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그 너머에
최순실, 그 너머에
  • 이해숙
  • 승인 2016.11.2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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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종일 안개비가 머물렀던 축축한 관통로 사거리 아스팔트위에 반가운 얼굴들이 촛불위로 가득했다.

한 시대의 질곡이 주름사이에 녹아들고 흰 머리카락에서 반짝일 나이들이건만 붉은 피켓을 머리위로 흔들고 박수를 치고 깔깔대며 오랜만의 인사들을 나눴다.

까칠한 손들을 붙잡고 마주하는 눈빛들에서 기인 시간을 애써 잊고 산 지난 시간들에 대한 스스로 민망한들 이었을까, 시간을 둘러 다시 마주할 서로 어깨들을 확인하는 것도 잠시, 떨리는 목소리로 터지는 외침들.

‘부끄러워 못살겠다 박근혜를 구속하라!!’ ‘독재타도 민주쟁취’방관자의 모습으로 마주했던 87년의 매캐한 팔달로, 함성과 노래와 구호들이 학생들과 전경들 사이에서 울리고 그 간격만큼 가까이할 수 없었던 시간들. 그리고 결과의 참담함을 표정없이 바라보던 날들. 몸살처럼 끙끙거리며 정상으로 되돌아가려는 의지들은 바들거렸지만, 나의 삶에선 아이들의 옷에 묻힌 최루가스의 자극만 날카로웠을 뿐이다.

내가 그렇게 나의 삶속에서 웅크린 채 나이 들어가는 동안 이명박과 박근혜의 무리들은 나라의 곳간을 거덜냈고, 오를 만큼 올라 버린 집값과 땅값으로부터 위협받고,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그나마도 위안거리였던 담배로부터도 내몰리는 삶들은 눈빛들만 퀭해져 갔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고통을 더한 것은 이 가난이 대물림되고 있다는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면서부터였다.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는 친일의 행적도 바꾸고 역사교과서도 바꿀 수 있는 나라, 한 해 17일만 학교에 출석해도 상을 받고, 다른 학생들에게는 공동 수상한 금메달이 개인 수상으로 적용되지 않지만, 권력층의 자식들에게만은 적용되어 버젓이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나라, 한글도 깨우치지 못하는 서너 살짜리 자식들에게 수백억씩의 재산을 물려주고, 권력도 물려주고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야 할 아이들을 개와 돼지처럼 여기게는 가진 자들의 나라, 범죄를 저질러도 용서될 사람들과 용서되지 못할 사람들로 나누는 기준이 돈과 권력이 되는 나라, 언제나 새로운 권력의 산실이 되어 있는 사실을 왜곡하고 국민들을 속이고 권력의 입맛에 맞춰가는 썩은 언론들의 나라.

박근혜와 최순실과 그들의 곁에서 부역하며 그들의 배를 불려온 자들.

그들이 그들의 자료를 숨기고 없애고, 돈을 빼돌리고 입을 맞추고 나서야 그들을 조사하는 사람들 앞에서 보였던 우병우의 당연한 웃음과 자세도, 늘 권력자의 입을 자처하며 권력의 유지를 거들고 그들의 몫을 챙겨왔던 언론들이 얼굴을 바꾸고 새로운 권력을 물색하며 본래의 모습을 숨기는 것도, 그들에게 뒷돈을 대고 정부의 곳간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챙겨왔던 재벌들의 모습도 이제 온 국민 앞에 민낯으로 드러났다.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는 역사상 최초의 현직 대통령과 공모한 최순실 일당의 구속이 문제의 해결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권력의 그늘에서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린 검찰도, 권력과 결탁해서 국가의 부로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데 익숙해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해버린 재벌들도, 권력자들의 입으로 자처하면서 생존해 온 언론들도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국민들이 촛불을 든 이유다.

방관자로 지켜봤던 87년 그 거리가 다시 출렁인다.

펄럭이는 깃발들과 촛불들, 자신의 생각들을 빈틈없이 정리해서 말하는 청소년들과 생존에 내몰린 대학생들. 입에 익지 않아 낯선 구호들과 무리 속에서 쉽게 하나 되지 못하는 두려움도 잊고 그들이 축제의 거리를 메우고 있다.

그렇게 모아진 마음들은 노래가 되었고 함성이 되었으며, 그렇게 모아진 촛불들은 새로운 세상을 밝히는 별이 되어 사람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이해숙<전북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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