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날지 않은 최고의 날들을 위하여
아직 날지 않은 최고의 날들을 위하여
  • 김동수
  • 승인 2017.01.05 14: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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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의 금요 전북문단 / 25.김기화(金基化:1940-)

전북 완주 출생. 전북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하고 경찰공무원으로 봉직하다 정년퇴임하고 이후에는 불교대학에도 입학하여 수료한 재가 불자이기도 하다. 문학에도 뜻을 두어 시집 『산 너머 달빛』, 『고맙다』를 연이어 펴내고 지금도 시 창작에 열중, 최근에는 팔순을 바라본 한 인간으로서의 감회와 안심입명에 이르고자하는 자기 비움을 통해 유유자적 안빈낙도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뒤안길 장독대에/ 정화수 떠놓고
연신 허리를 굽혀가며 두 손으로
달빛을 비벼 내렸다
굽은 허리 펴지 못할 때쯤/ 무뎌진 어머니의 손
독방에서 홀로/ 퍼렇게 녹이 슬었다.

- 「어머니 손」 전문

시인들은 ‘어머니라는 학교’를 통해 세상을 보고 눈을 뜬다. ‘어머니’는 그의 삶의 시작이자 도착점이다. 마치 조병화 시인이 ‘나는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이 세상에 나왔다’는 술회처럼 그의 시 곳곳에서도 ‘어머니의 모습’을 잊지 못하고 있다.

눈 감으면/ 활동사진처럼 떠오르는
물방앗간 처마 끝으로
필통 달그락거리며 오가던

거기/ 산머리가 손에 잡힐 것만 같은
내 고향 꾀꼬리 동네 황조리黃鳥里가 있어

- 「산 너머 고향길」 일부

‘황조리’는 그의 영혼이 혼곤할 때마다 다시 찾는 그의 사당祠堂이다. 그곳에 종종 밭을 매던 어머니와 쟁기질하던 아버지를 불러들여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결의를 다진다. 고향은 그런 의미에서 그의 삶이 치유되고 복원되는 재생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아내가 곁에 있어 고맙고
늘 푸른 자식들이 있어 고맙다
초롱초롱한 손주들이 있어 고맙다
흐르는 물소리 바람소리가 고맙고
들창 너머로 스며드는/ 햇살도 고맙다

- 「고맙다」 일부

그래서 모든 게 다 고맙고 고마울 뿐이다. 비울 것 다 비우고 벗을 것 다 벗어버린 겨울나무같이 비로소 자신의 참모습, 진정한 자아를 만나 세상과 하나로 조응된 낙원의 모습이다. 그의 시는 이처럼 분주한 삶의 일상 속에서도 도道의 길을 찾고 있다. 그것은 어두운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편의 하나이기에, 처처處處가 불상佛像이요, 물물마다 공덕 아닌 것이 없는 사사불공事事佛供의 세계가 된다.

나의 먼 여정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의 사랑은 밤하늘에 숨어 있는 별

나는 더 이상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나는 그때 진정으로/ -중략

나의 화려한 춤을 추고
불후의 시/ 빛나는 별을 찾아
나의 사랑을 다시 시작할 것이다.

-「나의 여정」 일부

세월은 흘러갔다. 하지만 김기화 시인에게 있어서의 세월은 아직 흘러가지 않았다. ‘황조리’에서 시작된 그간의 여행이 ‘미완된 여행’이었다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 또한 나짐 히크메트의 말처럼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는 날들’ 이라는 화두를 앞세워 팔순八旬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 당차게도 선언한다.

‘아직 날아 보지 못한, 나의 빛나는 날’들을 찾아 ‘나의 사랑을 다시 시작할 것이다’고.... 그가 아직 살지 않은 최고의 날들을 다음 시집에서 기대해 본다.

(김동수: 시인, 백제예술대 명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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