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최정원 ‘마지막 수유 시간’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최정원 ‘마지막 수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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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12.27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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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급한 마음으로 벽시계를 힐끔 쳐다봤다. 상사인 베이비시터 지원센터 실장이 도착할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아기는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며칠 밤을 꼬박 새우던 일에서 자유로워진 것이었다. 잠에 취해 비틀거리며 우는 아기를 안고 집안을 왔다 갔다 하지 않아도 되었다. 젖병을 치켜세워 눈금을 확인하느라 이리저리 돌려보는 일도 없었다. 손을 뻗어 머리맡에 놓인 손거울을 집어 얼굴에 비춰보았다. 모처럼 잠을 푹 자서인지 눈 밑의 다크서클도 조금 엷어진 듯 보였다. 지난 밤, 한 두 차례 분유 수유를 하는 일, 두세 번 기저귀를 갈아주고 미지근한 물로 아기의 엉덩이를 닦아주는 일로 조금은 찌뿌드드해 있었지만, 상쾌해진 느낌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여러 가지 꿈을 꾼 것 같은데 아무것도 떠오르질 않았다. 방 안은 온통 ‘햇생명 냄새’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분유냄새, 비누냄새, 파우더냄새, 기저귀냄새, 아기의 몸에서 나는 배리착지근하고 달보드레한 냄새…. 그것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햇생명 냄새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언 땅을 뚫고 나온 여린 새싹이 소리 없이 탄소동화작용을 하고 있는 것처럼 아기는 그렇게 조용히 숨을 쉬었다.

아기가 숨을 쉴 때마다 배냇저고리 앞섶이 가늘게 달싹거렸다. 남의 아기를 돌보면서 내 아이를 비워내는 일은 너무 버거웠다.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 아기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아기의 얼굴 위로 겹쳐지는 한 아이의 얼굴. 그 아이의 울음소리가 이명처럼 들려왔다. 나는 양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날카로운 실장의 목소리가 아이의 울음소리를 밀치고 귓속을 파고들었다. “내일부터 세쌍둥이네 가는 거 잊으면 안 돼요.” 오로지 수수료만 생각하는 실장의 목소리엔 날카롭게 날이 서 있었다. 계약만료일이 끝나면 더 이상 아기를 돌볼 필요가 없다고 실장은 못을 박았다. 솔직히 아기와 씨름하다 보니 오늘이 계약만료인 사실도 까맞게 잊고 있었다.

예비 세쌍둥이 할머니로부터 상담이 들어왔을 때 실장은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나름대로 대어가 걸려들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세쌍둥이 할아버지가 중소기업사장이라며 복권당첨이라도 된 양 손뼉까지 쳤다. 무엇보다 모유 수유가 가능한 베이비시터만 구해주면 두둑한 봉투를 건네올 것이라며. “날짜도 자기 계약만료일과 딱 들어맞네.” 머릿속에서 큰소리로 말하던 실장의 얼굴이 떠올랐을 때 나는 눈을 지그시 감아버렸다.

내가 눈을 떴을 때 아기도 같이 눈을 떴다. 아기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기도 하고 팔다리를 들어 한껏 버둥댔다. 갑자기 아기가 모든 동작을 멈춘 채 인형처럼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때 아기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몸 안의 피가 온통 얼굴에 다 몰린 것처럼. 아기가 뽕! 뿡! 뽕! 하고 방귀를 뀌었다. 아니나 다를까. 푸드득 하고 똥을 쌌다. 기저귀를 제치자 똥은 삶은 계란 노른자위 같았다. 한동안 아기는 푸르뎅뎅한 똥만을 쌌다. 기저귀를 빼낸 후, 물티슈로 엉덩이를 닦아주었다. 여자 아기와는 달리 사내아기는 엉덩이를 닦아줄 때 세균이나 이물질이 자궁으로 들어갈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기에게 기저귀를 채울까 하다 그만두었다. 어차피 씻겨야 했기 때문이었다.

작은 욕조에다 목욕물을 받았다. 온도계를 욕조에 집어넣는 순간, 빨간 수운주가 정확하게 38도를 가리켰다. 나는 쪼그리고 앉아서 한 손으로 아기 뒷목과 엉덩이를 떠받치고 또 다른 한 손으로 머리부터 감겼다. 그런 다음 엉덩이를 천천히 들었다 놓았다 하다 조금씩 아기의 몸을 물속으로 밀어 넣었다. 잠시라도 긴장을 늦추면 아기를 물에 빠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 물이 아기의 가슴과 겨드랑이에서 찰랑거렸다. 파란색 욕조 위로 희뿌연 수증기가 물안개처럼 피어올랐다. 희뿌연 물안개 속으로 놀란 듯 버둥거리는 작은 손이 보였다. 나는 얼른 그 손을 잡아주었다. 그러자 고사리 같이 생긴 그 작은 손이 마디가 투박한 내 금지손가락을 꼭 쥐었다. 내 금지손가락을 잡고 있는 아기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평화로워 보였다. 내 아이 역시 엉덩이가 따듯한 물에 닿았을 때 놀란 듯 손을 버둥거렸다. 그러면 나는 얼른 아이의 손을 잡아주곤 했었다.

