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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의 도덕률
최정호 최정호 성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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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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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면서 그 거짓말을 진실로 믿고, 불필요한 사실은 잊어버렸다가, 필요하면 망각 속에서 다시 끄집어 내는 <이중사고>는 70여년간 이 나라를 지배한 입법, 사법, 행정부로 이루어진 삼각동맹의 신념체계였다. 유신공주 박근혜 전대통령의 진실한(?) 언어생활은 이러한 <이중사고>의 완결판이다. 그들에게 빨갱이와 종북은 전가의 보도였고, 어떤 진실도 냉전체제의 반공이데올로기 앞에서는 무의미했다. 남과 북의 박씨와 김씨 가문은 세습군주제를 지속하는데 사실상 공생관계를 유지해왔다.‘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는 소설 <1984년>에 등장하는 진리부의 슬로건을 답습한 이 정부는 결국 <한국사>을 국 정화했다. 친일과 독재를 미화한 효도 교과서를 만든 셈이다. 이러한 헬조선으로 불리는 구체제의 개선은 불가능해 보였다. 조지 오웰이 그리는 공포와 기만의 세계에 더하여 <멋진 신세계>에서 헉슬리가 묘사한 욕망과 말초적인 자극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헬 조선이 알고 보니 헐!조선이 아니었다면 11월의 촛불혁명이 가능했을까? 내가 웃지 않아도, 고된 일에 지친 상태에서도 TV만 켜면 나는 코미디가 주는 긴장완화를 경험할 수 있다. 마치 TV가 나대신 웃어주는 것처럼. TV와 스마트폰은 나대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알프스의 비경에 데려다 주고, 우주의 저 멀리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수행한다. 욕망이 대리만족 되는 파편화된 개인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늘 어떤 시대, 어떤 지역, 어떤 사회집단에 속해 있으며, 그 조건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한다. 우리는 초인이 아니며, 우리는 생각만큼 자유롭거나, 주체적으로 살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분노한 시민의 봉기는 최순식과 박근혜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으며 아마도 우주의 기운(?)이 도운 덕분일 것이다. 이제 대통령이 무죄라면 국민이 유죄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정국은 예측 불가능의 안갯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29일 대통령은 3차 담화에서 임기단축을 국회에서 결정하라고 하여 여야가 다툼을 통해 시간을 끌어달라 요청했다. 대통령의 이중사고는 계속된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이렇게 되어가는 이유가 있다. 첫째는 박근혜 대통령과 그 집권세력에 눈꼽 만큼의 애국심도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 사태를 이끌 지도자가 없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크고 작게 이바지했지만 광장을 채운 국민들이 기꺼이 따를 중심 세력이 없다. 돈을 신으로 모셔야만 생존 가능한 시스템이 낳은 뼈아픈 대가이다. 셋째는 모든 국민 스스로 책임이 있다. 역사적 불행이기도 하다. 시민의식의 성숙으로 선택한 체제가 아니라 2차 대전 이후의 국제질서 안에서 강제로 이식된 민주공화정 하에서 우리는 신분차별과 경제적 불평등을 당연한 삶의 조건으로 체화하였다. 우리는 세 월호와 용산, 4대강, 등등 나라안의 대소사에서 정의로운 결과를 얻는데 번번이 실패하였다. 우리의 비열함에 대한 자책은 쌓여왔고 헬조선에서 <정의>는 실종되었다. 촛불 혁명은 무엇을 무너뜨리고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혁명은 도덕률을 필요로 한다. 첫째, 우리의 행복은 자유에서 비롯된다. 말할 자유, 일할 자유, 적어도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 어떤 정치권력의 행사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를 회복해야 한다. 둘째, 인간의 존엄, 권리, 인격, 가치, 행복의 추구 등에 있어 차별이 없어야 한다. 이것이 평등이다. 평등은 자유의 평등이고, 자유롭지 못한 평등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인간은 모두 선천적으로 평등하다. 마지막으로 인류가 서로 평등하게 사랑해야 한다는 원리인 박애주의이다. 자유와 평등이 갈등을 일으킬 때 연대감을 강조하는 감정상의 원리로써 박애는 국가의 행동을 규제하고,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원칙이다. 자유, 평등, 박애는 현재에도 유효한 혁명의 도덕률이다. 그놈이 그놈이다. 혁명의 열매를 나폴레옹에게 또다시 헌납할 것인가? 국민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 자유, 평등, 박애는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기본 전제이다.

최정호<최정호 성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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