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矛盾)
모순(矛盾)
  • 장상록
  • 승인 2017.01.08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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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1년부터 24년간, 무려 2만 4천 킬로미터의 기나긴 여정을 통해 중국기행을 다녀왔다는 한 사내가 쓴 책은 동서양의 운명을 바꾸게 된다. 마르코 폴로, 그가 썼다는 바로 그 책 [동방견문록]이다. 그런데 이 책에 대해서는 진실성에 대한 의문이 계속되고 있다. 제노바 함대와의 전투에서 포로가 된 마르코 폴로가 옥중에서 죄수들에게 한 여행담이 그 모태이기 때문이다. 실제 [동방견문록]에 등장하는 기록 중에는 역사적으로 명백히 잘못된 내용이 보인다.

그렇다고 그것을 전부 허구로 단정할 수도 없다. 중국의 역참제도나 지폐와 석탄의 사용과 같은 사실은 실제 중국에 다녀오지 않고서는 말할 수 없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가(史家)들은 이 책을 허풍쟁이의 과장된 여행기로 평가한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이 서양은 물론 동양의 운명을 결정하는 분기점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소위 지리상의 발견을 이끌어낸 촉매제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엔 콜롬부스도 포함된다. 그렇다면 동양은 어땠을까.

876년, 황소(黃巢)의 난(亂) 당시 광저우에서만 10만 이상의 아랍계 외국인이 학살된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당시 중국엔 얼마나 많은 아랍인들이 살고 있었던 것일까. 성당문화(盛唐文化)가 종말로 치 닺는 이 시점에서까지 확인 할 수 있는 것은 활발한 국제적 교류의 흔적이다. 그런데 사가(史家)들은 한반도 역시 그 시대 국제관계의 주역이었음을 얘기한다.

9세기, 지구상엔 다섯 곳의 대도시가 존재했다. 콘스탄티노플, 아테네, 뭄바이, 장안 그리고 실크로드의 종점 서라벌이다. 845년 이븐 쿠르다드비가 쓴 [왕국과 도로총람]을 시초로 무려 17명의 아랍 학자가 쓴 23권의 책에 신라가 등장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원성왕릉으로 알려진 괘릉(掛陵)의 무인석상이나 신라고분에서 출토되는 각종 서역물품은 바로 그 증표 중 일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후손들은 오랜 시간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한없는 미몽(迷夢)속에 잠들어 있게 된다. 그리고 그로부터 꼭 일천년 후인 1876년, 조선을 지켜 주리라던 쇄국정책(鎖國政策)은 일본에 의해 깨지게 된다. 마침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된 조선. 하지만 그것은 일천년 전과는 전혀 다른 강제적이고 타율적인 굴종의 역사를 알리는 신호탄일 뿐이었다.

좀 단순한 논리의 비약일지 모르지만, 직선적 사관을 가지고 그 일천년의 변화를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이 부분만 놓고 얘기한다면 과연 역사는 발전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군 이래 최고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현재까지도 예외가 아니다. 오늘의 서울이 9세기 경주 보다 국제적 위상이 높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비록 지나간 시간이지만 장안과 경주로 대표되던 당과 신라는 일천년 후 왜 서세동점의 굴욕적 시간을 맞이한 것일까. 샹그릴라와 황금의 나라를 동경하던 이들과 그런 그들을 일개 야만인들로 치부하던 또 한 편의 이들은 어느 순간 주종이 변해버린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모순은 여기서 일상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한 편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반성과 다짐도.

한국사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문명이 걸어온 평균 이상으로 수많은 모순과 그 극복의 연속선상에 존재해왔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는 해결해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가 있다. 바로 분단모순이다.

어쩌면 그것에 대한 답은 우리가 겪어온 경험 속에 상존한다. 문제는 그렇다고 모순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데 있다. 9세기 신라가 보여준 경험을 오랜 시간 잊고 살았던 조선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 우리는 분단모순을 해결하는 것에 대해서도 같은 길을 가고 있는지 모른다.

하얀 것을 하얗다고 말해도 붉은 것을 떠올리는 현실은 오늘 이 순간도 지켜보게 되는 블랙코미디다. 보수와 진보의 개념을 모호하게 만들어 파쇼적 애국심과 사이비 지식인을 구분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역시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이 땅에 십자가가 처음 들어온 것은 세스페데스, 이수광, 소현세자에 의해서가 아니다. 신라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장상록<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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