손바닥으로 아기 몸을 살살 문질렀다. 목과 겨드랑이에서 고운 때가 나왔다. 손이 사타구니 쪽에 닿는 순간, 갑자기 몸이 움찔해졌다. 손끝에 전해지는 뭉근한 이물감. 그것은 작고 가녀린 불알이었다. 익숙해질 때도 되었건….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얇은 유리그릇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아기의 불알을 씻기자 새알심 같은 고환이 손끝에 만져졌다. 내게 있어 사내아기의 생식기는 너무도 생경했다. 아기의 고추는 장난감 같았다. 갑자기 장난감 같은 고추가 탱글탱글해지더니 오줌이 뿜어져 나왔다. 가느다란 오줌 줄기는 정확하게 내 콧잔등에 명중되었다. 콧잔등이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렇더라도 나는 꾹 참고 아기가 오줌을 다 눌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목욕을 끝낸 아기의 알몸은 잘 익은 복숭아빛 같았다. 아기 몸에 보습제를 발라주고 나서 배냇저고리를 입혔다. 지금쯤 실장은 또 다른 베이비시터에게 연락을 취하고 있을 것이었다. 세쌍둥이를 돌보려면 두 명의 베이비시터가 필요하다고 실장이 말했던 것도 같았다. 나는 뇌리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지우려고 애쓰며 미리 준비해둔 젖병을 물렸다. 아기는 기다렸다는 듯이 허겁지겁 빨기 시작했다. 사내아기라 그런지 젖병을 빨고 있는 입이 무척 커 보였다. 내 아이에 비해 배는 더 커 보였다.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젖을 끊고 분유수유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아기는 한사코 젖병을 외면했다. 진짜젖꼭지(내 젖꼭지)를 기억하고 있던 아기는 번번이 가짜꼭지(고무젖꼭지)를 밀어내기만 하는 것이었다. 안아도 보고 노리개젖꼭지를 물려도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울다 지친 아기가 얼핏 잠이 든 듯 보였다. 혹 잠결에 빨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물려보았지만 작심한 듯 아기는 가짜젖꼭지를 밀어내었다. 그렇다고 쉽게 물러설 내가 아니었다. 곁에 달라붙어 앉아서 끈질기게 물리려 하자, 아기는 자신이 그렇게 쉽게 속아줄 줄 알았느냐는 듯이 한껏 몸을 비틀며 강렬하게 저항했다. 비록 아기는 자기 의사를 언어로 표현해 보이지는 못해도 자신이 원하는 건 가짜젖꼭지가 아닌 진짜젖꼭지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던 것이었다.

젖병을 다 비운 아기의 배는 한껏 바람을 불어넣은 고무풍선 같았다. 트림을 시켜주려고 손바닥으로 아기의 등을 부드럽게 쓰러 내리고 있을 때 어디선가 전임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정확히 시간을 지켜주셨네요. 젖 수유가 가능하니 수입도 짭짤하겠죠?”

베이비시터 지원센터 실장이 건네준 메모지를 들고 내가 처음 이 집에 찾아왔을 때 현관문을 열어주며 전임자가 한 말이었다.

“특별히 신경 쓸 부분은 없나요?”

현관열쇠를 건네받으며 내가 물었다.

“없어요. 밥해 먹을 시간이 없다는 것 외에는. 참. 아기엄마에 대해서는 알고 왔겠죠?”

대답 대신 나는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아기는 막 잠이 들었어요. 그럼 수고….”

그때 현관문이 닫히면서 문 위쪽에 매달려 있던 작은 종이 흔들렸다. 갑자기 그 종소리가 전임자의 목소리를 삼켜버렸다. 나는 쟁그랑 하는 종소리를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우선 아기부터 봐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베란다 통유리를 가로지르고 있는 사다리를 보고 의아해한 나는 발길을 그쪽으로 돌렸다. 좁은 베란다에는 비닐도 벗기지 않은 유모차가 세워져있었다. 손으로 유모차를 살짝 옆으로 밀고는 통유리 밖을 내다보았다. 이삿짐 차와 사다리차가 길을 막고 있어서 자주색 배낭을 어깨에 멘 전임자가 주차장을 빙 돌아나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다리차가 빠져나가자 세로로 기다랗게 구멍이 나 있는 벽면을 등지고 서 있는 은행나무가 보였다.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노랗게 물이 들어가고 있는 은행잎들이 아기 손처럼 꼬물거리고 있었다. 그 순간, 무엇에 쫓기는 사람처럼 나는 재빨리 몸을 돌려 집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네 평 남짓한 거실은 한바탕 난리를 치른 듯 어수선했다. 티브이는 저 혼자 떠들고 있었다. 티브이를 끌려고 리모컨을 찾는데도 한참 걸렸다. 기저귀 바구니에 들어 있는 리모컨을 집어 티브이부터 껐다. 이인용 베이지색 천 소파와 작은 티브이 한 대가 놓인 거실에는 포대기며 기저귀들이 허물처럼 널리고 흩어진 젖병들이며 물티슈, 거즈 손수건, 보습제 등이 자리를 못 잡고 있는 탓에 발을 디딜 틈조차 없어 보였다. 게다가 삐죽이 나와 있어 거실과 주방 사이의 동선을 방해하고 있는 식탁의자들까지. 무릎을 구부려 의자 다리를 순서대로 밀어 넣었다. “끔찍하게도 어질러 놓았군.” 혼잣말로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을 때 반쯤 열려 있는 방문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쪽으로 가 보았다.

폭이 좁은 방안에는 더블침대가 코끼리 같이 엎드려 있었고 그 침대 위에 누워있는 아기는 코끼리 등에 올려놓은 인형처럼 보였다. 조심스럽게 아기 곁으로 다가갔다. 전임자의 말대로 아기는 잠이 들어 있었다. 자궁 속에서 빠져나온 지 사나흘밖에 안 된 아기의 얼굴은 주름이 많은 노인의 얼굴처럼 쪼글쪼글했다. 아기의 발 하나가 포대기 밖으로 삐죽이 나와 있는 게 보였다. 포대기 자락을 살며시 끌어다 발을 덮어주었다. 어느새 내 아이의 발을 덮어주고 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발가락 어디에도 깨알만 한 까만 점이 보이질 않았다.

