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유전과 공성의 세계
만물유전과 공성의 세계
  • 김동수
  • 승인 2016.12.29 16: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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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의 금요 전북문단 / 24.김광원(金光源:1956-)

 전주 출생. 원광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다. 1994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슬픈 눈짓』, 『옥수수는 알을 낳는다』, 『패랭이꽃』(시조)이 있고 저서 『만해의 시와 십현담주해』, 『님의 침묵과 선의 세계』 등이 있음. 의상만해연구원 연구위원과 원광대, 백제예술대 강사를 역임하면서 전주 중앙여고에서 퇴임함.

나는 지금 바위 속에 갇혀있어.
수백 년 깜깜히 갇혀있어.
때로 아득히 가슴 속인가 실핏줄엔가
희미하게 다가오는 게 있어.
바늘구멍 틈으로 바람 한 줄기 새어나오고
달빛도 한 줌 멍울멍울 비쳐오고
그럴 때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안절부절 못하게 되지.
멀리 빗소리, 물소리 들려오고
내 몸 딱딱하고 어두운 어느 틈새
그 숨어있던 기억이
시냇물처럼 소살소살 흐르기 시작하면
난 아예 정신을 잃어버리지.
푸른 하늘이 계속 쏟아져 내려오고
그렇게 시간 속에 갇혀버리지.
어떻게 하지?
난 그리움 속에 갇혀버렸어.

- <씨앗> 전문

오랜 세월 바위 속에서 잠자고 있던 그리움의 씨앗, ‘바늘구멍 틈으로 바람 한 줄기 새어 들어오고/ 달빛도∽비쳐’, ‘멀리서 빗소리, 물소리 들려오’는 그 아득했던 과거의 기억들이 ‘푸른 하늘에서 계속 쏟아져 내려오’는 설레임에 온통 정신을 잃어버린다고 한다. 나에게도 그러한 꿈, 잠자고 있던 꿈의 씨앗이 있었던가? 되묻게 된다.

아무리 뛰어도/ 당신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아서/ 발을 동동 구른다 있- <헬스클럽> 일부

타조 네 마리가 / 실려간다/ ∽
먼 타향 땅에서/어디로 실려 -<타조야> 일부

별을 바라보면/ ∽/ 나는 외계인이 된다. - <어떤 외계인> 일부

위 세 편의 시에서의 고르게 드러나는 특징은 주체와 객체의 분리에서 오는 존재의 ‘불안’과 그에 따른 ‘고독’이다. 위 시에서 등장하고 있는 ‘당신’(<헬스클럽>)과 ‘타조’(<타조야>) 그리고 ‘별’(<어떤 외계인>)은 모두 ‘주체’ 혹은 ‘본질’과 분리된 세계로 ‘보이지 않거나’, ‘외계인’ 혹은 ‘쓸쓸한’ 존재로 드러나 있다.

그의 시는 이처럼 주객의 분리 혹은 현상과의 일정한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마치 붓다의 본질이 색신色身에 있지 않고 법신法身에 있듯, 그는 무엇인가 지속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저 너머에 대한 꿈꾸기를 시도하는 본질 지향적인 데가 있다.

나는야 당신 속으로 당신은 내 속으로
우리들 맑은 눈부처 불꽃으로 피어나리 -<눈> 

살아 있다 말하는 건 활활 타기 때문이다
티 하나 남기지 않고 별똥 하나 떨어지지 -<불꽃> 

양장 시조집 <<패랭이 꽃>>에 실린 작품들이다. 이번 ‘108편의 시가 상호 연결고리로 구성되어 앞에 나오는 ’시어‘는 뒤의 ’시제‘로 다시 등장하여 마지막 108번째 시는 같은 방법으로 첫 번째 시와 연결된다. 이렇게 해서 하나의 커다란 ’일원‘(一圓)이 만들어진다. 우주를 상징하는 이 ’일원(一圓)‘의 미를 시인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우리들 삶 속에서 보여주려한 것이 아닐까 한다.(호병탁)

‘이 번 시집(<<패랭이꽃>>)이 불교의 연기 작용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만물유전과 그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공(空)의 세계가 팽팽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한 시인의 자서도 이같은 맥락에 다름 아니라고 본다.

김동수: 시인 백제예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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