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용무도(昏庸無道)와 군주민수(君舟民水)
혼용무도(昏庸無道)와 군주민수(君舟民水)
  • 강현직
  • 승인 2016.12.25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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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도 이제 한 주를 남기고 있다. 올 한해를 돌아보면 참으로 곡절과 충격과 시련이 많은 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아직도 언제 걷힐 줄 모르는 혼돈 속에 국민은 노심초사하고 있다. 세계 질서의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맞은 초유의 ‘비선 실세’ 국정농단 사건은 국민에게 분노와 좌절을 안겨 주며 현직 대통령이 탄핵심판대에 오르는 결과를 낳게 했다. 나아가 진실하지 못하고 변명과 자기방어에 일관하는 위정자의 행태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떠나 국민에게 더 큰 불신을 안기고 있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국민의 성숙한 시민의식이다. 2만여 명으로 시작된 촛불집회가 두 달 넘게 거듭하면서 200만 명이 넘는 인파가 한자리에 모였음에도 충돌이나 불상사 없이 평화롭게 치러졌다. 국민들은 ‘위대한 촛불집회’를 통해 ‘광장의 힘’을, ‘광장 민주주의’의 진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아웃사이더’인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돼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가중시켰으며 영국의 ‘브렉시트’와 미-중간의 ‘新냉전’ 심화는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에 긴장을 야기하고 있다.

국내외적 위험 요인들이 경제와 안보에 짙은 먹구름을 드리운 채 다시 침체의 긴 터널로 들어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낳고 있다. 국민에게는 어느 한해보다도 우울하고 낙담하고 ‘내가 이러려고 이 시대에 태어났나’하고 탄식할 시간들이었다.

매년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하고 있는 교수신문은 올 한 해를 규정할 사자성어로 ‘군주민수(君舟民水)’를 뽑았다. 순자의 왕제(王制)편에 나오는 말로 ‘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비선들의 국정농단으로 성난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고 대통령탄핵까지 이르게 된 상황을 빗댄 것으로 보여진다.

교수들이 선정한 2위는 맹자에 나오는 ‘역천자망 (逆天者亡)-천리를 거스르는 자는 패망하기 마련이다’이며 3위는 ‘작은 이슬이 모여 바다를 이룬다’는 뜻의 ‘노적성해(露積成海)로 모두 대통령의 무능과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을 힐난하고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국민의 분노를 대변해 주고 있다.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80%가 ‘현재 고용에 불안감을 느낀다’고 응답했듯이 ‘먹고살 것을 걱정한다’는 ‘구복지루(口腹之累)’가 1위로 선정됐으며 구직자들은 ‘아무리 구해도 얻지 못한다’는 뜻의 ‘구지부득(求之不得)’을 1순위로 꼽았다. 살림이 팍팍하고 소위 ‘흙수저’들의 고단한 삶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올 한 해 왜 이리 피폐했을까. 지난해 사자성어로 선정됐던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가 세상을 어지럽힌다’는 ‘혼용무도(昏庸無道)’를 다시 떠올려 보면 지금 탄핵정국의 잘못된 뿌리가 이미 깊게 만연되어 있었음을 생각하게 한다. ‘군주’가 세상을 어지럽히고 도를 행하지 않음이 모든 국민의 허탈과 고통으로 나타나는, 나라가 혼돈에 빠지고 국민의 자괴심이 커지는 참으로 슬픈 현실이다.

탄핵정국이 지나가면 새 지도자를 뽑아야 하는 선택의 시간이 온다. 앞당겨질 대통령선거를 맞는 정치인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그러나 국민의 눈에 드는, 무릎을 내려칠 만한 인물은 쉬 찾아볼 수 없다. 이번에도 ‘차선의 선택’을 해야 할지, 무엇보다 그들에게 ‘군주민수(君舟民水)’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

강현직<전북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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