침대 모서리에 놓인 작은 탁자에는 아기엄마가 먹던 것으로 보이는 엽산병과 비타민병, 주기적으로 산부인과에 다녀온 날을 또박또박 적어놓은 산모수첩과 ‘엄마와 아기 모두 행복한 모유 수유’란 제목의 책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조용히 방을 나온 나는 식탁의자에 아무렇게나 걸쳐져 있는 앞치마를 허리에 둘렀다. 도무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아득했다. 아무래도 주방부터 정리해야 할 것 같았다. 라면 가닥이 말라붙어 있는 냄비며 미처 씻지 않은 그릇들과 머그컵들이 개수대에 쌓여 있었다. 씻은 그릇들은 마른행주로 물기를 닦아 선반에 차곡차곡 쌓았다. 삶은 젖병과 고무젖꼭지는 모두 싱크대 찬장에 가지런히 넣어두었다. 당분간은 젖병 쓸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음은 거실 청소가 기다리고 있었다. 진공청소기가 돌아가는 소음에도 아기는 곤히 자고 있었다. 대부분의 신생아들은 진공청소기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안정감을 되찾게 된다는 사실을 처음 안 것은 베이비시터 교육장에서였다. 진공청소기소리가 자궁 속 소음과 닮아 있기 때문이라고. 그것은 베이비시터들만이 아는 비밀인데 인터넷 발달로 모든 엄마들이 다 써먹고 있으니 세상 엄마들을 일일이 찾아가서 따질 수도 없고. 라며 소리 내어 웃던 머리가 희끗희끗하던 여자강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 아이 역시 울다가도 진공청소기소리가 나면 울음을 뚝 그치곤 했던 것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다행히 욕실은 깨끗한 편이어서 청소가 빨리 끝났다. 그때까지 아기는 곤히 자고 있었다. 그 덕에 청소를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만약 아기가 울기라도 했더라면 고무장갑을 낀 채 앞치마의 끈도 풀지 못하고서 달려가야만 했을 것이다. 갑자기 전류가 흐르듯 가슴에서 찌르르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기에게 젖을 물릴까 생각했을 때 소파 옆 커튼 자락에 반쯤 가려져 있던 꽃바구니가 눈에 들어왔다.

파란색 리본엔 검정 붓글씨로 ‘아기 탄생을 축하 합니다.’ 란 글귀가 씌어져 있었다. 붉은 장미꽃은 이미 잎과 줄기가 새들새들 해져 있었다. 그것들을 종량제봉투에 쑤셔넣고 있을 때 아기 우는소리가 들려왔다. 분유 수유와는 달리 젖 수유는 간단했다. 겉옷만 올리면 되었다. 아기가 물기에는 내 젖꼭지가 조금 큰 편이었다. 몇 차례 시도 끝에 겨우 아기가 젖꼭지를 물었다. 어린 것이 힘이 드는지 빨다 몇 차례나 쉬곤 했다. 한참 후, 물고 있던 젖꼭지를 혀로 밀어낸 아기는 눈을 스르르 감더니 또다시 잠이 들었다.

한 손에는 음식물쓰레기를 또 다른 한 손에는 종량제봉투를 든 채 계단을 내려갔다. 때마침 계단을 올라오던 한 남자와 어깨를 조금 세게 부딪쳤다. 그 충격으로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장미꽃 한 송이는 목이 부러졌고, 그것은 남자의 구두 밑창에 눌려 짓뭉개졌다. 남자는 오히려 불만에 가득 차있는 눈길로 나와 짓뭉개진 꽃을 번갈아 힐끗거리는 것이었다. 그 순간, 지금 대체 누구한테 째려보는 거야. 나는 이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결국 나는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서 손으로 짓뭉개진 꽃을 쓰레기봉투에 담을 수밖에. 입주 첫날은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품 안에서 잠이 들어 있는 아기를 침대에 옮겨 뉘였을 때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얼마 전에 넣어두었던 빵을 꺼내려고 냉동고 문을 연 순간, 갑자기 얼음처럼 차가운 실장의 목소리가 냉기와 함께 밖으로 튀어나왔다. “퇴근길에 세쌍둥이네 데려다 줄 테니 준비하고 기다려요.” 그 순간,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전자레인지에 넣고 십 초간 돌렸더니 빵이 먹기 좋게 말랑말랑해져 있었다. 한 손에는 빵을 또 다른 손에는 커피를 든 채 식탁 앞에 가서 앉았다. 따끈한 커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왼쪽 벽면에 붙어 있는 알록달록한 포스트잇들이 눈길을 붙잡았다. 벽면에 이런 게 붙어 있었든가. 궁금증이 생긴 나는 의자를 벽면으로 바짝 당겨 앉았다. 연두색 포스트잇에는 산후조리원의 위치와 연락처, 그리고 제공되는 서비스 품목을 비롯해서 노란색 포스트잇에는 지불해야 할 금액 등이 반듯반듯한 글씨체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다시 눈길을 식탁 쪽으로 옮겨왔다. 식탁 위에는 아기 이름이 적힌 흰색종이들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동네 소아과 진료비로 지불한 영수증은 한쪽 모퉁이가 구겨진 상태였고, 종합병원 검사비계산서는 아기 수첩의 갈피 사이에 끼워져 있었다.

손으로 빵을 싼 포장지를 벗기려는 순간이었다. 포장지에 촘촘하게 박혀 있는 노란색의 나비 문양들이 애벌레 떼처럼 꼬물거리는 것이었다. 그저 빵을 싼 포장지일 뿐이야. 라고 중얼거리며 애써 마음을 다독였다. 눈앞에서 노란색이 보일 때면 나는 숨을 죽였다. 누군가 내 목을 조를 틈을 노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잠을 충분히 못 자서일까. 어젯밤에는 어느 때보다 충분히 잤는데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노란색만 보면 불안감이 밀려왔다. 노란색 때문에 불안감을 느낀 것인지 불안감을 느낄 때마다 우연히 그 노란색이 눈앞에 나타났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문제는 노란색만 보면 내 안에서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뱀의 혓바닥 같이 날름거리며 슬며시 일어난다는 것이다. 어느 땐 현관문을 열고 막 들어서는 순간, 눈앞에 노랑나비의 날갯짓이 보였고, 귀에서도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와 미처 신발도 벗지 못하고 뛰어 들어갔으나 집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내 아이가 죽은 뒤로 생긴 증상이었다.

