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서 건져 올린 시의 햇살
어둠에서 건져 올린 시의 햇살
  • 김동수
  • 승인 2016.12.15 15: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동수의 금요 전북문단 / 22.구순자(具順子:1958-)

전북 익산 출생. 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4년 『대한문학』으로 등단. 재학 중 「버팀목」이라는 시창작 동아리를 주도, 시집 『나를 흔드는 것은 내가 아니다』 외 2권을 발간하면서 문학을 통해 삶의 신산을 극복하고 조율, 정서적 균형과 안정을 취하는 심미적 능력이 남다른 시인이다.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들 속에서 영원을 포착하여 한 줄의 시 속에 드넓은 공간을 담아 풍경 너머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바람이
캔을 굴리고 있다.

누가 마시고 버린 것일까?

껍질만 남은
가랑잎 하나 굴러 간다.

-「캔」 전문

간결한 시어로 여백의 잔상(殘像)을 노리고 있다. 길가에 버려진 빈 캔을 보고 그 속에서 생의 단면, 곧 근원적 불안과 고독한 인간의 단면을 포착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바람에 굴러가는 빈 캔을 보면서, 문득 치열한 삶의 현장에 피투체로 내던져진 실존적 자아의 불안을 감지한다. 그리고 되뇌인다. ‘누가 마시고 버린 것일까?’ 마치 ‘가랑잎’처럼 ‘껍질만 남은’ 자신을 향한 독백처럼...... ,

구순자는 작품 속에 직접 끼어들지 않고 그것을 넌지시 들여다보고 있다. 이는 서정적 자아가 사물에서 분리되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초연하게 그것을 바라보는 관조(觀照)의 자세에 다름 아니다.

하늘이
호수에 내려 멈췄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산도 있고, 집도 있고

다정한 백로 한 쌍

구름따라 바람따라
거기 서 있다.

-「구름을 따라 가다」에서

백로 한 쌍이 물끄러미 호수를 바라본다. 그 속에는 마을의 집과 산 그리고 홀연 나타났다 사라지는 바람과 구름이 있다. 화자는 어느새 그것들과 하나가 된다. 이러한 관조적 풍경은 감정의 절제와 공명을 불러 독자에게 정서적 자극을 배가시키는 미적 기제가 된다.

관조는 거기에 끼어들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요, 초연은 거기에 휘말리지 않는 객관적 자세다. 이처럼 대상을 고요히 바라보는 객관적 투시로 그의 시는 존재의 깊이를 내면화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바람이 분다
철썩 철썩 가슴을 때린다

속에 있는 말
다 쏟아 놓아도

바다 가운데
바위 하나

멍이 들고 욱신거려도

물보라만 뿌리칠 뿐
꿈쩍 하지 않는다.

-「바위 하나」전문

꿈쩍하지 않는 ‘바위 하나’, 그것은 병마(病魔)와 싸우고 있는 화자의 자화상(自畵像)에 다름 아니다. 진주가 실은 조개의 살 속에 박힌 이물질의 병집인 것처럼 ‘시는 고통의 신음이다’고 한 하이네의 말처럼 그의 시도 대부분 그의 투병 속 어둠에서 건져 올린 ‘시의 햇살’이다. 그렇게 그는 파도와 사투(死鬪)를 벌이면서도 ‘물보라만 뿌리치며’, ‘꿈쩍하지 않는’ 생의 집착과 의지로 그는 오늘도 거뜬하게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김동수:시인. 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