 소악과 거악에 공히 차별없는 칼날을 들이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수사권과 기소권을 차별없이 겨눌 수 있는 일. 그 출발과 끝은 결국 막강한 권한에 대한 ‘사사로움’이 없음이 아닐까. 자신의 권력이 오롯이 자신이 잘나서 사법시험과 연수원 성적을 잘 받아 창출된 것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칼’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우병우와 정 반대편에 서 있는 특검팀의 윤석열 검사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검사가 수사권 가지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입니까” 정의로운 검사와 사적인 이익을 위하여 편파적인 칼을 휘두르는 사람의 차이다. 윤석열과 우병우. 검사와 깡패의 차이다.

나영주<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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