그 무렵, 잠을 이루지 못한 탓에 나는 한동안 눈이 토끼 눈같이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 몽롱한 상태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다 결국 병원엘 찾아갔다. 산후우울증으로 보인다며 의사가 약을 처방해 주었지만 나는 그 약을 먹지는 않았다. 왠지 그 약을 삼키는 순간, 타원형의 노란색 알약이 나 자신을 송두리째 삼켜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남은 빵 한 조각을 입안에 밀어 넣었을 때 밥해 먹을 시간이 없다고 하던 전임자의 목소리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빵 두 조각과 커피 한잔으로 아침 겸 점심으로 때운 셈이었다.

초조한 눈빛으로 벽시계를 힐긋 쳐다봤다. 실장이 도착하기 전까지 다른 것은 몰라도 아기 용품만은 빠짐없이 정리해 둬야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보온병엔 뜨거운 물을, 유리병엔 식힌 물을 채우고 나서 각각 뚜껑을 돌려 닫은 후, 세탁실로 향했다. 손으로 아기의 빨래를 주물러 빨았다. 배냇저고리와 기저귀는 탈탈 털어서 널었다. 거즈 손수건과 턱받이, 손 싸개 등은 일일이 집게를 집어 행거에 고정시켰다. 사내아기라서 그런지 아기 용품은 파란색 일색이었다. 포대기도, 턱받이도, 양말도, 손 싸개도. 심지어는 유모차까지도. 내 아이의 용품은 무슨 색이었더라. 갑자기 앞집 할머니의 목소리가 그 생각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아기 얼굴에 온통 노랑 꽃이 피었구먼. 쯔쯔쯔.” 언젠가 아기를 안고 잠시 밖에 나갔다가 우연히 앞집에 산다는 머리가 하얀 할머니를 만났다. 아기를 처음 대면했을 때 속으로 얼굴빛이 칙칙하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본 피부색이 그렇겠거니 하고 지나쳐버렸다. 그러다가 앞집 할머니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자세히 보니 아기는 얼굴만 노란 게 아니었다. 눈동자도, 배도, 심지어는 발바닥까지도 샛노랬다. 황달? 자신의 입에서 튀어나온 짤막한 이 음절은 내 귀에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나는 베이비시터 교육 때 꼼꼼히 적어 놓았던 노트를 꺼내 펼쳤다. 종종 신생아에게서 생리적인 황달이 나타날 수 있으나 병적인 황달이 아닌 이상 예민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라고 적어놓은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그렇더라도 이 경우는 아닌 것 같았다.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일이 아니었다. 이 상황을 문자로 아기 아빠에게 알리고 나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놀라야 할 아기 아빠의 얼굴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 사실을 병실에 누워 있을 아기엄마만 모르고 있다는 애처로움. 내 가슴이 먹먹해진 것은 그런 까닭이었다.

식탁 위에 둔 휴대폰에서 까똑, 소리가 났다. 곧 갈 테니 빨리 병원 갈 차비를 하고 기다리라는 문자를 보내온 사람은 아기 아빠였다. 아기 아빠는 입주 첫날 잠깐 본 게 전부였다. 늙은 호박같이 푸석해 보여서 그렇지 눈매가 서글서글하게 생긴 아기 아빠는 인상이 참 선해 보였다. 아기를 품에 안은 아기 아빠는 자신의 이마를 아기 볼에 비비다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다. “아길 잘 부탁드립니다.” 아기 아빠의 목소리에는 뭔가 어두운 구석이 느껴졌다. 그날, 아기 아빠는 안고 있던 아기를 내게 건넨 뒤 슬로우비디오화면에 나오는 배우처럼 한없이 느린 동작으로 현관 쪽을 향해 걸어나가다 몇 번이고 돌아보곤 했다. 이튿날부터 나는 아기가 잠든 모습, 노는 모습 젖을 빠는 모습 등을 휴대폰카메라로 찍어 매일 한두 차례씩 까똑에 올렸다. 그러면 아기 아빠는 ‘잘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라는 문자와 함께 하트모양의 이모티콘도 함께 보내오곤 했었다.

곧 온다던 아기 아빠는 두 시간이 지나도 오질 않았다. 초조한 마음에 한 차례 더 문자를 보냈으나 어찌 된 일인지 답신이 없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아기엄마가 입원해 있는 병원 위치라도 알아둘걸.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아기 아빠는 한나절이 지날 때까지 소식이 없었다.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게다가 마음을 졸인 탓인지 입안이 깔깔해서 아무것도 먹질 못했다. 아기 아빠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을 땐 오후 다섯 시경이었다. 전화 내용은 황당했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다며, 나 혼자서 아기를 데리고 병원을 다녀오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픈 아기를 나한테만 떠맡기는 게 말이나 돼!’ 나는 짜증을 내며 휴대폰을 소파에 휙 던졌다. 소파구석에 떨어진 휴대폰이 저 혼자 부르르 떨었다. 그 전화를 마지막으로 아기 아빠는 소식이 끊겼다.

동네 소아과에서 나온 후, 다시 택시를 타고 종합병원에 도착했을 땐 응급실 유리문에는 푸르스름한 이내의 입자들이 스멀거리고 있었다. 아기를 받아 안은 간호사를 따라 검사실로 들어갔다. 검사실에 설치된 대형의료기 모터 소리가 심장박동을 한껏 끌어올렸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 둘이 붙어서 주사바늘로 아기의 발바닥을 찔러 피를 짜냈다. 아기의 울음소리는 자지러졌다. 숨을 죽이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정신없이 검사실에서 뛰쳐나와 버렸다. 발걸음을 옮겨놓을 때마다 아기의 비명이 날카로운 무엇으로 고막을 후벼 파는 것 같았다. 양손을 한데 모은 채 복도를 왔다 갔다 했을 때 수족관이 눈에 들어왔다.

