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근의 문(文)·화(畵)스캔들<10> 경기전
이동근의 문(文)·화(畵)스캔들<10> 경기전
  • 김상기 기자
  • 승인 2016.11.1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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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스캔들을 시작할 때부터 왕조가 일어난 경사스러운 터 ‘경기전’은 언젠가는 다뤄야하는 숙제 같은 곳이었다. 이동근의 문화스캔들 열 번째 이야기는 경기전이다.

이른 시간이어서 주변은 한산했다. 화가는 홍살문 앞에서 곧바로 펜을 들었다. 수도 없이 와 본 곳이라 주저함이 없었다. 그런데 한참을 그리더니 꺄우뚱 한다. “재미가 없어”하며 그리던 걸 접는다. 어진이 모셔진 정전으로 가 이곳저곳을 서성거렸지만 펜을 들진 못했다. 결국 스케치북을 펴놓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마음처럼 그림이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한참 만에 돌아와 정전을 그리던 화가는 “이것도 아니야”하며 다시 그림을 접는다. 세 번째 스케치는 정전 지붕만 살짝 그린 상태에서 또 멈췄다. 역시 맘에 들지 않나보다.

“나도 천재는 아닌가봐”하며 고심을 토로하던 화가는 도구를 바꿨다. 굵직한 3B 대신 좀 더 가늘고 섬세한 4B 연필이다. 이번엔 거침이 없다. 관람객은 계속 늘었고, 작업에 방해가 되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경기전은 전주 한옥마을에서 꼭 봐야할 첫 번째 명소다. 한옥마을의 정체성과도 같은 이곳에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국보 제317호)이 모셔져 있다. 총 26점이 제작됐다고 하는데, 현재 전하는 건 이 어진이 유일하다. 개인적 취향으로 풍경을 담는 것이라면 아름드리나무와 알록달록 한복 입은 관광객만 그려도 된다. 하지만 지역 대표명소를 담는 문화스캔들에서 경기전의 핵심인 정전을 빼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고민이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낳았던 것으로 보였다.

의무를 다한 화가는 한층 홀가분한 걸음으로 다음 그림을 그려나갔다. 이번엔 표정부터가 밝았다. 매화나무를 그려 넣더니 동서남북 방향을 틀어가며 주변 이미지들을 채워나갔다. “이래야 그림이 재밌지”라는 말의 의미를 이제는 기자도 알 것 같다. 그림의 중심에는 실록을 보관하던 전주사고가 놓였다.

김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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