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시 당선작] 이삼현 ‘각시거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이삼현 ‘각시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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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12.27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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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시거미 

 이삼현

그녀와 나 사이
서먹해진 간격에 집을 지은 거미가
한 점 침묵으로 매달렸다
말끝을 세운 몇 가닥 발설이 한데 얽혀 덫이 되고

하루, 이틀, 사흘
무엇을 먹었는지 마셨는지 소식도 없이 제자리에 멈춰있다

나는 여문 것을 좋아하고
그녀는 부드러운 걸 좋아했지만 거미의 식성은 육식성이다
단단한 저녁이 말랑말랑해진 태양의 육즙을 천천히 빨아 삼키는 동안 거미는
한마디 미동도 없이 어두워졌다

몰래 들여다봐도 내통도 없다
팽팽하게 벌어진 틈새를 붙잡고
며칠째 끈적끈적한 긴장의 끈을 당기는 저 고집은 불통이다

꼭 돌아올 거라며 활짝 열어둔 오늘이 무음(無音)으로 져도
마음은 나팔처럼 불 수가 없다

경계를 풀고 다가올
기척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순간이 쉼표 없는 기다림으로 이어지고

죽은 듯 산 듯
다시 낮달이 떴다

▲ 이삼현 시 당선자

▶ 당선소감 이삼현씨(60·서울시 관악구) 

 육신이 힘들 때마다 친구가 되어주고
가끔 취하고 싶을 때는 술이 되어주고
진한 향기에 잠기고 싶을 때는 한 잔의 커피가 되어준 시를 생각합니다.
나이 들어 점점 소외되어갈 때 시가 있어 행복합니다.

 곁에서 지켜봐 주고 시를 읽어 줄 때마다 행복해하는 아내가 있어 정진할 수 있었습니다. 신춘문예를 염두에 두었지만 아직은 아니라는 생각만 하였습니다. 그런데 모처럼의 용기가 이번 겨울 따뜻한 꽃으로 피었다는 게 꿈만 같습니다.

 아직 부족한 글이지만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리며 지금부터 시작으로 알고 기대해 주신 만큼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지역과 나이에 상관없이 영광을 안겨준 전북도민일보에 감사드립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독려해주신 동작문학반의 맹문재 선생님, 자신감을 심어준 마경덕 선생님, 늘 격려해준 하린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함께 힘이 되어 준 동작문학반 문우들께도 감사드립니다.

▶ 심사평 소재호 시인

 2017년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응모한 시인들이 500여명을 넘었다. 경향 각지에서 호응한 큰 반향이었다. 금년에도 우수작품들이 많이 눈에 띠었다. 특히 이삼현 씨의 ‘각시거미’를 필두로 하여 오정숙 씨의 ‘바람의 무게와 질량을 측정하는 저녁’, 김진실 씨의 ‘이름의 비밀’. 이성호 씨의 ‘돌부처에 맺힌 이슬’, 성영희 씨의 ‘깃발’ 등이 매우 감동있게 가슴에 왈칵 다가왔다.

 그러나 시의 구조나 체제, 심통한 정서 등 시가 마침내 도달해야할 궁극에는 한 점씩 미진한 듯하여 아쉬움이 있었으나, 이삼현 씨의 ‘각시거미’는 모든 면에서 빼어났다. 그래서 ‘각시거미’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이 시는 시공(時空)을 한바탕에 융합시키며 형상화를 극진히 도모한 점이라든지, 한 마리의 거미를 통해 심도있게 통찰되는 사상(事象)의 본질을 교묘히 대칭시키며 박진(迫眞)하게 실감에 다가감이 절묘했다. 결구의 ‘낮달’의 상징성은 매우 탁월했다. 시가 우선적으로 표방해야 하는 감동을 충분히 일으켰으며 모던풍의 이미지가 돋보였다. 시의 결기가 매우 탄탄하다. 이삼현 시인의 문학적 성취에 찬사를 보낸다.  

 ▲소재호 심사위원 약력

  <현대시학> 추천 완료로 시단에 오름(84) 
완산고등학교장, 전북문협회장 역임
현재 석정문학관장, 표현문학회장.
시집 <압록강을 건너는 나비> 등 다수.
목정문화상, 성호문학상, 녹색시인상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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