직사각형 수족관에는 손가락 두 마디만 한 크기의 알록달록한 물고기들이 한데 어울려 헤엄을 치고 놀았다. 녀석들은 서로 주둥이를 맞대고 입을 맞추다 수초 속으로 몸을 숨기기도 하고, 숨은 녀석들을 쫓느라 떼를 지어 수초 속을 헤집고 다니기도 했다. 갑자기 물고기같이 입을 뻐끔거리며 내 젖을 빨던 죽은 아이의 모습이 수족관 뚜껑에 매달린 희미한 형광등 불빛 아래에 걸려 있는 것이었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복도에는 지나가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한 손으로 수족관 뚜껑을 살짝 밀면서 또 다른 한 손을 뻗어 수족관 깊숙이 밀어 넣었다. 어느 순간, 손가락 다섯 개를 모두 오므렸다. 손안에서 꼼지락거림이 묻어났다. 나는 황급히 화장실로 뛰어갔다.

양변기 속에 처박힌 물고기는 등판이 노랬다. 물고기는 소금을 뿌려놓은 미꾸라지처럼 파닥거렸다. 물통의 손잡이를 누르자 노란 파닥거림은 순식간에 거센 물살에 빨려 들어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머릿속으로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 지금 양변기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은 등판이 노란 물고기가 아니라 아기의 얼굴에 핀 노랑 꽃일지도 모른다고. 눈먼 물고기인양 벽을 잡고 천천히 화장실을 빠져나왔을 때엔 이미 전광판에는 아기의 이름이 나타나 있었다.

“신생아는 혈중 빌리루빈 수치가 기준치보다 높은 탓에 황달 증세를 보일 수 있는데 대개는 젖을 끊고 이삼일 분유 수유만 해도 황달 수치가 현저하게 떨어질 수 있어요. 간혹 변수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만… 아마 괜찮을 겁니다.” 라고 의사가 말했다.

아기를 안고 병원 문을 열고 나왔을 땐 이미 거리에는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택시에서 내린 나는 계단을 올랐다. 계단은 어둡고 가팔랐다. 한 칸씩 오를 때마다 발걸음이 점점 무겁게 느껴졌다.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인지 약간 어지러운 것도 같았다. 아기를 안고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나는 발끝에 잔뜩 힘을 실으며 하나, 둘, 셋… 계단 수를 세면서 올라갔다. 예순여섯 개를 셀 때까지 별생각이 다 들었다. 아기 아빠는 왜 연락이 없는 걸까. 혹 아기엄마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만약 계약만료일까지 연락이 오지 않으면 어떻…. 누군가 층계를 밟고 올라오는 소리가 그 생각을 잘라 버렸다. 다행히 4층 계단에 불이 환하게 비춰 있어서 5층까지 무사히 오를 수 있었다.

기저귀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열쇠로 문을 땄다. 발바닥 통증 탓인지 아기는 심하게 보챘다. 병원을 나오면서부터 오줌이 마려운 걸 참았더니 방광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나는 보채는 아기를 내려놓고 황급히 화장실로 향했다. 오줌을 누고 있을 때 갑자기 집안이 조용해진 느낌이었다. 바지도 제대로 올리지 못한 상태로 달려갔을 땐 아기의 얼굴이 파랗게 보였다. 가슴이 미어졌다. 이 모든 것은 황달의 저주였다. 황달은 저주인 동시에 독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아기를 지켜주고 싶었다. 다시는 황달 따위로 귀한 생명을 잃게 되는 일은 없으리라.

“아가야, 조금만 더 힘을 내렴. 내 반드시 황달을 낫게 해줄게.” 노리끼리한 아기의 얼굴을 바라보며 제법 큰 소리로 내가 말했다. 나는 모든 일을 뒤로 한 채 오로지 아기 돌보는 일에만 매달리기 시작했다. 젖 수유에 비하면 분유 수유는 의외로 복잡했다. 젖병과 고무젖꼭지를 소독하는 것은 물론이고 분유를 탈 물도 일일이 끓여야만 했다. 소독한 가짜젖꼭지에 불순물이 묻지 않았는지 두세 번 확인하고 나서야 물렸다. 그러나 한동안 진짜젖꼭지에 익숙해져 있던 아기는 한사코 가짜젖꼭지를 밀어내었다. 끈질기게 젖병을 물리려 하자 아기는 있는 힘을 다해 몸을 뻗대며 큰소리로 울어대기 시작했다.

아기와의 실랑이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날이 희붐하게 밝아왔을 무렵, 마침내 가짜젖꼭지가 아기의 입속으로 쏙 들어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아기의 입 언저리로 뽀얀 액체가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처음엔 제대로 물리지 못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손으로 아기의 윗입술을 살짝 들어 올린 후, 다시 물렸다. 잠시 후, 아기의 입술에서 가로로 번지던 희뿌연 액체가 턱을 타고 목까지 흘러내렸다. 자세히 보니 아기가 고의로 혓바닥을 이용해 가짜젖꼭지를 밀어내었던 것이었다.

아기가 젖병을 거부한 지 이틀째. 자칫 심각한 탈수를 불러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나는은 속이 타들어갔다. 조금씩 간격을 두고 젖병을 아기의 입으로 가져가 보았다. 그러나 아기의 태도는 여전히 완강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기는 손발의 움직임도 느려지고 입술마저 하얗게 부풀어 올랐다. 문득 베이비시터 교육장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아무리 고집이 센 아기라도 사십팔 시간만 굶으면 빨게 돼 있다고. 젖내를 기억하고 있던 아기는 연신 혀로 내 가슴을 더듬으며 서럽게 울어댔다. 나는 우는 아기를 유모차에 태웠다.

한 달 남짓한 아기는 유모차를 탄 게 아니라 유모차에 파묻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문득 내 아이는 유모차도 한번 타 보지 못했다고 나는 생각했다. 복지사가 중고 유모차를 갖다 주었을 땐 이미 아이는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기는 유모차 안에서도 여전히 악을 쓰며 울어댔다.

