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과 역설을 넘나드는 견성의 법계(法界)
반전과 역설을 넘나드는 견성의 법계(法界)
  • 김동수
  • 승인 2016.12.01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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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의 금요 전북문단 / 20. 류인명(柳寅明:1941 -)

 전북 부안 출생. 1966년 경찰학교를 수료하고 부안, 전주경찰청 등에서 근무하다 1998년 정년퇴임 후 문학의 길에 들어 <온글문학>에서 주로 불교적 사유의 명상의 서정시를 쓰고 있다. 시집 <<바람의 길>>, <<둥지에 부는 바람>>을 발간하면서 제4회 <온글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산에 갇힌 호수
산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너를 만나던 날부터
네 그림자

내 안에 둥지를 틀고
그렇게 천년의 세월이 흘렀다.

- 「산정 호수」전문

‘山’과 ‘호수’ 그리고 거기에 어리는 ‘산 그림자’의 연기적 관계망 속에서 시인은 ‘산에 갇힌 호수’가 되어 평생 ‘산 그림자’를 안고 산다고 한다. ‘산에 갇힌 호수’ 이는 피투체로서 이 세상에 던져진 인간의 근원적 고독과 그 운명에 대한 보다 우주적 통찰적 세계관이요, ‘그림자’ 또한 본질과 분리되어 있는 실존적 자아에 대한 선적(禪的) 응시에 다름 아니다.

물오른 가지마다
봄을 터트리기 직전이다

건드리면
툭 터질 것만 같은

저 아슬아슬한 경계

언제나 손에 닿을 듯
하얗게 피어 있는

허공, 유난히 눈부시다.

-「하얀 목련」 전문

‘허공’ 속에 잠시 피어 있는 ‘하얀 목련’을 보고 시인은 ‘저 아슬아슬한 경계’ ‘눈부시다’고 한다. ‘허공’과 ‘목련’, 이는 ‘공(空)’과 ‘색(色)’, ‘본질’과 ‘현상’, ‘산’과 ‘그림자’에 다름 아닌 ‘영원’ 속에 잠시 핀 ‘찰나적 존재’로서의 불안과 그리움의 세계다. 시인은 그것을 ‘저 아슬한 경계’ 허공에 ‘눈이 부시다’는 역설적 화두로 넌지시 전언하고 있다. 류인명의 시는 이처럼 현상(色) 너머 저쪽에 존재하고 있는 존재의 불안과 그리움의 정서를 초월적 사유의 선적 명제 속에 담보하고 있다.

간밤에 /살포시 꽃대궁 열고
거실 가득 / 진한 향기 쏟아놓았다
그 속에 들어/ 한 생각 내려놓는 사이
나도 없고 / 향기(香氣)도 없다.

- 「蘭香」 일부

겨울 저수지가
빗장을 걸어 잠근 채 요지부동이다
이제 입춘 지나고
또 우수가 지나면
결빙도 풀리고
철새도 찾아오리라.

- 「겨울 저수지」 전문

‘지난 밤 난꽃이 진한 향기를 쏟아 놓더니’ - 결국 ‘나도 없고 / 향기도 없다’, 역설적 무아관(無我觀)관의 세계이다. 뿐만 아니다. ‘겨울 저수지가/ 빗장을 걸어 잠근 채 / 요지부동이더니’ -결국 ‘결빙도 풀리고 / 철새도 찾아오리라’ 한다.

‘향기’와 ‘결빙’의 색계(色界)가 - ‘사라지고’ ‘풀리는’ 직관적 깨침의 순간, 이처럼 그의 시에는 반전과 역설을 넘나드는 견성의 법계(法界)로 ‘같으면서도 같지 않고’, ‘다르면서도 다르지 않은’ 불일불이(不一不二)의 세계관이 배면에 깔려 있다.

(김동수: 시인, 백제예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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