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학광장에 둥지 튼 학(鶴)
서학광장에 둥지 튼 학(鶴)
  • 박영진
  • 승인 2016.11.27 14: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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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C는 역사문화콘텐츠로 여행객 유치가 국가의 흥망성쇠가 달린 굴뚝 없는 산업이다. 천년전주의 지탱은 면면히 이어져 온 역사문화가 있기에 고도(古都) 전주이다, 전주부성 남문 밖 백성들이 거주하던 서학동은 백성들의 삶과 연계된 역사문화스토리텔링이 유난히 많다.,

 서학동은 학이 깃든다, 풍수지리상 학의 형상이 두 군데가 있다 하여 서학동이다, 서학 광장에 학이 둥지를 틀고 하늘로 비상 하려는 형상은 서학동민들의 기상이며 정신이다, 서학동민들은 동네에 역 사문콘텐츠가 많다는데 자부심과 긍지가 대단하다.

 그런데 서학동의 많은 역사문화콘텐츠 발굴과 활용이 되지 못하는 차별에 대한 아쉬움이 크나 이제는 서학동의 역사문화콘텐츠가 빛을 볼 날만 기다리고 있다, 왜냐하면 접근성, 역사성, 보존 등이 뛰어나고 동민들이 문화산업의 필요성과 참여로 발굴, 보존, 개발에 대한 열망이 크기 때문이다.

 후백제 문화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인 남고산성에는 천경대, 만경대, 억경대, 정몽주 우국시와 남고사가 있으며, 남고사 저녁 종 치는 모습과 노을이 어우러진 남고모종 전주팔경 중 하나인데 남고사 종은 어디에 있는지 행방이 묘연하다.

 충경공 이정란 장군은 임진왜란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64세의 나이에 의병 700명을 모아 전주부성을 지켜낸 살아 숨 쉬는 호남의 정신의 요람 이정란 장군 사당 충경사가 있고, 임진왜란 때 명나라 이여송 장군의 휘하 두사충장군은 풍수지리와 천문, 유학에 능한 학자 겸 장수로서 전주까지 진격하여 흑석골의 자연경관, 풍수지리에 반하고 취하여 춤을 추자 타고 온 말도 하늘도, 땅도, 나무도 춤을 추었다는 두무소는 아파트가 건립되어 옛 자취만 남아있을 뿐 현재는 안내판도 없다.

 흑석골은 조선시대 한지지소가 있어 한지를 생산하자 인근에 선자장을 생산 판매하고 임금에게 진상하였으며 전라감영에 선자청이 있기도 하였으며, 합죽선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주에서만 생산된다는 납죽장인 이 신입무형문화재의 주장이다.

 흑석사가 불이 나서 타고 난 기둥이 금산사 기둥으로 사용하고 있다니 얼마니 큰 사찰이었는지 짐작할 것이며 미륵불의 설화는 전 해오고 있으나 한쪽 손이 잘린 채 지방문화재로 등록되었으나 거의 방치 되고 있어 안타깝다.

 마을의 안녕과 화합을 기원하며 아낙네들이 좀도리 쌀을 모아 시작한 당산제와 느티나무, 원형이 보존된 우물이 흑석골에는 3군데가 있다. 타지역의 당산제와는 다른 동네 우물의 용왕에게도 제를 올리는 당산제이다.

 ‘흑석골’이란 어원에서 알 수 있듯이 탄광을 개발하다 석탄의 질이 떨어져 파다 그만둔 흑석굴엔 곤충들이 서식하고 있으며 대명아파트 등을 건축하면서 파다 중단된 탄광들을 메웠다고도 한다.

 우리나라 한지 생산의 70% 이상을 차지하며 80년대 100만 불 수출을 달성하여 ‘100만 불 수출탑’을 받은 호남제지공업사가 있었으나 환경에 밀려 전통한지를 생산하던 업체들은 팔복동으로 집단이주하고 현재는 고궁한지 한 곳만 흑석골 한지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흑석골에는 전통한지를 생산하여 수출하던 한지공들이 지금도 생존하여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전통한지 생산 메카가 될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

 한지와 인연으로 수묵화의 세계적 거장 남천 송수남 화백의 고향이며, 유택과 기념관이 있다.

 용소암, 매봉소 등은 아이들이 미역을 감던 추억이 깃든 곳은 이름만 남아있다. 여기에 여름철에 어린이들이 미역을 감고 뛰어놀며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장소 용소암, 매봉소 등이 조성되길 기대한다.

 보광재는 전주에서 구이, 임실 등의 유일한 통로였다. 장사꾼들이 등짐을 메고 나무꾼들이 지게에 나무를 짊어지고 넘나들던 삶과 애환이 함께한 보광재가 지금은 힐링의 고개로 변신하여 많은 전주시민들이 건강과 여가, 생태보고를 찾아보는 힐링고개이다.

 초록바위는 전주의 3대 바람통이며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터, 동학농민 지도자들의 처형장인 초록바위는 지금도 기도와 부패관리들을 나무라는 호려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초록바위는 전주천을 흐르는 물속에 바위들이 파랗게 보여서 초록바위라 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이팝나무 군락지이기도 하다.

 개발에 밀려 복개공사에 숨은 공수내 천, 불무골의 자취와 흔적이 지워지는데 대한 아쉬움이 크다. 기마대, 우시장, 도축장이 있었던 서학동. 서학광장에 학이 날아든 것은 우연이 아니고 노력의 결과이다.

 서학동에 산재한 역사문화콘텐츠는 소중한 우리 문화의 유산이요, 전통이고 천년전주를 받치는 주춧돌이다, 이제는 소중한 서학동의 역사문화콘텐츠를 제대로 발굴과 보존하여 서학광장에 둥지를 튼 학과 연계한 새로운 명소가 되도록 하여야 한다.

 - 박영진 글로벌문화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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