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불구하고’의 미학으로 승화된 심미적 고양의 세계
‘그럼에도불구하고’의 미학으로 승화된 심미적 고양의 세계
  • 김동수
  • 승인 2016.11.24 15: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동수의 금요 전북문단 / 19.이수자(李秀子:1945-)

 전북 완주 출생. 대입 검정고시를 거쳐 백제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전주 mbc 편지 쓰기대회와 서울 신사임당 백일장 은상 수상. 시집 『참 달이 밝다』를 발간, 전주문학상, 제2회 온글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독서치료사로서 조용하게 삶을 가다듬는 자기 성찰의 시인이라 하겠다.

걸어도 걸어도
머리 들고 항의하는 때 묻은 시간들
바람을 마셔보아도
어둠을 밟아보아도
다시 북적대는 녹슨 일상들
고개 떨군 침묵 사이로
늦은 달이 떠올랐다
그래도 우리는 어떤 이유에서든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맞추어
“참 달이 밝다”고 하였다.

-「저녁 산책」 일부

인생의 길은 멀고도 길다. 시작은 있으나 종점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 길은 더욱 멀고 불안하다. ‘걸어도 걸어도/ 머리 들고 항의하는 때 묻고’, ‘북적대는 녹슨 일상들’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 ‘참 달이 밝다”고 말한다. 이는 ’그러므로‘ 혹은 ‘그러니까’(therefore)의 논리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neverthless) 세상을 포용?수용하며 그것을 다시 승화해가는 심미적 고양의 세계가 있다.

어머님은
뒤 정지 문 열고
장독대 훔치시다

보낸 딸 눈에 밟혀
감꽃으로 목걸이를 만드셨다

당신 얼굴처럼 주룸주룸
치마폭에 담아

굽은 허리로
먼 하늘바라고
바람소리에 또 문 열어 봅니다.

-「감꽃이 필 때면」 일부

뻐꾸기가 울고 감꽃이 필 때쯤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던 보릿고개, 그 속에서 피어나던 어머니들의 더 없는 사랑의 모습이,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색 바랜 흑백 사진처럼 아련하게 찍혀 있다.

하늘이
밤새 그리 울더니

구름은 무거운 몸짓으로
제 자리만 맴돌고

진종일 비가 빨랫줄에
수정 몇 개를 꿰어 놓았다

바람이 불면 바르르 떨다
곤두박질한다

그 사이로 봄은
어슬렁 화단의 둑을 넘고

하늘은 저리
뜨거운 여름을 퍼 올리고 있다.

-「그 사이」 전문

참으로 맑고 깨끗한 이미지 중심의 시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사이, 소나기가 한 차례 내리고, 빗방울이 빨랫줄에 맺히고, 하늘이 개이고, 그 사이 하늘이 열려, 저리 여름을 퍼 올리고 있다는 일련의 계절 감각을 투명한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수자 시인은 이런 동심적 직관으로 대상의 외양이나 정경을 주관화 하여 그려내는 소위 객관적 주관 묘사에 남다른 재주가 있다.

(김동수(시인, 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