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타, 문명의 교차로에서 만난 인연들
크레타, 문명의 교차로에서 만난 인연들
  • 김미진 기자
  • 승인 2016.11.08 1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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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생태 관광으로 여는 지속가능한 미래] 3.

크레타에서 가장 큰 도시인 이라클리온의 구시가지는 도보로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 코스다. 사진은 이라클리온 항구 모습(사진출처: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공동기획취재단)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크레타(Crete) 베네치아 성벽 위의 마르티네고 요새에 있는 소박한 묘비에 적혀있는 글귀다. 장편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로 유명한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남긴 이 명언이야말로, 크레타의 모든 것을 관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 최초의 고등 문명인 미노아 문명이 탄생한 곳이자, 그리스 신화 속 제우스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섬. 자유를 외친 카잔차키스와 독창적인 화풍으로 르네상스를 이은 천재화가 엘 그레코의 고향. 문명의 교차로에 선, 수많은 인물들은 여전히 크레타 섬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단, 하루만이라도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면,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 제대로 숨 쉬고 싶다면, 크레타에서 살아봄직하다. <편집자주>

크레타섬은 각 지역마다 기후와 경관이 다르기 때문에 발걸음이 닿는 곳곳마다 새롭다. 면적은 8,336㎢로 제주도의 약 4.5배 크기의 섬에는 거대한 협곡과 높은 산, 끝없는 바다와 올리브나무 숲이 펼쳐져 있고, 빛나는 태양과 시원한 바람이 온 몸을 감싼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크레타 섬에는 이 모든 것을 신의 축복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스 신화의 탄생지, 신들의 가호가 이곳에….

크레타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신, 제우스(Zeus)의 섬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아버지인 크로노스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 딕티안 동굴에 숨겨졌던 제우스, 후에 장성해 올림포스의 지배자가 된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는 신화다. 크레타에서 가장 큰 도시인 이라클리온(그리스어 헤라클레이온) 역시 헤라클레스 신화와 관련이 깊다. 이처럼 그리스 지명과 언어, 일상생활 곳곳에 신화가 흐른다.  

▲ 크노소스 궁전(김미진 기자)

 이라클리온 시내에서 남동쪽으로 6km 떨어져 있는 크노소스(Knossos)는 미노아 문명(BC 3650~BC 1170)을 볼 수 있는 가장 큰 왕궁 유적지 중 하나다. 이 궁전은 BC1700~1400년 사이에 2만4,000㎡ 규모로 지어졌다. 가운데 큰 마당이 있고, 그 주변을 최대 5층 높이의 건물이 둘러싸고 있는 구조인데, 건물 안에는 1,300여 개의 다양한 공간이 있다. 그 복잡한 구조 때문에 사람들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라비린토스(Labyrinthos·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궁)으로 생각했다. 이 유적은 1900년 영국의 고고학자 아서 에번스(Arthur Evans)가 발굴했는데, 수세식 화장실과 여왕의 욕조 사용과 같은 수준 높은 생활 문명상에 당시 유럽인들이 깜짝 놀랐다고 전해진다.

▲ 크노소스 유적에 있는 벽화들은 대부분 발굴자인 아서 에번스가 복원한 것이며, 진품들은 대부분 이라클리온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김미진 기자)

 크노소스 궁전을 화려하게 장식한 벽화는 대부분 이라클리온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크레타에서 가장 큰 이라클리온 고고학 박물관에는 신석기 시대부터 4세기 후반 로마 제국 시대까지 유물을 전시, 그 양이 너무도 방대해 관람이 불편할 정도였으나 지난 2014년에 재단장하면서 정리가 됐다. 대표적인 유물로는 현재까지도 해석이 불가능한 ‘파이스토스 원반’과 미노아인들이 숭상하던 것으로 제사를 지낼 때 쓰던 ‘뱀 여신상’ 등이 있다.

▲끝없는 바다와 따뜻한 기후, 일년 내내 액티비티한 섬

크레타의 전 세계 새들의 건널목으로 통한다. 섬 자체가 일종의 새들을 위한 보호구역으로, 철저하게 자연을 보전되고 있어 발걸음 닿는 곳곳이 생태 관광지다.

 섬 자체가 매우 크기 때문에 해안도로만 1000km가 넘고, 해발 고도 2000m가 넘는 산과 유럽에서 가장 긴 계곡을 보유하고 있는데다, 크레타에서만 볼 수 있는 꽃이 150종이 넘는 등 자연과 생태의 보고다.