보온병의 물을 따른 젖병에 분유 세 숟가락을 넣고 뚜껑을 돌려 닫았다. 그러고는 양손바닥에 젖병을 끼우고 나서 몇 차례 빙글빙글 돌렸다. 하얀 액체가 만들어내는 거품 알갱이들은 내 손이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미세하게 뽀글거렸다. 젖병을 치켜세워 싱크대 찬장 밑의 형광등에 비췄다. 그러잖아도 불빛이 흐린데다가 안전기까지 고장이 나 있어서 눈금이 어른거려보였다. 몸을 돌려 식탁 등에다 다시 비춰보았다. 뽀얀 액체가 100ml를 가리키는 눈금에서 찰랑거렸다. 젖병을 들고 또다시 아기의 곁으로 다가갔다. 죽을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무릎을 꿇어 애원하듯 내가 말했다.

“아가야. 제발 한 모금만이라도 삼키렴.”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애타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아기가 가짜젖꼭지를 덥석 물었다. 고맙고 반가운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아기가 젖병을 빨면서 땀을 흘렸다. 땀을 그냥 흘리는 게 아니라 뻘뻘 흘렸다. 하얀 거즈 손수건으로 아기의 얼굴과 목에서 번들거리는 땀을 닦아주었다. 어느새 아기는 분유 100ml를 다 빨았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그런 느낌도 잠시뿐. 갑자기 내 아이는 단 한 차례도 100ml를 빨아보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은근히 질투심이 일었다. 아픈 아기에게 질투심을 느끼다니. 나한테도 이런 면이 있었나 싶었다.

아기가 분유를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가슴은 퉁퉁 불어 있었다. 하루에도 한두 차례씩 유축기로 젖을 짜내야 했다. 고개를 숙인 자세로 유축기로 젖을 짤 때면, 모든 기운이 유축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밤이 깊어갈 무렵에는 목까지 뻣뻣해 왔다. 몇 차례 목을 빙빙 돌리자 목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잠시 후, 으슬으슬 춥기 시작하더니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이 아파왔다. 아니나 다를까. 젖몸살이 난 것이었다. 젖몸살을 앓을 때 아기에게 젖을 물리면 한결 증상이 가벼워진다는 사실을 나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딱 한 번만 젖을 물릴까? 그러면 한결 증세가 가벼워질 텐데. 어떻게 하면 자신이 편해질까만 생각하는 것은 정말 아픈 아기에게 벌 받을 짓인지도 몰랐다. 문득 ‘이중인격’이란 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기 옷장 정리를 끝내고 나서 벽시계를 힐긋 쳐다봤다. 실장이 도착하기 전에 젖병소독까지 끝내려면 시간이 빠듯할 것 같았다. 나는 양손에 빈 젖병 하나씩을 든 채 급히 주방으로 향했다. 희뿌연 플라스틱 젖병 속에 녹색 스펀지 브러시를 넣고 빙빙 돌리고 나서 수도꼭지를 돌려 틀었다. 젖병을 가득 채우고 흘러넘친 수돗물이 개수대로 떨어졌다. 젖병 여섯 개와 고무젖꼭지 네 개를 넣어둔 스텐리스 냄비를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불을 켰다. 그러고는 거실 구석에 세워둔 트렁크를 열었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흩어진 옷가지들과 틈틈이 꺼내 보던 노트 등을 주섬주섬 트렁크에 담기 시작했다. 치약과 칫솔, 손소독제와 잠자리모양의 갈색머리핀 등을 비상용으로 갖고 있던 비닐 지퍼 팩에 집어넣고 있을 때 휴대폰벨소리가 울렸다. 틀림없이 아기 아빠일 거라고 나는 믿었다. 그런데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아기 아빠가 아니었다.

“십분 안에 도착할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는 실장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도 경쾌하게 들려왔다. 그러나 내 가슴에는 돌 하나를 올려놓은 양 한없이 무겁기만 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는 내 곁을 떠나갔다. 기다리던 아이는 찾아와주지 않았고 황달이 그와 나 사이에 먼저 들어와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치료를 거부했다. “어차피 살아내지 못할 바엔 억지로 연명할 필요 없어.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은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이 지나면 떠나가야 하는 걸.” 그것이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살고 싶은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무작정 슬프고 억울하고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다. 그럴 때면 혼자 우두커니 앉아 평소 입에 대지도 않던 소주를 약 먹듯 삼키곤 했다. 나중에는 소주든 맥주든 막걸리든 닥치는 대로 마셔댔다. 방안에는 빈 술병들로 가득 쌓여만 갔다.

얼마 후, 뱃속에 아이가 생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 나이 서른아홉. 아이를 기다려온 지 칠 년 만이었다. 그토록 기다려왔던 아이였건만. 입에서는 어이없다는 말만 튀어나왔다. 정말 어이가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나는 한동안 그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라면을 끓일 때 파를 썰 때 길을 걸을 때면 “어이가 없어!”라는 말이 입에서 저절로 튀어나왔다.

결국 아이를 낙태할 요량으로 병원엘 찾아갔다. 수술대에 세 차례나 올라갔으나 번번이 허탕을 치고 말았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아랫도리를 벗고 수술대에 올라가기만 하면 다급한 환자가 들이닥쳤고 그때마다 수술대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내가 낙태를 결심한 건 혼자서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임신한 것도 모른 채 무지막지하게 술을 마셔댔기 때문이었다. 서서히 배가 불러왔고 죽을 만큼 아팠고 살려달라고 소리쳤을 때 아랫도리에서 아이가 밀고 나왔다.

황달은 겨우 두 달 된 내 아이마저 빼앗아갔다. 한 줌도 안 되는 뼛가루를 강물에 뿌렸다. 강물은 아이의 뼛가루를 품고 야멸차게 흘러갔다. 나는 오한을 심하게 느끼는 사람처럼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젖을 짜서 아이의 뼛가루가 떠내려가는 방향으로 흘러 보냈다. 뽀얀 젖이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빠르게 흘러갔다. 아이의 뼛가루를 싣고 흘러가는 강물 위로 부는 바람이 윙윙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강물이 우는소리 같기도 하고 아이의 울음소리 같이 들리기도 했다.

