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적 깨침으로 반짝이는 연금술
선적 깨침으로 반짝이는 연금술
  • 김동수
  • 승인 2016.12.08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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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의 금요 전북문단 / 21.김 영(金永, 1958- )

 전북 김제 출생. 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95년 『자유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하여 시집 『눈 감아서 환한 세상』(1997년), 『다시 길눈 뜨다』,(2006년)와 수필집 『뜬 돌로 사는 일』, 『쥐코밥상』을 펴냄. 만경여고 교사, 전북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함.

둘레둘레 둘러보아도
부처는 보이지 않는데

상원사로 다시 내려오는 길
山竹잎 위에서 햇살을 타고 놀며

미끄러지는 부처를
나뭇가지 사이로 가끔 가다
하늘을 들여놓는 부처를
내 발끝에서 나와 함께 걸어 내려오는
부처를 보았고

사자암 약수에서 청량한 소리로
흐르는 부처를 만나
갈증으로 타는 목줄기에
한 바가지 퍼서 마셨다.

-「적멸보궁(寂滅寶宮)?2 」에서

부처를 찾으려는 수행자의 모습이 보인다.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에서도 법음法音을 듣고, 말없이 앉아 있는 山에서도 법신法身을 발견한다. 그러기에 그가 `상원사-山竹잎‘에서도, `사자암 약수 물소리’에서도 부처를 만나 ‘살면서 환해지던 순간의 생각을 모아 세상에 내보인다.’며 시종일관 ‘환한 세상’, 곧 개안(開眼)의 세계를 추구해 오고 있다.

첫 시집 『눈 감아 환한 세상』에서도 ‘눈(眼)’이 나오고, 두 번째 시집 『다시 길 눈 뜨다』에서도 ‘눈뜸(開眼)이 등장하고 있다. 그만큼 오랜 세월에 걸쳐 불교의 핵심인 개안(開眼)에 대한 참구가 일관되게 진행되고 있다. 아래의 시에서도 이런 수행자의 모습이 여전하다.

목탁새 비를 맞으며 제 마음 파내고 있다
딱따그르르...... 딱따그르르......
바람도 스며들고 햇빛도 스며들고
숲의 고요마저 스며들어야
제가 숲이 된다는 걸 알고 있는 걸가

장대비는 계속 내리는데
진즉 도려내야 했을 제 마음을
젖은 어둠을
또드락 꾸벅 찌꺽 그르르르
목탁새는 연신
구멍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목탁새」 일부

‘햇빛도 스며들고’ ‘고요마저 스며들’면 ‘숲이 된다’고 한다. 고요가 깃든 적정(寂靜)의 숲, 미망과 집착에서 벗어난 피안과 해탈의 숲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제 마음’의 ‘중심’에 도사리고 있는 어둠의 ‘아상(我相)을 ’도려내‘고 ’파내‘야 비로소 마음이 열려 옴을 익히 알고 있기에, 마치 딱따구리가 나무의 중심에서 막힌 구멍을 파내듯이 시인 또한 아상을 비워 ‘무아(無我)의 숲 가꾸기’에 열심이다.

시드는 일은
씨(種) 드는 일인가
씨 드는 일은
시(詩) 드는 일인가
여름 내내
잉걸불처럼 끌어 오르던 해바라기
저만큼 조용히
시들고 있다.

-「해바라기」 전문

『길 눈 뜨다』에 수록된 그의 시들은 제목에서 시사하는 바와 같이 그동안 눈 감아 외면하고 어두웠던 지난 날, 그리하여 그만큼 현실과 거리가 있었던 괴리와 방관의 세계에서 한 발 벗어나 있다. 이제 그는 저잣길에서도 우리들과 함께 화광동진하는 행자승의 모습으로 다가와 있다. 두타(頭陀)의 수행 과정에서 값지게 건져 올린 환한 깨침처럼, 그리고 그것을 증류수처럼 명징하고 담백한 ‘시듬의 미학’을 시에 담아 우리의 영혼을 맑히고 있다. (김동수(시인. 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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