기후는 지중해와 북아프리카 두 지역에 속한다. 지중해 영향을 많이 받다보니 겨울에도 10~15도를 유지할 정도로 따뜻하기 때문에 크레타의 해변 성수기는 5월에서 9월뿐만 아니라 겨울에도 따뜻해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이라클리오 항구에서 동쪽으로 20분 거리에 있는 코키니하니 해변 역시 관광객이 즐겨 찾는 곳 중 하나다. 10월 초임에도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이 해변에 위치한 아리나샌드리조트의 스테리오스 바커리스(Stelios Bagkeris) 매니저는 “크레타엔 유적지와 멋진 바다와 산이 있다. 겨울에는 산에서 등산도 하고 스키를 즐기다가 산에서 내려오면 바다에서 수영까지 즐길 수 있다”면서 “주로 봄과 가을이 생태관광을 즐길 수 있는데 제격으로, 4월부터 5월, 10월부터 11월에는 숙박비도 저렴해 적절한 기간이다”고 소개했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박물관이 있는 마을 골목 풍경(김미진 기자)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 이름 하나로 변화되고 있는 시골 마을

크레타에서 태어난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번역가이자 사상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 크레타에는 카잔차키스의 묘지 외에도 그를 알리고, 그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공간이 있다. 이라클리온 시내에서 남쪽으로 향하면 미르티야(Myrtia)마을이 나오는데 이 곳에 카잔차키스 박물관(Kazantzakis Museum)이 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이곳 박물관에 자부심이 굉장히 크다. 카잔차키스와 카잔차키스의 작품을 흠모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 연간 1만명 안팎으로 발걸음하고 있기 때문으로, 갈수록 고령화되어 가고있는 작은 마을에 작가 한 사람이 숨을 불어 넣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에피 케팔라키 박물관장은 “올해 여름에 큰 축제를 열었는데, 마을사람들 도움이 없었더라면 치를 수 없었다. 마을사람들은 박물관을 지날 때마다 들러 안부를 묻는다. 마을주민들은 카잔차키스의 뿌리가 이 마을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마을 전체를 카잔차키스 박물관으로 조성하는 게 목표다”라고 말했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박물관이 있는 마을 골목 풍경(김미진 기자)

박물관에서 나와 마을 탐험을 나서니 집집마다 개성적이고 멋지게 꾸민 공간들, 꽃과 나무로 장식된 골목길, 자연경관과 어울리는 벽화들. 작은 시골마을이 작가 한 명 덕분에 정리되어가고 있는 느낌이 인상적이었다.

에피 케팔라키 관장 또한 “관람객들이 박물관만 보고 가는 게 아니라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보고 가는데, 마을 부녀회와 청년회 등에서 벽화도 그리고 청소도 하는 등, 마을을 더 아름답게 꾸미고 있다”며 “크레타 사람들은 금전적으로 따지지 않는다. 우리는 다 같은 둥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체 정신이다”고 설명했다.

마을 어귀에 자리 잡고 있는 어르신들은 “포도를 다 따서 한 달 정도 쉬고, 조만간 올리브를 딸 것”이라며 여유로운 미소를 선물했다. 또 빨갛게 익은 석류를 맛보고 가라면서 손짓하는 할머니도 만날 수 있었다. 낯선 이방인에게 대문을 활짝 여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그 따뜻한 마음을 확인하고 잠깐의 초대에 응했다. 복층 구조의 조그마한 집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진열장에 잘 전시된 군복. 22년 전 죽은 아들의 군복을 평생을 바라보고 살아온 엘레니 할머니는 “아들은 죽지 않았다. 잠들어 있을 뿐이다”고 말했다. 죽음은 곧 영원한 잠이라고 생각하는 고대 그리스인의 사상이 현재까지도 면면히 내려오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 그리스 크레타=김미진 기자

▲크레타 주지사 스타브로스 아르나오타키스(Stavros Arnaoutakis) 인터뷰

“잘 알고 계시다시피 서양문명이 시작된 곳이 바로 크레타섬 입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유산이 많은데다 기후가 좋고, 자연 경관까지 그만이다보니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습니다.”

그리스에서 가장 큰 섬이자 지중해에서 다섯 번째로 큰 크레타(Crete) 섬. 전 세계에서 연간 400~500만명이 방문하고 있는 크레타에는 지난해보다 올해 방문객 숫자가 더욱 늘고 있는 추세라는 것이 스타브로스 아르나오타키스(Stavros Arnaoutakis) 크레타 주지사의 설명이다.

크레타의 주요 여행객은 유럽인들이지만, 올해는 영국과 독일, 러시아에서 특히 많은 방문객들이 찾아왔다. 청동기 시대 유럽 최초의 문명인 미노아 문명을 볼 수 있는 크노소스 궁전과 선사시대부터 비잔틴까지 유물이 발굴되는 등 풍부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크레타는 세계의 여행객들에게 꼭 한 번 방문해야 할 곳으로 손꼽히고 있다.

스타브로스 아르나오타키스 주지사는 “크레타의 태양은 매우 아름답고, 1000여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으며, 섬 전체가 열린 박물관”이라고 자부하면서 “우리는 조상에게 물려받은 많은 유물과 자연의 모습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행객 대부분이 짧은 일정 때문에 역사와 유적지만을 돌아보고 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큰 상황. 이에 주지사는 “여행객들이 대부분 바닷가와 유적지를 찾기 때문에 생태관광비중은 많지 않지만, 앞으로 계속 목적을 가지고 발전시켜나갈 계획이다”면서 “각 지역과 작은 마을 등과 협력해 자연을 지키기 위한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있고, 후원자 발굴에도 힘써 정부와 시민이 협력하는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 그리스 크레타=김미진 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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