남이 겪은 일처럼 동떨어진 며칠이 지나갔다. 아이는 떠나고 없는데 눈치 없는 젖은 계속 돌았다. 악몽과 젖몸살로 밤새 시달리다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아직도 창밖은 어둠으로 채워져 있었다. 퍼뜩 눈을 뜨고서도 옆에 아이가 없다는 생각을 채 못하다가, 아! 그랬었지, 하고 아이의 부재를 인식했었다. 젖이 겉옷 위로 베어 나왔다. 유축기를 퉁퉁 불어 있는 가슴에 갖다 대자 뽀얀 젖이 아이를 향한 그리움처럼 뿜어져 나왔다.

언젠가 인공호흡기를 꽂고 누워 있던 아이를 지켜보다 잠깐 눈을 붙인 적이 있었다. 눈을 떴을 때 간이침대가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밤새 젖이 흘러내린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아이가 그렇게 쉽게 죽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손과 발의 움직임이 서서히 느려지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서도 휴지를 둘둘 말아 가슴에 대고는 잠깐씩 눈을 붙이게 되었던 것이다. 간호사가 와서 깜빡 잠이 들어 있던 나를 흔들어 깨웠을 땐 이미 아이의 몸은 축 늘어진 상태였다.

병원을 다녀온 이후에도 매일 한두 차례씩 전화도 하고 문자도 보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아기 아빠한테서는 소식이 없었다. 처음에는 짜증이 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졌다. 문득 아픈 아기에게 달려오지 못하는 아기 아빠가 얼마나 괴로워하고 있을까. 그 생각을 하다 천천히 창가로 걸어갔을 땐 이미 해는 느릿느릿 기울고 있었다. 언제 날아와 앉아있었는지 까치 한 마리가 은행나무에서 날았다. 그 충격에 우듬지에 남아있던 몇 안 되는 노랗게 물이 들어 있는 은행잎들이 떨어져 노랑나비 떼처럼 허공을 날아올랐다. 그때 등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퍼뜩 뒤를 돌아보았다. 그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소리였다. 아기가 처음으로 옹알이를 한 것이었다.

“까꿍,”

아기와 눈을 맞춘 순간, 나는 자신도 모르게 ‘까꿍’ 했다. 까꿍, 해야지 마음먹고 한 게 아니라 입에서 저절로 그 소리가 튀어나왔다. 아기가 처음으로 방긋 웃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기는 눈부터 웃었다. 웃고 있는 작은 입속은 온통 발그레한 꽃망울로 채워져 있었다. 분홍빛이 도는 맨 잇몸은 이가 다 빠진 늙은이의 그것과는 달리 참 예뻐 보였다. 아기가 또 한 번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 이번에는 까르르 소리까지 내었다. 순식간에 분홍빛 웃음소리가 방안 가득 채워졌다. 웃음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고 있던 나는 끝내 하하하! 하고 소리 내 웃고 말았다. 내 아이를 떠나보낸 후, 까맣게 잊고 있었던 웃음이었다. 아기는 눈동자도 얼굴빛도 어느 때보다 해맑아 보였다. 손발의 움직임도 몰라보게 활발해졌다. 이 기쁜 소식을 빨리 전해주고 싶었지만 아기 아빠의 휴대폰은 여전히 꺼져 있었다.

한 달 새 아기 머리카락은 많이 자라있었다. 머리카락 한 가닥이 아기의 눈을 가리고 있는 게 보였다. 문득 아기의 머리카락을 잘라주고 싶었다. 거실 바닥에 에이포 종이 한 장을 깔았다. 그 옆에 아기를 뉘인 후, 조심스럽게 가위질을 하기시작 했다. 두 개의 가위 날이 서로 부딪치면서 찰캉찰캉하는 소리가 났다. 찰캉찰캉하는 소리가 날 때마다 까만 머리카락이 하얀 에이포 종이 위에 톡톡 떨어졌다. 작고 볼록한 이마가 드러났다. 아기 이마는 떠나간 아이의 이마와 닮아 있었다. 첫 대면을 하는 순간부터 아기가 내 아이와 닮았다고 나는 생각했다. 노리끼리한 얼굴이며, 짱구머리, 까맣고 숱이 많은 머리카락까지.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결에 아기의 머리카락이 살랑살랑 춤을 추었다.

내가 기본급 외에 얼마의 돈을 더 받기로 한 건 나 자신이 젖 수유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모유 수유를 계획했던 아기엄마는 임신중독이 심해져 당분간 병원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고, 젖 수유가 가능한 사람을 찾던 중 때마침 내가 나타난 것이라고 베이비시터 사무실 측에서 말해주었다.

솔직히 이 아기를 돌본 건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이를 떠나보낸 뒤부터 내 마음 안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그 구멍들을 무엇으로든 메워야만 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 아기를 돌봐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숭숭 뚫려 있는 내 마음속의 구멍들을 메우려 했는지도 몰랐다.

벽시계에 힐긋 눈이 간 순간,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분유 수유를 할까 하다 겉옷을 걷고는 젖을 물렸다. 아기의 목안으로 젖 넘어가는 소리가 갈증을 느낀 어른이 물 들이키는 소리처럼 들렸다. 문득 머릿속에서 싸늘하게 식은 아이의 입에 미친 듯이 젖을 물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땐 자신이 왜 그랬는지 모를 일이었다. 죽은 아이는 자주 꿈에 현실처럼 나타나기도 했다. 어느 땐 나타나서 작고 가녀린 손으로 내 가슴을 더듬기도 하고 그러다가 눈이 마주칠 때면 방긋 웃어 보이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이 아기를 돌보면서부터는 죽은 아이는 꿈에 나타나질 않았다.

엄지와 검지로 집게를 만들어 젖꼭지를 지그시 눌러주며 나직한 목소리로 내가 말했다.

