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 이문수
  • 승인 2016.12.2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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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자 헤겔은 “누구도 그가 사는 시대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으며, 그 시대정신에 따라 행동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시대정신이란 특정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사고나 생각을 말한다. 미술 또한 그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오늘은 도립미술관의 기획전을 소개하면서 시대정신의 한 축, 동학에 대해 말하겠다.

전북도립미술관에서는 오는 2월 5일까지 <동학> 展을 열고 있다. 이것은 1860년 교주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의 종교적, 사상적 측면을 고찰하고, 1894년 전북지역에서 발생한 동학농민혁명의 저항정신을 현대미술로 들추어낸 기획전이다.

미술관 학예팀과 전시에 참여한 19명의 미술가는 두 차례 현장답사와 특강, 토론을 통해서 인간 존엄성의 가치, 행동하는 양심, 위정자들의 부패 등을 공유했고, 다양한 기지를 발휘해서 표현한 70여 점의 작품을 전시하였다.

재판을 받으러 끌려가는 전봉준 장군의 초상을 캔버스에 거친 붓질로 위풍당당하고 기백이 넘치게 표현함으로써 본래의 모습을 찾아주고자 한 작품. 동학농민운동이 일본 제국주의의 군사적 압력에 무릎을 꿇는 모습과 청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군 전함과 군벌들의 모습을 기억 속 한 장면으로 처리한 작품. 전봉준의 가묘를 만들어서 관객이 그를 기리면서 참배한 후 그 흙을 한 봉지씩 가져가게 하는 설치 작품이 있다.

도립미술관을 찾아 현대미술로 새롭게 구현한 동학농민혁명의 기세를 만끽해 보자.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기 전 조선은 순조·헌종·철종(1800~1863년) 3대에 걸쳐 소수의 유력 가문이 권력을 독점했다. 절대 권력은 부패로 이어졌고,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탐관오리가 기승을 부리면서 농민의 삶은 더욱 어려워졌다. 1876년 개항 이후, 청나라와 일본 등 서구열강의 침략으로 더욱 혼란에 빠졌다.

나라가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서자 농민들은 행동에 나섰다. 동학교도들과 농민들은 1893년 2월 11일부터 13일까지 밤낮으로 광화문 앞에서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요구하며 복합상소 운동을 펼쳤다. 복합상소 운동은 동학의 초대 교조로 사형당한 최제우의 명예를 되찾자는 구호로 시작했지만, 나중엔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편안하게 해달라는 외침이 더 커졌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기 1년 전, 농민들은 평화로운 방식으로 자신들의 뜻을 전달했고, ‘돌아가 안업(安業)하면, 소원을 들어줄 것이다.’라는 조정의 약속을 받고 해산했다.

그런데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농민과 동학교도에 대한 탄압은 더 심해졌다. 한 달 뒤 이들은 다시 모였다. 1893년 3월 11일, 충북 보은군 외속리면 장내리에 2만여 명의 동학교도와 농민이 모여 부조리한 사회를 바꿔 달라고 재차 조정에 요구했다. 이번에도 농민들은 평화로운 방식을 택했다. 수만 명이 집결해 20여 일 동안 목소리를 높이자 조정은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했고, 농민들은 자진 해산했다.

그 후로도 조정은 농민들의 요구를 끝내 외면했다. 1894년 1월, 평화로운 방식으로 뜻을 이루지 못한 농민들은 폭발했다. 전봉준과 농민군은 고부 관아를 점령했고, 4월 27일에는 호남의 수부(首府)였던 전주성에 입성했다. 1894년 5월, 조정은 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에 도움을 요청했다. 청나라가 군대를 파견하자 일본은 톈진조약을 빌미로 군대를 보냈다. 결국, 조선의 패권을 두고 청과 일본은 전쟁을 벌였고, 승리한 일본은 동학농민군을 진압했다. 1904년, 일본은 러일전쟁까지 승리하며 조선을 손아귀에 넣었다. 그 후 41년간의 암흑기를 겪었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는 외침은 제도를 초월한 인간 본연의 존엄성과 가치에 대한 웅변이다. 연일 촛불집회가 열리는 한국사회는 122년 전과 닮았다. 국정농단, 북한 핵 위협, 조선·해운업 붕괴 등 대내외적으로 위기에 처한 모습이 그렇다. 민주시민은 이 엄중한 시국을 대통령에게 맡길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영웅은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같은 지도자만이 아니다. 촛불을 든 민주시민은 동학군으로 싸우다 죽은 수많은 민중의 후예이자 영웅이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이문수<전북도립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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