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주인이 되는 길
역사의 주인이 되는 길
  • 이동희
  • 승인 2016.12.18 16: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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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관련 소재로 연이어 이 난에 글을 쓰려니 한 편 부끄럽고 참담하다. 한국의 정치상황을 해외 언론에서도 관심 있게 주시하며 속보를 내고 있다지만, 긍정보다는 조롱 투의 논조가 주를 이룬다고 한다. 이를 전하는([베를린에서 보내는 그림편지] “200만이 모였는데 안 물러나? 독일 친구도 박근혜 말에 질렸다.”『오마이뉴스』‘16.12.02.) 현지 교민들이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어 한다니, 한국인으로서 부끄럽고 미안하기만 하다.

이와 함께 그 누구도, 그 어떤 힘으로도 이룰 수 없었던 여론의 지역통합과 정당의 지지도, 그리고 과장되고 왜곡된 박정희 신드롬이 일거에 깨지거나 역전된 현상을 지켜보며, 이 또한 박근혜 대통령의 공일 수 있다니, 역설적이지만 다행스럽기도 하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몇 주 계속해서 4%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런 기록은 과거에도 물론 없었으며, 미래에도 쉽게 깨지 못할 진기록이 될 것이다. 이것 역시 임기 5년 중 4년 동안 저지른 헛발질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런 중에도 언론은 국가 발전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희소식을 전한다. <한국사회과학아카데미센터>가 유권자의 이념 성향을 조사했는데, 처음으로 진보적 성향이 보수적 성향을 앞섰다는 조사결과를 내놓았다.(“반공·지역주의에만 기댔던 가짜 보수, 둑이 무너졌다”『중앙일보』‘16.12.02) 한국인들은 급진적 정치·이념 성향보다는 안정적 개혁-보수적인 의식이 강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정치·이념 의식조사에서 “본인의 이념 성향은 어느 쪽인가?”라는 물음에 처음으로 진보 30%, 보수 26%로 역전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유권자들은 ‘나는 보수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나는 진보다’라고 응답한 비율보다 2~9% 앞서 왔다고 한다. 그런 견고한 의식이 이번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목격하며 유권자들의 이념성향이 급변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짊어지는 3대 난제인 ‘[경제]저성장, [빈부]양극화, [저출산]고령화’라는 과제를 ‘가짜 보수’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는 자각의 결과일 것이라고 보고서는 전한다. 이런 변화 또한 박근혜 대통령이 저지른 위헌적 국정농단의 실상에 분노하며 국민들이 학습한 덕분일 것이다.

네티즌들의 의견 또한 대동소이하다. 이런 변화가 때늦은 감이 있어 아쉽지만, 다행스럽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새도 좌우의 날개가 있어야 제대로 날 수 있듯이, 한 나라가 건강하게 발전하려면, 우익 성향의 보수주의와 좌익 성향의 진보주의가 균형 잡힌 감각으로 상호 길항(拮抗)하는, 발전적 견제 세력으로 자리 잡아야 했다.

그러나 그동안 보수의 탈을 쓴 언론이나 정당은 진보 세력을 무조건 상대할 수 없는 ‘좌익-빨갱이-종북세력’이라 색칠하며 상대적 이득을 취하는 데만 몰두해 왔다. 그런 와중에 노동시장도 비정규직만 양산해 왔으며, 정경유착은 더욱 강화되어 경제민주화는 공염불이 되었고, 청년들은 삶의 의지와 희망을 잃는 등, 총체적 국가 위기를 불러왔다. 그래도 보수를 자칭하는 세력들은 사과는커녕 기득권 지키기에 몰두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 현상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그 실상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다. 지금 우리나라 유권자는 물론 모든 국민들이 두 눈 부릅뜨고 어떻게 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는지, 매서운 공부를 하는 중이다. 주말마다 서울 한복판 청와대 목전에서 외치는 주권자의 외침은 시대를 깨우는 정의의 함성이며, 역사의 주인으로서 역사를 왜곡한 하수인들에게 가하는 채찍이 되고 있다.

이것은 깨어 있는 자만이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으며, 공부하는 국민만이 민주주의의 진짜 주인일 수 있음을 촛불을 밝혀 증명하는 것이다. 저 거대한 평화시위를 하찮은 총칼보다 우습게 보는 자들에게 브레히트는 ‘시의 효용가치’로 이렇게 응답한다.

“성문이 일곱 개나 되는 테베를 누가 건설했던가?/ 그 책 속에는 왕의 이름들만이 있다./ 그 왕들이 바윗덩어리들을 끌어 왔던가?/ 그리고 몇 차례나 파괴되었던 바빌론-/ 그때마다 누가 그렇게 많이 그 도시를 재건했던가?/ 황금빛 찬란한 라마에서 건축노동자들은 어떤 집에 살았던가?/ 만리장성이 완공된 날/ 그날 저녁 벽돌공들은 어디로 갔던가?/<중략>/역사의 페이지마다 승리가 나온다./ 승리의 향연은 누가 차렸던가?/ 십년마다 한명씩 위대한 인물이 나온다./ 누가 그 비용을 계산했는가?/ 그처럼 많은 사실들./ 그처럼 많은 의문들.”(브레히트「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첫 연과 끝 연에서) 광장을 밝히는 수백만 촛불은 말한다, 책 읽는(공부하는) 노동자 자신만이 역사의 주인으로 바로 설 수 있음을….

이동희<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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