“아가야. 많이 먹으렴. 이게 마지막 수유란다. 세쌍둥이를 돌보기로 돼 있거든.”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아기는 계속해서 옹알이만 하고 있었다. 문득 코끝이 시큰해지더니 눈앞이 흐릿해졌다. 비명처럼 쏟아질 눈물을 눈 안쪽으로 밀어 넣으려고 했을 때 기어이 눈물 한 방울이 오른쪽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팔꿈치로 스윽 뺨을 훔쳤다.

갑자기 아기가 물고 있던 젖꼭지를 쏙 빼고는 내 얼굴을 빤히 올려다봤다. “아가, 너를 어쩌면 좋으니.” 아기와 눈을 맞추며 내가 말했을 때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실장이 도착한 걸까. 소리가 나는 쪽으로 귀를 쫑긋 세워보았다. 바람에 창문이 달달 떨리는 소리였다. 끝. 

 

▶ 당선소감 최정원씨(67·서울시 송파구) 

 만약 당선통보를 받는다면 그 순간, 무슨 말을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통보가 올 것이라는 예상은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침 지방에 가 있던 참이었습니다. 휴대폰에서 ‘신춘문예 당선’ 이라는 통보가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름과 소설 제목을 되물었습니다.

  가장 먼저 윤후명 선생님께 알려들었습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이 아니었더라면 제 소설 쓰기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가르침 늘 잊지 않겠습니다.

  ‘새롭지 않으면 예술이 아니다. 어디서 본 듯 익숙해 보이면 구식이다. 한글로 써라. 한자는 먼저 머리에서 그 뜻을 새기느라 설명을 하게 됨으로써 묘사가 잘 되지 않는다. 그에 반해 한글은 먼저 가슴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설명보다는 훌륭한 묘사가 된다. 묘사는 소설에서 생명이다.’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한글로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쓰면서 한글이 훌륭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의 아름다운 한글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는 소설을 쓰겠습니다.

  그동안 함께 했던 금요 반 식구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게 새로운 출발의 기회를 주신 <전북도민일보>와 부족한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 심사평 김한창 소설가

  2016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응모작품은 총 66편으로 응모작 모두를 정독하면서 5편씩 뽑아내며 압축해 나갔다.

  최종적으로 10편의 우수작이 남았으며 이 중 당선의 물망에 오른 세 편의 우수작이 경합되었다.

  세 편 중『유·에스·비 찾다』는 소설가를 꿈꾸는 주인공 ‘나’는 직장에서 귀가하면 컴퓨터에 매달리는 것이 일상이다. 하지만 그것이 불만이 된 아내는 궁금증이 아닌 치명적인 의심 끝에 소설원고가 저장된 남편의 유·에스·비를 컴퓨터에서 뽑아 감춘다. 이야기는 이것을 사이에 두고 둘이서 벌이는 심리적 묘사다. 인터넷 시대에서 파생된 현대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소재로 전체 이야기를 1장에서 11장까지 설정하여 기승전결의 과정을 보여줬다. 개성 있는 문장과 주인공 나(남편)와 아내의 심리묘사는 돋보였다. 제재는 좋으나 종결부(9장부터 11장)를 조급하게 처리하여 전체적 균형이 잡히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무너진 사랑』은 공무원(동장) 남편을 둔 아내의 의부증을 소재로 화목했던 가정이 파경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는 절제 된 언어와 군더더기 없는 문장기술, 그리고 사건의 기승전결이 돋보였다. 하지만 의부증이 극에 이른 아내에게 칼을 들거나 자녀들 앞에서 보인 것은 오버액션으로 상황의 정도나 주인공의 인품에 비할 때 굳이 사실묘사 보다는 함축과 암시로 처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당선작『마지막 수유시간』은 글쓰기에서‘낯설게 쓰기’의 표본이 된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상투적 비유가 아닌 독특하고 적절한 비유법은 서사의 본질을 어필하는데 크게 기여 한다.

  한국의 금년도 신생아 출산은 역대 최저 41만 명으로 발표되었다.(중앙일보 12월 23일 2면)

  발표 내용에서 지난 10월 출생아 집계결과는 예상보다 현저히 숫자가 적은 3만 1600명이었다. 이는 2000년 관련통계를 집계한 이래 월별기준으로 가장 적은 숫자로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저출산으로 인한 사회문제가 대두되고 아동 생명경시 마저 심심치 않게 사건화 되는 추세 속에 당선작‘마지막 수유시간’은 주인공 ‘나’가 자신의 아이가 죽은 뒤로 생겨난 산후우울증을 겪으며 남의 젖먹이 아기를 돌보는 일을 하면서 심상 속에만 존재하는 자신의 죽은 아이를 비워내는 과정을 그렸다.

  단순한 한 사건의 진행으로 구성되는 단일인물이 단일사건을 빚어냄으로써 단일주제를 나타내는 단편소설로서의 플롯(simple plot)의 단일화와 압축과 암시는, 독자가 사유할 수 있는 여백까지 할애함으로써 겪을 높였다. 연마되어 있는 작가가 지닌 문장의 향기와 표현어법. 그리고 극구 모유 수유를 갈망하는 신생아의 심리묘사는 생경할 정도로 탁월하다. 이는 작가의 타고난 천부적 소질임을 엿보게 한다.

  서사의 균형 잡힌 배열과 튼실한 내면구조(심리와 전문성)를 견인해내고 있는 점은 작가의 소설적 가능성을 전망하게 해준다. 어쩌면 이번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은 문득 새로운 시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예작가를 발견한 셈이다. 당선자의 향후 작품을 기대하고 눈여겨 볼 것이다.

 ▲김한창 심사위원 프로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몽골문학레지던스 소설 작가 선정
몽골 울란바타르대학 연구교수(소설 문학 강의) 역임
현재 몽골 울란바타르대학 객원교수, 전북문학관 문학아카데미 소설창작 전담교수,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
전북문화상, 노천명문학상 소설본상, 몽골문학상(몽골문인협회)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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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2017-04-17 21:23:31
애알심같은 사내아이의 생식기가 너무도생경했다...ㅠ
이건 완전 포르노소설 수준이다... 아저씨가 여자아이 거시 만지믄서 이러건 쓰면 난리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