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처럼 넉넉한 모성의 생성미학
호수처럼 넉넉한 모성의 생성미학
  • 김동수
  • 승인 2016.12.22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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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의 금요 전북문단 / 23.황경순(黃景順:1960-)

 전북 전주 출생. 2009년 계간 <<시선>>으로 등단 후 현대불교문인협회 사무국장과 <온글문학> 회장을 역임하면서 시집 <<물의 나이>>를 발간하면서 제1회 온글문학상과 제12회 산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신선한 언어 감각을 바탕으로, 사물에서 받은 느낌과 그 정황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지정합일의 이미지스트한라 하겠다.


비단 날개 하늘거리며 허공을 낮게 선회하는
설익은 마음 하루 해는 짧아
얼마나 붉게 익혀내야 저리 가벼이 날아오를 수 있을까
푸른 창공에 떠도는 빨간 줄 한 토막.

-「고추잠자리」전문


추석이 가까워 서늘한 바람이 일면 저 만큼 멀어진 하늘 사이로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빨간 ‘고추잠자리’들이 하나 둘 가을 하늘을 날기 시작한다. 그 ‘고추잠자리’를 보는 순간, 시인은 직관한다. ‘창공에 떠도는/ 빨간 줄 한 토막’이라고- 경이롭다. 그러면서도 강렬하다. 산뜻하고 깨끗한 직관의 세계가 아닐 수 없다.

떨어진 꽃잎의 이마에서
그늘을 보았을 때
해가 잘 드는 양지쪽을 내어 주었다
붉은 햇살이 헤엄쳐 들어와 곁에 누웠다
찰랑찰랑 주름진 얼굴 팽팽해진다
천 갈래 만 갈래 물 길
산 그림자 품어안은 속 깊은 호수
꽃잎과 나뭇잎이 넘실대는
가슴, 무던히도 반짝인다.

- 「대아 저수지」 일부


황경순의 시인은 언어로 그림을 그리는 시인이다. 산 아래 그늘진 호수가 있고, 그 호수에는 산벚꽃잎이 떨어져 있다. 그늘에 가려져 있는 꽃잎들이 안쓰러웠던지 호수가 양지쪽으로 몸을 뒤틀자 그 기미를 알아차린 ‘붉은 햇살이 헤엄쳐 들어와 곁에 누웠다.’ 한다. 그러자 호수의 ‘주름진 얼굴(이) 팽팽해지면서’ ‘반짝인다.’고 한다. 이는 호수와 꽃잎과 햇살이 하나가 되어 너나없이 ‘넘실대고’ ‘반짝이는’ 무위자락(無爲自樂)의 절대 공간, 아니 장자(莊子)의 물화계(物化界)가 아닌가 한다.


이따금, 누군가 그의 가슴팍을
퐁당,?하고 건드리면
그제야
살아온 날들을 풀어놓고
징처럼 울었다
모난?돌멩이 던졌다고
거친?파문으로 응답하지 않는다
산 그림자, 쏟아지는 빗방울
망울망울?삭혀내
겹겹의 물비린내가 뿜어져 나왔다
쉬임없는 바람에 물주름 찰랑거려도
늘 푸르게 일렁이는
그의 품

-「물의 나이」 일부


인고와 인욕의 자기 수련의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 호수는 한없이 넓고 깊어 누군가 그에게 ‘가슴팍을 건드리고’ ‘모난 돌멩이를 던져도’ 그것을 그대로 다 끌어안고 가라앉힌다. 오히려 ‘산 그림자, 쏟아지는 빗방울’을 ‘망울망울 삭혀내’ ‘늘 푸르게 일렁이는/그의 품’은 호수처럼 마냥 넓고 깊기만 하다.

‘산 그림자’ 와 ‘빗방울’ 그리고 ‘바람’은 그의 삶의 장애물들이다. ‘산 그림자’는 무의식 저 편에 웅크리고 있는 ‘어두운 자아’이고, ‘빗방울과 바람’은 그 위에 덮쳐오는 ‘고난과 시련’의 상징물들이다. 이런 시련에도 ‘징처럼 울고’ ‘응답하지 않는’ 소리가 있되 소리가 없는 묵언 수행과정을 통해, 그는 그의 어둠과 시련을 오히려 ‘삭혀내며’ 오늘도 ‘푸르게 일렁이’고 있다.

(김동수:시인, 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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