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아픔을 버티는 삶
시대의 아픔을 버티는 삶
  • 이신후
  • 승인 2016.12.0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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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뜻하던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옷이 두꺼워졌고 벌써 군고구마니 붕어빵이니 겨울 간식을 파는 상인들의 모습도 보인다. 올 연말, 사람들을 더욱 춥게 만드는 것은 날씨 뿐만은 아닌 것 같다. 연일 나라 안팎에서 들리는 암울한 뉴스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시리게 하고 있다. 부정한 방법으로 어마어마한 부와 권력을 쌓고 이를 이용해 스스로는 자격이 되지 않는 자리에도 오를 수 있는 작금의 세태를 보며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개개인의 삶이 더없이 초라하고 서럽게 느껴진다.

요즘 젊은 청년들 사이에서 일명 ‘수저계급론’이라는 말이 있다.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표현에서 유래한 신조어로 부모의 부나 권력에 따라 사회적 계급이 결정되는 것을 숟가락에 빗대어 표현한 매우 자조적인 말이다. 이전에는 그저 부를 가진 계층에 대한 피상적 표현이었지만 요즘엔 부모의 자산 액수로 그 기준을 나누는 등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청년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얼마나 큰지 짐작해볼 수 있는 이야기다.

‘사회적 계급’에 대한 청년들의 생각은 얼마 전 있었던 대입시험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은 대입수능고사 단 하루를 위해 공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루의 시험으로 인생의 많은 것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일종의 ‘계급’이 나뉘고 탈락하면 패배자가 된다. ‘지잡대(지방잡대)’,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란 말이 이런 현실을 대변해주고 있다.

우리가 청년이었던 시절에도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때는 희망이란 게 있었다. 가난하던 시절 나라가 잘살면 우리도 가난에서도 벗어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란 믿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행복이나 만족보단 가족의 부양과 사회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했고 성공을 위해 앞만 바라보며 달렸다. 가난했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의문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난 지금 그때처럼 배고프진 않지만, 우리가 바라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전엔 세상에 대한 의문을 가질 틈이 없었다지만 지금은 잘못을 알면서도 의문을 가질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수업시간 선생님의 생각에 반대되는 이야기를 할까봐 질문도 못하는 학교의 현실처럼 주류의 생각에 반하게 될까봐 스스로를 자체 검열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들이 하는 우스갯소리가 우습게만 들리진 않는다. 부정부패와 각종 비리들로 얼룩진 현실을 보며 우리 세대는 청년들에게 어떤 희망을 줄 수 있을까? 희망을 이야기하기가 참으로 쉽지 않은 시대이다.

우선은 어찌되었던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인정해주는 열린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고 주류에 침묵하기보다 잘못된 구조를 개선하려는 용기와 의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인간성의 회복일 것이다.

얼마 전 작고한 애플사 전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가 남긴 유언이 인터넷 SNS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생의 마지막에서 그는 ‘비지니스 세상에서 성공의 끝을 보았지만 결국 부(富)는 삶의 일부에 불과했으며 그보다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은 부와는 무관한 것’들이라고 이야기한다. 그가 말한 가장 소중한 것들은 젊은 시절 꿈, 건강 그리고 사랑이었다. 그리고 남부럽지 않은 부를 가졌던 그가 말한 진정한 부는 사랑이 넘쳐나는 기억들이었다.

그의 유언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더 큰 부를 얻었지만 한편으로는 ‘관계’를 잃어 버렸다. 그 시절 우리들의 꿈은 내 가족이 배부르고 우리가 잘사는 공동체의 행복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원래의 목적을 잃고 ‘부’ 그 자체에 몰두하게 되어 버렸다.

사랑이니 관계니 하는 것들로 당장 어려움을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의 따뜻한 포옹이 친구의 격려의 말 한마디가 지금을 버틸 수 있게 해준다. 우리에겐 버티는 삶도 필요하다. 좋든 나쁘든 높든 낮든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버티며 내 주변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 그것이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말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신후<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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