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리와 포용으로 마음에 꽃밭 하나
순리와 포용으로 마음에 꽃밭 하나
  • 김동수
  • 승인 2016.11.10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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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의 금요 전북문단 / 16. 전재욱(田宰旭:1941-)

  전북 부안 출생, 국토관리청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하고 문학에 뜻을 두어 2009년 『한맥문학』으로 등단, 시집 『민들레 촛불』을 발간하고 서예와 시창작에 전념하고 있는 묵향의 시인이다.  

때론 푸른 창공을 높이 날아보고 싶었고, 파도 넘실대는 바다에서 고래가 되어 보고도 싶었다. 그러나 운명은 그렇게 곱지만은 않았다. 정신없이 살아온 세월에 고운 얼굴은 찾아볼 수 없이 되고, 기로(耆老)에 접어든 인생은 살포시 후회를 품어, 평소 마음 속 깊이 맺혀있던 사연들을 아름답게 한번 글로 표현해 보고 싶었다. - 등단 소감 

무언가 마음속에 맺힌 게 있어 그것을 이젠 글로써 한 번 표현해 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그의 시는 남다른 상처와 그 보상에서 출발하고 있다. ‘너는, 길가/ 한 쪽 구석에서/ 안질뱅이로 태어나// 때로는 / 짓밟히기도/ 눈길 한 번 받기도 어려웠다/ 그러다가도 때가되면 / 초롱한 눈빛으로/ 詩라는 푸른 창을 / 열고 날아// 무지개 꿈을 세우는 /너는, 나의 또 다른 나’( 「민들레 」)가 그것이다. 그러고 보면 시인은 지난날의 소외와 억압이라는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한 방법으로써 시를 선택했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닌 듯 싶다.

하얀 눈이 천지를 덮었다.
천사의 몸짓이다.

기다림도 고통도
슬픔도 모두 묻었다.

그래서 산새도 다람쥐도
널 좋아하나보다.

때로는 물로 얼음으로
제 몸을 통째로 내어 줘

만인의 사랑을 받는
넌, 하늘의 꽃이다.

- 「눈 1」 전문

시상이 맑고 깨끗하다. ‘눈(雪)’을 ‘천사의 몸짓’, ‘하늘의 꽃’이라고 표현하다니......, 그러기까지에는 ‘기다림도 고통도/ 슬픔도 모두 묻고’, ‘때로는 물로 / 얼음으로/ 제 몸을 통째로 내어주는’ 자기 헌신(獻身)과 희생의 세월이 뒤따르고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처럼 간결한 압축과 직관의 시작법은 아마도 시인이 어려서부터 집안 어른들로부터 접해온 한시(漢詩)의 영향이 아닌가 한다.

국화가 노랗게
가슴을 여니

감이 눈에서 뽀드득 익어간다

상강이 지났지
햇볕도 국화꽃도 시든다

감이 익어가는 걸
눈이 포기할 차례

눈이 눈을 맞이할 차례다.

- 「감」 전문, 2015

시의 구원은 세상을 심판하는 일이 아니라 자기 마음 안의 근심을 없애는 일이요,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기쁘고 감사한 일을 발견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시인은 오늘도 아상(我相)의 ‘눈[目]’을 자연의 ‘눈[雪]’에 맞춰 자신을 비워가고 있는 중이다.

도(道)는 텅 빈 곳에 모여든다고 한다. 때문에 허정의 상태를 굳게 지키면 만물은 일제히 일어나 생동하게 된다(致虛極 守靜篤 萬物竝作)는 장자의 말을 되새겨 보면서 순리와 포용으로 시인의 앞날에 서광이 깃들기를 축원해 본다. (김동수: 시인, 백제예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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