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고
신문고
  • 신성욱
  • 승인 2016.12.05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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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71년 12월, 영조대왕은 태종때 처음 세워졌다가 없어진 신문고를 다시 세웠다. 억울한 백성이 있어 두드리면 왕이 듣겠다는 신문고는 관리들의 삼엄한 경비로 두드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1874년 어느 날 김제 월촌 사람 조환용 선생이 천신만고 끝에 두드렸다.

 당시 백성들은 각종 납세를 하려면 직접 지정된 창고가 있는 곳까지 운반하게 되어 있었다. 김제와 금구, 만경, 태인, 고부, 정읍 지역 주민들은 세로 받칠 곡물 등을 육로로 군산까지 운반해야 했기에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에 관리들은 나 몰라라 했고, 수 백년 째 계속되어도 고쳐지지 않았다.

고통을 보다 못한 시골선비 조환용은 몇 통의 상소문을 가지고 친척 한 명과 서울로 올라갔다. 그리고 신문고를 치려다가 수비 관원에 발각되어 혹독한 곤욕을 당하고 상소문마저 빼앗겼다. 그러나 필사적인 노력 끝에 신문고를 두드리게 되었고, 상투 밑에 숨겨 둔 상소문을 궐 안으로 전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김제시 죽산면 해창에 창고가 세워지게 되었고, 김제, 금구, 만경, 태인, 고부, 정읍 등 6개 군현 지방민이 큰 고통을 면하게 되었다.

4년 후 조환용 선생이 세상을 떠나자 주민들이 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송덕비를 세웠다. 송덕비에는 끝 구절은 이렇게 새겨져 있다. 세 바칠 때마다 덕을 비에 새겨 그 공을 길이 보존하리라. 길이길이 잊지 않으리[ 貢物道程 ?功一憲 永世不忘]. 참 처연해지는 문장이다. 그러나 세 받칠 창고를 가까이 지어주어 감복하던 순박한 백성들은 20년이 지난 1894년, 개념없는 관리의 가렴주구로 동학혁명을 일으키게 되었다.

김제, 정읍지역의 백성들이 겪었던 고충은 말할 것도 없이, 지역사회의 경제적,사회적 비효율이 엄청남에도 중앙이나 지방관아에서는 남의 일이었다. 현대사회는 민주사회임은 물론, 관치의 비효율성, 획일성, 행정편의주의 등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가 주민(지역공동체)들이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를 실시하고 있다. 200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오스트롬은 지역공동체가 국가(정부)나 시장보다 더 효율적임을 말하고 있다.

더욱이 지방의 발전에 있어서, 하버드 대학의 로버트 푸트남(Robert D. Putnam) 교수는 25년간 이탈리아를 연구하고 얻은 결과는 “시민성은 앞으로의 경제상태를 예측하지만, 경제상태는 앞으로의 경제상태를 예측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수세기에 걸쳐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해오는 이탈리아의 북부의 발전 이유를 한마디로 설명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남북격차가 큰 나라이다. 북부지역은 잘산다. 이탈리아 정부는 상대적으로 침체된 남부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다양한 정책(보조금의 특별 배분 등)을 펼치기도 했지만, 남북 간의 격차는 오히려 더욱 커지고 있다. 지역공동체내의 협동과 연대 그리고 시민의식 등이 그 도시의 번영을 측정하는 가늠자라는 것이다.

세계은행 2006년 보고서에 보면 OECD국가의 자원과 자본의 비중이 천연자원 2%, 물질적자원 17%, 사회적자본 80%라는 통계가 있다. 긴 안목에서 전북지역의발전을 생각한다면, 사회적 자본인 신뢰, 협동 그리고 그에 따른 사회적 규범을 높여가는 것이 중요하다. 발전의 열쇠는 관(官)이 아니라 공(共)이라는 것을 국가나 도시의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간디가 간절히 원했던 것은 인도의 독립보다도 스와라지(마을자치)였다고 한다. 그는 마을자치가 세계를 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조선 중기의 정여립 선생이 오랜 관료생활을 끝내고 김제 금구에 세거하며 꿈꾸었던 대동사회도 지역공동체이다. 300년후 전봉준 장군이 이끄는 동학군은 전주화약을 통하여 김제 원평에 설치한 집강소 역시, 백성이 참여하는 협치(協治)였다.

우리사회가 좀 더 행복해지려면, 또 지속가능한 번영을 원한다면, 김대중 대통령의 단식투쟁으로 시작된 지방자치 20년을 되돌아보고, 제대로 된 자치가 마을과 도시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자치를 밥줄로 활용하는 직업정치인들의 몫이 아니라 주민들의 일상적인 경제적, 사회적 활동이어야 한다. 그것은 통합이 아니라 협동이어야 하고, 그것은 주민이 주도하는 진정한 자치여야 한다. 그러한 사회에 신문고는 필요 없다.

신성욱<원광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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